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는 세 가지 구조적 원인을 짚었다. 첫째는 레버리지의 역습이다. 상승장에서 불어난 차입 투자와 파생상품 포지션은 가격이 꺾이자 연쇄 청산으로 이어졌다. 이는 전통 금융시장이 100년 가까이 반복해 온 교훈과 다르지 않다. 신용은 호황기에는 수익을 키우지만, 불황기에는 손실을 증폭시킨다. 둘째는 ETF의 양면성이다. 현물 ETF의 등장은 제도권 편입의 상징처럼 여겨졌고,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의 참여는 신뢰의 신호로 해석됐다. 그러나 하락장에서는 자금 유출의 통로가 되어 가격을 압박했다. 유동성은 들어올 때는 조용하지만, 나갈 때는 요란하다. 셋째는 분위기의 붕괴다. 투기적 자산은 현금흐름이 아니라 기대와 신념에 의존한다. 그 기대가 식는 순간, 가격은 논리보다 심리에 의해 움직인다.
이 국제적 흐름은 한국 시장의 사건과 맞물려 더욱 뚜렷해진다. 국내 주요 거래소인 빗썸에서 발생한 이른바 '유령 코인' 사태는 기술적 오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존재하지 않는 자산이 장부상 계정에 반영되고, 그 여파가 시장에 파장을 일으켰다는 사실은 내부 통제와 회계 검증 체계의 취약성을 드러낸다. 감독기관인 금융감독원이 검사로 전환해 전면 점검에 나선 것은 당연하다. 은행에서 전산 오류로 '없는 돈'이 찍힌다면 그것은 단순 사고가 아니라 신뢰의 위기다. 가상자산 시장이라고 다를 수 없다.
블록체인은 분산 원장을 표방하지만, 중앙화 거래소의 내부 장부는 여전히 기업 통제 아래 있다. 이 간극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방치한다면, 아무리 기술이 진보해도 신뢰는 쌓이지 않는다. 전통 금융권은 수십 년에 걸쳐 내부 통제, 외부 감사, 일일 대사, 자기자본 규제라는 장치를 발전시켜 왔다. 가상화폐 시장이 성숙한 금융 자산으로 인정받으려면 동일한 기준을 수용해야 한다. 신뢰는 선언이 아니라 절차에서 비롯된다.
각국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과 지정학적 위험에 대비해 금을 사들이고 있다. 가상자산이 한때 '디지털 금'을 자처했지만, 준비자산의 지위와는 거리가 있다. 기관 투자자의 포트폴리오 내 비중도 미미하다. 제도권 편입은 상징적 조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미래를 단정할 필요는 없다. 블록체인 기술은 결제, 자산 토큰화, 스마트 계약 등에서 여전히 잠재력을 보여준다. 스테이블코인은 제도권 금융과의 접점을 넓히고 있다. 문제는 비트코인을 비롯한 주요 자산이 서사에 의존한 채 구조적 개혁을 미루어 왔다는 점이다. 상승장은 문제를 가려주지만, 하락장은 문제를 드러낸다. 지금 드러난 취약성을 외면한다면 다음 상승 역시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디지털 인프라와 금융 감독 체계를 동시에 갖춘 나라다. 이번 유령 코인 사태를 계기로 거래소의 자기자본 요건 강화, 고객 자산과 회사 자산의 엄격한 분리, 상시 외부 감사, 레버리지 규율 정비 등 제도적 보완이 뒤따라야 한다. 이는 규제를 위한 규제가 아니라 시장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가상화폐 시장은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반항적 신화에 기대어 주변부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건전한 규율 속에서 지속 가능한 자산으로 자리매김할 것인지. 금융의 역사는 단순하다. 상식과 절제를 무시한 시장은 오래가지 못한다. 기술은 혁신을 약속하지만, 신뢰는 제도에서 자란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차갑다. 그러나 추위는 때로 각성을 낳는다. 서사의 붕괴는 위기이지만, 동시에 성숙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빗썸의 유령 코인은 단지 한 기업의 실수가 아니라, 시장 전체에 던진 경고다. 흥분의 시대를 넘어 책임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을 때, 비로소 해빙은 시작될 것이다. 빗썸 처리는 기본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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