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주체 중심의 사고는 전통을 자산이 아니라 대상물로 만든다. 보호하고 감독해야 할 객체로 규정하는 순간, 전통은 행정의 언어 속으로 편입된다. 이 체계는 훼손을 막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확장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살아 있는 문화 대신 잘 정리된 목록이 남는다. K-헤리티지가 늘 안전하지만 동시에 멀게 느껴지는 이유다.
BTS의 ‘아리랑’은 이 관리 논리에서 벗어난 사례다. 그들은 어떤 기관의 위임을 받아 전통을 호출하지 않았다. 허가를 받지도, 표준을 따르지도 않았다. 대신 이미 축적돼 있던 감정의 기억에 접속했고, 그것을 현재의 언어로 사용했다. 이 과정에서 핵심은 소유권이나 관리 권한이 아니라 접속 가능성이었다. 전통은 관리되지 않았기에 확장됐다.
역사를 돌아봐도 살아남은 문화는 대부분 ‘잘 관리된 문화’가 아니라 ‘잘 연결된 문화’였다. 아리랑은 국가가 보호하기 이전부터 존재했고, 실록과 의궤 역시 기록의 독점이 아니라 열람과 해석의 가능성 속에서 살아남았다. 블루스와 재즈, 플라멩코와 삼바 역시 특정 기관의 관리로 세계화된 것이 아니다. 반복적 사용과 변주, 세대 간 전이가 만든 결과였다.
문제는 현재의 K-헤리티지 정책 구조가 이 연결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부처별 칸막이는 전통을 쪼개고, 사업 단위 예산은 단발성 이벤트를 양산한다. 평가 기준은 방문객 수와 집행률에 머문다. 이런 구조에서는 반복과 축적이 어렵다. 연결이 아니라 성과 보고에 최적화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누가 관리하느냐’는 질문이 반복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결 설계가 부재한 상황에서 책임 소재만 떠다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는 책임 주체를 명확히 한다고 작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러 주체가 동시에 접속할 수 있을 때 살아난다. 관리자는 필요하지만, 관리자만으로는 부족하다. 관리자 위에 설계자가 있어야 하는 이유다. 이 설계의 핵심은 통제가 아니라 개방이다. 모든 변주를 승인받게 하는 구조는 속도를 늦춘다. 반대로 최소한의 기준만 두고 사용과 재해석을 허용하는 체계는 반복을 만든다. BTS의 ‘아리랑’이 가능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통은 틀 안에 가둘수록 약해지고, 열어둘수록 강해진다.
K-헤리티지를 국가 브랜드나 관광 자산으로만 다루는 접근 역시 연결을 제한한다. 전통이 홍보의 수단으로 고정되는 순간, 다른 영역과의 결합은 어려워진다. 반면 전통을 감정의 언어이자 기억의 데이터로 인식하면 활용의 범위는 급격히 넓어진다. 교육이 되고, 콘텐츠가 되고, 기술과 결합한 새로운 창작의 원천이 된다.
이제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K-헤리티지를 관리할 주체를 찾기보다, 연결을 설계할 구조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공공은 기록과 접근성을 보장하고, 민간은 해석과 확장을 맡으며, 창작자는 변주를 통해 반복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국경은 장벽이 아니라 경로가 된다. 연결된 전통만이 글로벌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질문은 다시 돌아온다. 우리는 여전히 “누가 관리할 것인가”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로 질문을 바꿀 것인가. BTS 이후 K-헤리지가 우리에게 던진 요구는 분명하다. 관리의 언어에서 벗어나 설계의 언어로 이동하라는 것이다.
K-헤리티지는 소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연결망이다. 잘 관리된 전통은 안전할 수 있지만, 잘 연결된 전통만이 살아 움직인다. 이제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관리 주체가 아니라,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다. 그 구조를 만드는 순간, K-헤리티지는 비로소 과거가 아니라 미래의 자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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