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전 국회의장과 정대철 헌정회장,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등 각계 인사들이 참석해, 한 시대를 관통한 한 정치인의 이름을 다시 불렀다. 그 이름은 오늘의 한국 정치가 가장 크게 잃어버린 단어—“중도”, “통합”, “절제”—를 떠올리게 한다.
이철승은 흔히 김대중(DJ), 김영삼(YS)과 함께 한국 야당사의 한 축을 이룬 40대 기수론의 3두마차로 불린다. 세 사람은 저마다 결이 달랐지만, 적어도 ‘권력의 공포’를 정치의 일상으로 만들었던 시절에 민주주의의 숨통을 트려 했다는 점에서 같은 계열의 역사에 속한다. 다만 이철승의 방식은 대개 급진의 열기보다 균형의 논리, 거리의 함성보다 제도와 의회의 언어에 가까웠다. 그래서 그가 남긴 정치적 유산은 어떤 이들에게는 미지근함으로, 또 어떤 이들에게는 ‘마지막 상식’으로 기억된다.
그의 생애를 따라가면, “중도통합”이 단지 말솜씨나 처세술이 아니라 시대가 강요한 선택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철승은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 재학 시절 학병 거부 운동을 주도하는 등 일제강점기 청년 지식인의 항일 경험을 지녔고, 해방 후에는 전국학생총연맹(전국학련) 위원장으로 반탁 운동에 앞장서며 정치 전면으로 들어섰다. “나라가 있어야 여당도 야당도 있다”는 식의 안보관·국가관이 그의 정치 언어 밑바닥에 깔린 것도, 이 출발점과 무관하지 않다.
정치권에 본격 입문한 뒤 그는 7선 국회의원을 지내며 신민당 대표, 국회부의장 등을 역임했다. 격동기의 야당 정치인에게 7선은 단순한 경력이 아니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지반 위에서 유권자의 신뢰를 반복해 획득했다는 뜻이고, 동시에 그만큼 오랫동안 타협과 투쟁 사이의 매 순간을 선택해야 했다는 의미다.
그의 선택은 자주 “극단의 거부”였다. 예컨대 그는 1970년대 야권 내부에서도 김대중·김영삼과 경쟁하며 ‘40대 기수론’의 흐름에 함께 언급될 정도로 야당의 중심에 있었지만, 어느 한쪽으로만 치닫는 정치의 관성에는 자주 브레이크를 걸려 했다.
이철승의 중도통합론은, 한마디로 “정치는 적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공동체를 굴리는 일”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독재를 비판하되 국가를 부정하지 않고, 민주화를 말하되 제도적 안정과 사회 통합의 토대를 무너뜨리지 않는 것. 이 균형은 말처럼 쉽지 않다. 독재에 맞서는 순간, 정치 언어는 쉽게 선악의 도식으로 기울고, 그 도식은 대중을 결집시키는 데는 효율적이지만 국가 운영의 언어로 바뀌는 순간 곧장 부작용을 낳는다. 이철승은 그 경계에서 ‘의회주의’와 ‘책임정당’을 반복해 강조한 정치인으로 평가된다.
물론 그의 길이 늘 찬사만 받은 것은 아니다. 야당 정치인의 숙명처럼 그 역시 “너무 온건하다”는 공격과 “결국 기득권에 기대는 것 아니냐”는 의심 사이를 지나야 했다. 일부 언론 보도에서도 그가 ‘중도통합’ 노선을 두고 논쟁에 휘말렸던 대목들이 언급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드러난 것은, 온건함이 때로는 비겁함이 아니라 책임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민주주의는 ‘승리한 쪽이 전부를 가져가는 제도’가 아니다. 선거는 승패를 가르지만, 국가는 승자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그래서 정치에는 언제나 “정당성”과 함께 “정합성”이 필요하고, 투쟁의 언어와 별개로 운영의 언어가 필요하다. 이철승은 그 운영의 언어를 끝까지 놓지 않으려 했던 인물에 가깝다.
