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BTS아리랑에서 K-헤리티지 글로벌로] ⑨ 왜 K-헤리티지는 관광 상품이 되는 순간 힘을 잃는가 ​​​​​​​

K-헤리티지를 논할 때 가장 손쉬운 해법은 관광이다. 축제와 전시, 체험 프로그램과 기념품을 통해 전통을 ‘볼거리’로 만들고 방문객을 늘리는 방식이다. 단기 성과는 분명하다. 숫자는 즉각 반응하고, 정책 성과로도 제시하기 쉽다. 그러나 이 방식은 반복될수록 K-헤리티지의 힘을 약화시킨다. 전통이 관광 상품이 되는 순간, 문화는 작동을 멈추고 소비로 축소된다.

관광 상품의 본질은 일회성에 있다. 사진을 찍고, 설명을 듣고, 기념품을 사는 경험은 그 자리에서 완결된다. 기억은 남을지 몰라도 반복은 어렵다. 다시 찾아가야 할 이유가 희미해지기 때문이다. 반면 문화가 살아 있다는 증거는 반복성이다. 다시 듣고, 다시 보고, 다시 부르게 만드는 힘이다. K-헤리티지가 관광 중심으로 설계될수록 이 반복의 조건은 사라진다.

문제는 관광 그 자체가 아니라, 관광이 전통을 다루는 방식이다. 관광 상품은 이해를 전제로 한다. 무엇을 보는지, 왜 중요한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이 설명은 전통을 ‘정답이 있는 대상’으로 고정시킨다. 해설이 길어질수록 관람자는 수동적 소비자가 되고, 전통은 감정의 언어가 아니라 정보의 목록으로 변한다. 그 순간 전통은 체험이 아니라 교양 코스로 전락한다.

BTS의 ‘아리랑’이 보여준 방식은 이와 정반대였다. 그들은 전통을 설명하지 않았다. 이해시키려 들지도 않았다. 대신 감정의 구조를 무대 위에 올려놓았다. 세계는 그 감정을 각자의 경험으로 받아들였고, 그 결과는 반복과 확산으로 이어졌다. 관광은 설명을 통해 이해를 목표로 하지만, 문화는 체험을 통해 접속을 만든다. 이 차이는 결정적이다.

관광화의 또 다른 한계는 전통을 공간과 시간에 가둔다는 점이다. 특정 장소, 특정 기간, 특정 프로그램으로 묶인 전통은 그 틀을 벗어나는 순간 힘을 잃는다. 축제가 끝나면 전통도 끝나고, 전시가 철수하면 관심도 함께 사라진다. 반면 살아 있는 문화는 이동한다. 노래는 일상으로 돌아가 다시 불리고, 이야기는 다른 맥락에서 변주된다. 관광형 K-헤리티지는 이 이동성을 확보하지 못한다.

이 과정에서 전통은 종종 ‘안전한 이미지’로 정제된다. 갈등과 상처, 불편한 기억은 제거되고 보기 좋은 장면만 남는다. 그러나 문화는 불편함을 제거할수록 얇아진다. 깊이를 잃은 전통은 소비되기 쉽지만 오래 남지 않는다. BTS가 세계와 연결될 수 있었던 이유는 상처와 불안을 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화의 보편성은 미화가 아니라 진실에서 나온다. 정책적으로도 이 문제는 반복돼 왔다. K-헤리티지를 관광 자원으로만 분류하는 순간, 평가 기준은 방문객 수와 매출로 수렴된다. 단기 성과는 개선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문화의 자율성과 확장성이 훼손된다. 전통을 관리의 대상으로만 다루는 접근은 반복을 낳지 못한다. 문화는 성과 지표로 관리될 때가 아니라, 사용될 때 성장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답은 관광을 배제하자는 데 있지 않다. 관광을 목적이 아니라 결과로 두자는 것이다. 전통을 먼저 현재의 언어로 작동하게 만들고, 그 결과로 사람들이 찾아오게 해야 한다. 공연과 콘텐츠, 교육과 디지털 플랫폼에서 반복적으로 호출되는 전통은 자연스럽게 이동을 낳는다. 이때 관광은 부수 효과가 된다. K-헤리티지는 볼거리가 아니라 사용할 수 있는 언어여야 한다. 노래라면 다시 불릴 수 있어야 하고, 이야기는 다시 변주될 수 있어야 한다. 기록은 열려 있어야 하며, 해석은 독점되지 않아야 한다. 이 조건이 갖춰질 때 전통은 관광 상품이 되지 않아도 사람을 끌어당긴다. BTS의 ‘아리랑’은 이 순서를 분명히 보여줬다.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22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일본인 관광객들이 오는 3월 3년 9개월 만에 완전체로 돌아오는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컴백을 알리는 홍보물을 기념촬영하고 있다 2026122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22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일본인 관광객들이 오는 3월 3년 9개월 만에 '완전체'로 돌아오는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컴백을 알리는 홍보물을 기념촬영하고 있다. 2026.1.22

이제 질문은 명확하다. 우리는 여전히 K-헤리티지를 ‘팔 것’으로만 보고 있지는 않은가. 방문객을 늘리는 데 성공하면서, 정작 전통을 다시 쓰게 만드는 데는 실패하고 있지는 않은가. 관광은 문화의 목표가 될 수 없다. 문화가 살아 움직일 때 관광은 따라온다.

K-헤리티지가 힘을 잃는 순간은 외면받을 때가 아니라, 너무 쉽게 소비될 때다. 설명이 길어지고 체험이 짧아질수록 전통은 얇아진다. 이제 필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반복이다. 관광 상품이 되기 전에, 문화로 다시 작동하게 만드는 일. 그것이 K-헤리티지를 지속 가능한 자산으로 만드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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