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자의 K-금융 인사이트 | 진리 정의 자유]한국경제의 혈맥, 증권시장과 가상화폐시장에 과감한 수술이 긴요하다

금융은 경제의 혈맥이다. 피가 맑고 힘차게 돌아야 인체가 건강하듯, 자금이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순환해야 산업과 기업, 가계와 국가가 함께 산다. 혈관이 막히면 말단부터 썩는다. 금융이 왜곡되면 혁신은 멈추고, 투기는 번성하며, 성실한 기업이 아니라 요령 있는 기업이 살아남는다. 

한국 경제가 진정한 선진국 경제로 도약하려면 금융의 체질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증권시장, 채권시장, 외환시장, 그리고 최근 급팽창한 가상자산 시장까지, 기준과 원칙과 상식이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적용되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금융과 정치의 어정쩡한 결합을 반복해 왔다. 선거를 앞두면 유동성은 풀리고, 경기 부양이라는 이름 아래 구조조정은 미뤄졌다. 특정 업종, 특정 세대, 특정 이해집단을 겨냥한 맞춤형 금융정책은 단기적 안정을 가져왔을지 몰라도 장기적 경쟁력은 갉아먹었다. 

연령별·업종별·지역별 이해관계에 휘둘린 금융정책은 시장의 신호를 왜곡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금융 원칙을 확립하지 못하면, 한국 금융은 더 이상 세계와 경쟁할 수 없다.

증권시장은 그 출발점이다. 상장은 특권이 아니라 책임이다. 상장사는 공적 자금을 활용하는 공적 존재다. 최소한의 건전성, 투명성, 지속 가능성을 갖추지 못한 기업은 시장에서 퇴출되어야 한다. 코스닥에서 대규모 퇴출을 예고한 조치는 고통스럽지만 필요한 수술이다. 미국 나스닥은 매년 수백 개 기업이 상장폐지된다. 주가가 일정 기준 아래로 떨어지면 개선 기회를 주되, 정해진 기간 안에 회복하지 못하면 퇴장한다. 소송으로 시간을 끌고, 정치적 압력으로 기준을 완화하는 관행은 없다. 그래서 나스닥은 세계 혁신기업의 산실이 됐다. 엄격한 퇴출이 있었기에 활발한 진입도 가능했다.

유럽 역시 다르지 않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나 영국 런던 증권거래소는 회계 투명성과 공시 의무를 엄격히 요구한다. 내부 통제 부실이나 회계 조작이 드러나면 시장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 신속하게 조치를 취한다. 시장은 온정이 아니라 신뢰로 유지된다. 퇴출이 두려워 기준을 낮추면, 결국 전체 시장이 할인된다. 한국 증시가 오랜 기간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시달린 이유를 냉정히 돌아봐야 한다.

채권시장과 외환시장도 마찬가지다. 국가 신용은 숫자보다 태도에서 나온다. 재정 규율을 지키고,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보장하며, 시장과의 약속을 지키는 나라만이 안정적인 자금 흐름을 유지할 수 있다. 정치적 필요에 따라 금리를 흔들고, 환율을 방치하거나 과도하게 개입하는 방식은 일시적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비용이 더 크다. 금융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최근 불거진 가상자산 시장의 혼란은 우리 금융의 취약한 부분을 그대로 드러냈다. 특히 특정 거래소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불투명한 지배구조, 내부 통제의 미흡은 시장 전체의 신뢰를 흔들었다. 가상자산은 이미 일정 규모의 자산시장으로 성장했다. 이를 방치하거나 과도하게 억누르는 극단 대신, 투명성과 공정성을 기준으로 정비해야 한다. 

미국은 증권거래위원회(SEC)를 중심으로 가상자산을 증권성 여부에 따라 엄격히 규율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MiCA 규제를 도입해 발행, 유통, 보관 전 과정에 걸친 감독 체계를 마련했다. 투자자 보호와 시장 혁신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다.

한국 역시 읍참마속의 심정이 필요하다. 특정 기업, 특정 인물, 특정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말고, 원칙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거래소의 회계 투명성, 고객 자산 분리 보관, 내부자 거래 통제, 공시 의무 강화 등 기본부터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문제가 드러나면 예외 없이 책임을 묻고, 구조를 고쳐야 한다. 단기적 충격을 우려해 미루면, 나중에는 더 큰 비용을 치른다. 금융은 신뢰 산업이다. 한 번 무너지면 회복에 수십년이 걸린다.

증권시장에서의 과감한 퇴출, 가상자산 시장의 투명성 강화는 같은 맥락이다. 건강한 투자와 적정한 수요가 공존하는 시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부실과 불투명을 제거해야 한다. 좀비기업이 자원을 잠식하고, 불투명한 거래소가 투자자를 위험에 노출시키는 구조에서는 선진 금융을 말할 수 없다. 선진국 금융은 규제가 많아서가 아니라, 규칙이 명확하고 예외가 없기 때문에 선진적이다.

정치권도 달라져야 한다. 금융정책은 인기 정책이 아니다. 구조조정은 표를 잃을 수 있고, 엄격한 감독은 반발을 부른다. 그러나 국가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불가피한 선택이다. 금융을 정치의 하위 수단으로 삼는 순간, 시장은 왜곡된다. 정책은 글로벌 기준과 데이터에 근거해야 한다. 국내 이해관계보다 국제 신뢰를 우선해야 한다.

한국 경제는 이미 규모 면에서 선진국 문턱에 와 있다. 그러나 금융의 질적 수준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증권시장 선진화, 채권시장 투명성, 외환시장 신뢰, 가상자산 시장 정비는 따로 떨어진 과제가 아니다. 모두 하나의 목표로 수렴한다. 신뢰받는 금융 시스템 구축이다. 피가 맑게 흐르는 경제만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룬다.

지금 필요한 것은 용기다. 부실을 도려내고, 불투명을 걷어내며, 기준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결단이다. 최대 수백 개 기업의 퇴출이 시작에 불과하듯, 가상자산 시장의 정비 역시 선언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원칙을 세우고, 예외를 두지 말며, 시장에 분명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 상장사는 최소한의 건전성을 보증받는 공간이라는 신뢰, 거래소는 고객 자산을 안전하게 지킨다는 신뢰, 정책은 정치가 아니라 원칙에 의해 움직인다는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금융은 경제의 혈맥이다. 혈맥이 바로 서야 산업이 살고, 기업이 크고, 국민의 자산이 보호된다. 선진국은 구호로 되는 것이 아니다. 엄격한 기준과 냉정한 실행, 그리고 상식에 기초한 원칙의 일관성으로 이루어진다. 

이제 한국 금융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온정과 타협의 길을 계속 갈 것인가, 아니면 읍참마속의 각오로 체질을 바꿀 것인가. 답은 분명하다. 원칙이 바로 서는 곳에만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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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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