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는 소비의 단위다. 취향에 따라 선택되고, 유행에 따라 교체된다. 반면 문명 코드는 사회가 감정을 처리하고 기억을 축적하며 공동체를 유지하는 방식에 가깝다. BTS 이후 K팝이 도달한 지점은 바로 이 코드의 영역이다. 노래를 듣는 경험이 공연을 넘어 정체성과 태도, 관계의 언어로 확장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BTS가 세계와 연결된 방식은 분명했다. 그들은 한국성을 ‘소개’하지 않았다. 대신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축적해 온 감정의 리듬을 있는 그대로 사용했다. 상처를 숨기지 않았고, 성공의 서사만을 반복하지도 않았다. 불안과 좌절, 연대와 회복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이 태도는 세계 팬들에게 ‘낯선 문화’가 아니라 ‘이미 알고 있던 감정’으로 받아들여졌다. 문화가 통할 때는 정보보다 태도가 먼저 작동한다는 사실을 BTS는 증명했다.
이 지점에서 K팝은 더 이상 장르 경쟁의 대상이 아니다. 미국 팝과 누가 더 세련됐는지, 어느 시장에서 더 많이 팔렸는지를 따지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 BTS 이후의 K팝은 어떤 감정과 가치, 어떤 세계관을 제시하는가라는 질문으로 평가받는다. 이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문명의 문제다.
이 변화는 팬덤의 성격에서도 확인된다. BTS 이후 팬덤은 단순한 응원 집단을 넘어 하나의 문화 공동체로 진화했다. 공연장에서의 환호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이슈에 반응하며 가치와 규범에 대해 집단적 판단을 내린다. 이는 스타 개인의 영향력을 넘어, 그 문화가 내포한 코드가 실제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장르는 팬을 만들지만, 문명 코드는 시민을 만든다.
이 흐름은 K-헤리티지 논의와도 맞닿아 있다. BTS의 ‘아리랑’이 갖는 의미는 전통을 차용했기 때문이 아니다. 전통을 문명 코드의 일부로 다시 작동시켰다는 데 있다. 아리랑은 노래이기 이전에 이동과 이별, 반복과 연대라는 감정의 구조다. 이 구조가 K팝이라는 현대적 플랫폼과 결합하면서 한국의 전통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현재의 언어가 됐다.
중요한 점은 이 변화가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BTS는 장기간에 걸쳐 일관된 메시지와 태도를 유지해 왔다. 자기 성찰, 존중, 연대라는 가치는 음악과 발언, 행동 전반에 반복적으로 드러났다. 이 반복이 신뢰를 만들었고, 신뢰가 쌓이자 문화는 장르를 넘어 코드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문명 코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반복과 축적의 결과다.
이제 질문은 한국 사회 전체를 향한다. 우리는 K팝을 여전히 수출 산업의 성공 사례로만 소비하고 있지는 않은가. 차트 성적과 매출, 공연 규모에만 주목하며 이 변화의 본질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BTS 이후 K팝이 남긴 것은 ‘얼마나 팔았는가’가 아니라 ‘어떤 태도를 남겼는가’였다.
문명 코드로 작동하는 문화는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설계의 대상이다. 단기 성과에 집착하면 코드는 닳고, 통제하려 들면 확장은 멈춘다. 필요한 것은 방향성과 일관성이다. K-헤리티지를 전통 보존이나 관광 자원으로만 다루는 접근으로는 이 흐름을 이어갈 수 없다. 문화는 상품이 되기 전에 태도여야 한다.
BTS 이후 K팝은 더 이상 “한국 음악이 세계에서 통한다”는 증명의 단계에 있지 않다. 세계는 이미 그 음악을 통해 한국이 어떤 사회이고, 어떤 감정을 공유하는지를 읽고 있다. 이는 기회이자 부담이다. 문명 코드가 된 문화는 더 많은 자유를 얻는 동시에 더 큰 책임을 요구받기 때문이다.
아리랑이 K팝의 언어로 다시 울린 것은 출발선에 불과하다. 그 이후 무엇을 반복하고, 무
엇을 축적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장르는 유행을 만들지만, 문명 코드는 시간을 만든다. BTS 이후의 K팝은 지금, 그 시간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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