오늘 한국 정치는 어떤가. 보수와 진보의 대립은 이미 ‘노선 경쟁’이 아니라 ‘정체성 전쟁’의 양상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상대는 반박해야 할 주장이나 수정해야 할 정책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존재가 되어 간다. 이 지점에서 노조와 진보의 문제도 다시 읽혀야 한다. 노동조합은 본래 노동자의 권익을 지키기 위한 헌법적 결사의 자유 위에 서 있다. 진보는 본래 사회적 약자의 삶을 끌어올리고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정치적 에너지다. 그런데 ‘극단의 대립’이 시작되는 순간, 노조는 사회적 연대의 언어 대신 진영의 깃발로만 해석되고, 진보는 개혁의 설계도 대신 분노의 동원으로만 소비된다. 그 결과는 뻔하다. 노동은 고립되고, 진보는 협상력을 잃으며, 사회는 타협의 기술을 잊는다. 극단이 서로를 키우고, 중간지대—침묵하는 다수의 상식—는 점점 움츠러든다.
이철승이 그리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가 완벽해서가 아니다. 그가 언제나 옳았다는 말도 아니다. 다만 그는 최소한, 정치가 끝내 지켜야 할 ‘공동체의 선’을 의식한 채 싸우려 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가 남긴 중도통합의 문제의식은 오늘 더 절박하다.
통합은 구호가 아니라 기술이다. 화해는 감정이 아니라 절차다. 절제는 미덕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안전장치다.
통합과 화해의 정치로 가기 위해, 우리가 지금 당장 붙잡아야 할 원칙은 거창하지 않다.
첫째, 상대를 악마화하지 않는 언어의 규율부터 회복해야 한다. 정치 지도자의 말은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동시에 사회를 분열시키는 칼이 된다. 언어가 무너지면 협상은 불가능해진다.
둘째, ‘정책 연합’의 공간을 되살려야 한다. 복지든 성장 전략이든, 노동 개혁이든 산업 정책이든, 어느 진영도 단독으로 완결할 수 없다. 국회가 거래의 장이 아니라 설계의 장이 되려면, 최소한의 초당적 합의 가능한 영역—연금, 의료, 저출생, 지역균형, 안보의 기본선—부터 단계적으로 묶어내야 한다.
셋째, 노조 또한 ‘사회적 대화’의 주체로서 스스로의 정당성을 넓혀야 한다. 권리를 주장하는 힘만큼, 연대의 설득이 중요하다. 강경 일변도의 투쟁은 단기적으로는 성과를 내도 장기적으로는 고립을 부른다. 노동이 사회를 설득할 때, 노동의 권익도 더 단단해진다.
넷째, 진보는 ‘정의의 감정’에서 ‘정의의 설계’로 더 나아가야 한다. 불평등을 비판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지속 가능한 재원과 제도, 성장과 분배의 동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진보는 분노의 대변자가 아니라 대안의 주체가 된다.
이 모든 과제는 결국 “중도”라는 단어로 모인다. 여기서 중도는 기회주의가 아니다. 중도는 원칙을 버린 타협이 아니라, 원칙을 현실로 만드는 과정이다. 정치가 공동체를 운영하는 기술이라면, 중도는 그 기술의 핵심 교과서다.
오늘 현충관에서 불렸던 소석 이철승의 이름은, 과거에 대한 예의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현재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서로를 ‘설득’하지 않고 ‘정복’하려 들 것인가. 우리는 언제까지 상대의 패배만을 자신의 승리로 착각할 것인가.
민주주의는 적을 굴복시키는 제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국가를 함께 운영하도록 만든 장치다. 그 장치가 고장 나면, 나라는 매일 선거를 치르며 매일 내전을 치른다.
소석이 그립다. 소석 이철승이 그립다. 그리움이란, 단지 한 사람의 부재를 슬퍼하는 감정이 아니다. 그리움은 우리가 잃어버린 질서를 되찾으라는 요청이다.
이제는 극단의 대립을 끝내고, 통합과 화해의 정치로 나아갈 때다. 오늘의 분열을 ‘필연’으로 두지 말자. 정치가 다시 상식의 언어로 돌아오게 하자. 소석 이철승이 사랑했던 진리와 정의와 자유는, 끝내 통합 속에서만 오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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