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BTS아리랑에서 K-헤리티지 글로벌로] ⑧ 기록된 문화는 사라지지 않는다: 실록·의궤·아리랑의 공통점

문화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기록되지 않은 문화는 반복될 수 없고, 반복되지 않는 문화는 결국 기억에서 밀려난다. BTS의 ‘아리랑’이 세계와 만난 장면은 이 오래된 진리를 다시 확인시켜준다. 아리랑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잘 보존됐기’ 때문이 아니라, ‘계속 기록돼 왔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아리랑은 조선왕조실록이나 의궤와 같은 궤적 위에 있다. 형식은 달라도 작동 원리는 같다.

조선왕조실록은 왕조의 공식 역사서로 알려져 있지만, 그 본질은 기록의 태도에 있다. 실록은 왕의 치적을 미화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았다. 좋았던 결정뿐 아니라 실패와 갈등, 혼란까지 빠짐없이 남겼다. 사실을 기록하고 평가는 유보했다. 그래서 실록은 한 시대의 선전물이 아니라, 이후 세대가 다시 읽고 판단할 수 있는 열린 기록이 됐다.

의궤 역시 같은 성격을 지닌다. 왕실 의례를 정리한 문서이지만 단순한 절차 매뉴얼은 아니다.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사용했는지를 세밀하게 남겼다. 이는 보존을 위한 기록이 아니라 반복을 전제로 한 기록이었다. 의궤가 있었기에 같은 의례를 다시 치를 수 있었고, 상황에 맞는 변형도 가능했다. 기록은 고정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반복과 변주의 출발점이었다.

아리랑의 구조도 이와 다르지 않다. 아리랑에는 정본이 없다. 수천 개의 가사와 선율이 지역과 시대에 따라 누적돼 왔다. 누군가의 감정이 노래가 됐고, 그 노래는 다시 다른 이의 기억에 덧붙여졌다. 이 축적 과정 자체가 기록이었다. 종이에 적히지 않았을 뿐, 공동체의 몸과 목소리에 저장된 기록이었다. 그래서 아리랑은 사라지지 않았다. 기록됐기 때문이다.

중요한 공통점은 이 기록들이 모두 ‘완결’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록은 마지막 권을 쓰면서도 역사가 끝났다고 선언하지 않았다. 의궤 역시 최종본을 만들어 봉인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아리랑 또한 하나의 완성형을 갖지 않았다. 기록은 결론이 아니라, 다음 호출을 위한 준비였다. 기록된 문화가 살아남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날 K-헤리티지 논의가 자주 길을 잃는 지점도 이 대목이다. 우리는 기록을 곧바로 보존과 동일시해 왔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보다, 어떻게 고정할 것인가에 더 많은 에너지를 써왔다. 원형을 정하고 정답을 만들며, 변주는 관리의 대상으로 취급했다. 그러나 기록이 고정의 도구가 되는 순간 문화는 반복을 멈춘다. 다시 쓰이지 않는 기록은 박제된 정보로 남을 뿐이다.

BTS의 ‘아리랑’은 기록의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들은 아리랑을 새로 만들지 않았다. 이미 축적돼 있던 감정의 기록에 접속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기록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호출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충실한 재현이 아니라 현재적 사용이었다. 기록은 과거를 설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현재를 작동시키는 자원이 됐다.

이 관점에서 보면 디지털 전환과 AI 시대에 K-헤리티지가 맞닥뜨린 과제도 분명해진다. 기록은 많아질수록 좋은 것이 아니다. 핵심은 구조화와 재사용 가능성이다. 실록과 의궤가 단순한 보관물이 아니라 연구와 재해석의 출발점이 되었듯, K-헤리티지 역시 언제든 다시 불러 쓸 수 있는 기록으로 설계돼야 한다.

기록은 국가만의 몫도, 전문가만의 전유물도 아니다. 실록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기록의 주체와 열람의 가능성이 분리돼 있었기 때문이다.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이 달랐고, 그 간극이 해석의 자유를 만들었다. 아리랑 역시 특정 계층이나 제도의 소유가 아니었기에 수천 개의 버전으로 확장될 수 있었다.

이제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는 K-헤리티지를 어떤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가. 박물관의 설명문으로만 남길 것인가, 아니면 다음 세대가 다시 쓰고 변주할 수 있는 열린 기록으로 남길 것인가. 기록은 늘어났지만, 호출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지는 않은가.

기록된 문화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기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록은 반복될 때 살아 있고, 반복은 현재의 언어와 만날 때 가능하다. 실록과 의궤, 그리고 아리랑이 남긴 교훈은 단순하다. 문화는 보존될 때가 아니라, 다시 쓰일 때 살아남는다.

BTS의 ‘아리랑’은 이 오래된 기록이 여전히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이제 남은 과제는 명확하다. 이 기록을 어떻게 열어둘 것인가, 그리고 다음 호출을 누가 맡을 것인가. 그 선택에 따라 K-헤리티지는 과거의 유산으로 남을 수도, 미래의 언어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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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지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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