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에 생활감이 있다고 하시는데, 그건 제가 실제로 엄마라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삶이 주는 연기의 폭이 있는 것 같거든요. '나는 엄마 역할 안 할래'라고 해도 이미 엄마로 살아온 시간이 있고 그게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것 같아요. 예전 제 연기를 보면 깔끔하고 또렷했다면, 나이가 들면서는 농담처럼 '삶이 나를 배우로 만든다'는 말을 하게 되더라고요. 인생이 그대로 묻어나니까 땅에 붙어 있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저는 연기를 막 잘하려고 애쓰기보다는 편안하게 다가가는 걸 좋아해요. 화를 내기보다는 웃으면서 알아서 잘하게 되는 쪽이죠. 결국 저는 저를 벗어나지 못하고 저를 기반으로 연기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극 중 하민은 집밥을 먹을 때마다 줄어드는 숫자를 목격하고, 숫자가 줄어들수록 엄마의 마지막을 직감하게 된다. 영화의 핵심 장치인 '숫자가 보인다'는 설정 역시 장혜진에게는 판타지라기보다 오히려 더 잔인한 현실처럼 다가왔다는 설명이었다.
"현실에서는 숫자가 보이지 않잖아요. 그런데 사실 우리 엄마의 숫자도 줄어들고 있는 거고 다만 눈앞에 안 보일 뿐이죠. 몇 번이 남았는지도 모르고요. 숫자가 보인다는 게 잔인한 설정이긴 한데, 오히려 그래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했어요. 이게 끝이 있다는 걸 아는 거잖아요. '내일 만나면 되지'가 아니라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런 지점이 크게 와닿았던 것 같아요."
부산 출신인 그는 사투리 연기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고민을 했다. 자연스러움과 전달력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제가 부산 사람이라 진짜 사투리로 말하면 '무슨 말이냐'고 하더라고요. 어느 정도로 사투리를 쓸지, 어디까지 알아듣게 할지 그 조절이 제일 어려웠어요. 연습해서 하는 거니까 묻어가는 부분도 있지만, '부산 사람인데 저 정도밖에 못 해?' 이렇게 보일까 봐 걱정도 했죠. 제작사 대표님이랑도 이야기하다가 '그냥 하자, 못 알아들으면 못 알아듣는 거고, 서울말 섞였다고 하면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정리했어요. 지역 정서라는 게 거기서 자라면서 몸에 배어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표현할 때도 '그냥 이렇게 말할 수 있지' 하는 마음으로 갔어요. 영그냥 하나의 지역 정서라고 생각하면 조금 더 부드럽게 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영화 '기생충' 이후 장혜진과 최우식은 다시 한 번 모자 관계로 스크린에서 재회했다. 이미 한 번 호흡을 맞춰본 사이이기에,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건너뛰고 바로 연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며 웃었다.
"그래서 캐스팅한 건 아닐까 싶을 수도 있는데, 저는 그건 또 그거대로 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기생충'은 워낙 큰 작품이었고, 이번 영화는 또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느낌이거든요. 우식이랑 두 번째 만나는 거라 서로에 대해서 많이 안다고 생각하니까 편안한 부분이 있어요. 처음 만나는 배우들처럼 '이 사람 어떤 성향이지?' 이런 걸 알아가는 단계를 거치지 않아도 되잖아요. 호흡 템포가 빠른지, 느린지 이런 것도 이미 아니까 그 과정을 생략할 수 있는 거죠. 다시 만난 우식이를 보고 많은 노하우가 생겼구나 싶었어요. 모니터를 보다가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말이 마음속에서 튀어나올 때가 있었거든요. 현장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도 더 커진 것 같고 주변도 많이 챙기더라고요. 몇 년 사이에 정말 많은 게 변했구나 싶었어요. 좋은 방향으로요. 나이만 먹는다고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그리고 우식이가 제 아들과 (외모가) 꼭 닮았는데 그 점도 몰입에 많은 도움이 됐어요. 정말 많이 닮았어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1기를 졸업한 장혜진은 1998년 고향으로 돌아간 뒤 한동안 연기와 무관한 삶을 살았다. 이후 2007년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을 통해 다시 연기를 시작했지만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까지는 또 긴 시간이 필요했다.
"연기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이었어요. 극장에서 '벤허'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어요. 그걸 계기로 연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거 같아요. 대학에 가서는 선배들 연기 보면서 울고 웃고, 너무 멋있어 보였어요. TV에서 사람들이 웃고 울게 만드는 게,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일이잖아요. 그게 너무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연기가 너무 재밌었고 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재밌었어요. 그런데 현실에 부딪치며 연기가 재미없고 하기 싫어지더라고요. 9년 정도 쉬고 있는데 이창동 감독님의 '밀양'을 시작으로 다시 연기를 하게 됐어요. (연기를 하니) 피가 도는 느낌이더라고요. '아, 내가 먼저 나를 못 믿고 멀어졌던 거구나' 싶었어요. 열등감이 저를 갉아먹었던 게, 그때는 좀 긍정적으로 바뀌었고요. 현장이 주는 즐거움이 정말 컸어요. 그때 같이 했던 스태프들이 아직도 '그때 네가 너무 신나하던 게 기억난다'고 말해줘요. 그게 원동력이 돼서 쉬지 않고 연기하게 된 것 같아요."
'밀양' 이후 곧바로 길이 열린 것은 아니었다. 오랜 시간 단역을 전전했고, 아이를 키우며 다른 삶을 고민해야 했던 시기도 있었다. 그럼에도 장혜진은 지금까지도 매 작품을 '마지막'처럼 붙잡고 간다고 말한다.
"'밀양' 하면 잘 될 줄 알았는데 또 그렇지는 않더라고요. 10년 가까이 단역도 했고,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다, 이제 아이 키우면서 본분 찾아야 하나' 이런 생각도 했어요. 지금도 사실 마음은 비슷해요. '이번이 마지막이다'라는 마음으로 해요. 많으면 버겁고, 질리잖아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까 최선을 다하게 되고 '이 작품만 하면 끝'이라고 생각하면 더 집중하게 돼요. 그래서 매번 더 재밌고요. 딱 그만큼, 그 마음으로 계속 하는 것 같아요."
설 연휴를 앞두고 대작들이 잇따라 개봉하는 상황에 대한 질문에, 장혜진은 경쟁이라는 말보다 '함께 살아나는 분위기'를 먼저 떠올렸다.
"맛집 옆에 또 맛집 있잖아요. 잘되는 사람 옆에 잘되는 사람 있는 것처럼 한국 영화도 요즘 '멋훗날 우리'처럼 잘되는 작품이 나오고 있잖아요. 같이 붐업이 돼서 좋은 시너지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극장에 오는 재미를 다시 찾았으면 좋겠고요. 저도 집 밖에 나오는 거 싫어해요. 어릴 때 극장에서 받았던 감동, 음향이 커서 깜짝 놀라던 기억, 그런 것들이 극장에만 있잖아요. 감정을 숨기고 드러내는 것도 묘하게 신경 쓰이는 그 공기도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고요. 세 영화가 같이 나오면서 그런 재미들을 다시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배우로서의 바람을 묻자 그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며 비슷한 아픔과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존재, 동시대에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운 배우가 되고 싶다고 털어놨다.
"항상 같이 가는 배우였으면 좋겠어요. 같은 시대에, 같은 아픔과 같은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사람. 예전에 '동시대에 있어서 고맙다'는 말을 본 적이 있는데, 그걸 보고 '아, 나도 저런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별이라기보다는 친구 같은 느낌의 배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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