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 이후 영월을 찾는 관광객이 눈에 띄게 늘었다. 단종이 유배됐던 청령포와 그의 무덤이 있는 장릉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올해 설 연휴 동안 청령포 방문객은 1만641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2000여 명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다섯 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장릉 방문객 역시 7배 가까이 늘었다. 영화 한 편이 잊혀가던 역사 공간을 다시 살아 움직이게 만든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변화가 단순한 관광 증가에 그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영월군이 강원도청에서 진행한 고향사랑기부제 행사에서는 영월 출신 기업인이 즉석에서 100만 원을 기부하는 장면도 있었다. 관광객 증가가 지역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그 관심이 다시 기부와 참여로 연결되는 선순환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문화콘텐츠가 지역경제와 공동체 의식을 동시에 자극한 셈이다.
사실 이런 현상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뉴질랜드다.
뉴질랜드는 영화 The Lord of the Rings(반지의 제왕) 촬영 이후 관광 산업의 구조 자체가 달라졌다. 영화 속 ‘호빗 마을’ 세트장은 지금도 세계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되었고, 촬영지 투어 프로그램은 뉴질랜드 관광의 핵심 상품이 됐다. 당시 뉴질랜드 정부는 영화 촬영을 국가 브랜드 전략과 연계했다. 그 결과 “뉴질랜드=중간계(Middle-earth)”라는 이미지를 전 세계에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영화가 국가 브랜드를 만든 대표적인 사례다.
영국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영화 Harry Potter film series(해리포터 시리즈)는 단순한 영화 프랜차이즈를 넘어 영국 관광 산업의 핵심 자산이 됐다. 런던의 킹스크로스역 ‘9와 4분의 3 승강장’은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는 장소가 됐다. 옥스퍼드 대학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는 호그와트 식당 장면의 촬영지로 유명해졌고, 스코틀랜드의 글렌피넌 고가교 역시 ‘호그와트 열차’의 배경으로 세계적인 관광지가 됐다. 문화콘텐츠가 도시와 지역의 경제 지도를 바꿔 놓은 것이다.
한국 역시 이미 이런 흐름 속에 있다. K-pop은 세계 음악 시장을 흔들고 있고, 드라마 촬영지는 관광 코스가 되고 있다. 하지만 영월 사례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진다. 관광객 증가에서 멈추지 않고 지역 공동체 참여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가 지역경제뿐 아니라 공동체 의식까지 자극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영월은 원래 역사적 상징성이 강한 지역이다. 조선의 어린 임금 단종이 유배된 비극의 장소이자, 왕조사의 중요한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이다. 그러나 역사만으로는 사람을 움직이기 어렵다. 교과서 속 역사와 여행지의 경험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한다.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이 바로 콘텐츠다. 영화는 역사에 감정과 서사를 덧입힌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는 사람들을 그 장소로 이끈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스토리 경제(Story Economy)’라고 부른다. 상품보다 이야기가 먼저 소비되는 시대라는 의미다. 관광 역시 마찬가지다. 풍경만으로는 사람을 끌어들이기 어렵다. 그 풍경을 이해하게 만드는 이야기와 상징이 필요하다. 영월의 청령포와 장릉은 이미 강력한 역사적 이야기를 갖고 있었다. 영화는 그 이야기를 다시 현재의 언어로 번역했을 뿐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문화콘텐츠의 확장성이다. 영화 한 편이 관광객을 부르고, 관광객은 지역 상권을 움직인다. 숙박과 음식, 교통, 기념품 산업이 함께 살아난다. 그리고 지역에 대한 관심은 기부와 참여로 이어진다. 문화가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만들어내는 구조다.
이러한 흐름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나라들은 문화정책을 단순한 예술 지원으로 보지 않는다. 그것을 국가 브랜드 산업으로 바라본다. 미국 할리우드는 영화 산업이면서 동시에 국가 이미지 산업이다. 일본 역시 애니메이션을 통해 지역 관광을 활성화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한국 역시 이제 문화콘텐츠를 산업 전략의 중심에 놓아야 할 시점이다. K-pop과 드라마가 이미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만큼, 그 콘텐츠를 지역과 연결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촬영지를 관광 자산으로 만들고, 지역 역사와 문화 스토리를 콘텐츠와 결합하는 정책적 시도가 더욱 많아져야 한다.
영월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는 규모로 보면 작은 이야기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안에는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지역의 역사와 자연, 그리고 문화가 콘텐츠를 통해 다시 살아날 때 지역경제도 함께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결국 문화는 소비가 아니라 투자다. 눈에 보이는 공장이나 건물만이 경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 역시 경제를 움직인다.
영월의 겨울 풍경 속에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한 편의 영화가 지역을 깨우고, 한 편의 이야기가 경제를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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