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21세기판 러다이트 운동
1811년 영국 직물공장들이 연쇄적으로 파괴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수공업으로 이루어졌던 섬유산업에 방직기가 도입되면서 숙련공들의 대규모 실직이 일어났다. 1811~1817년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기계를 부수고 공장을 불태우는 대규모 폭동이 영국 전역으로 확산한 바 있다. 이를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이라 한다. 최초로 방직기를 파괴했다고 알려진 네드 러드(Ned Ludd)와 추종자를 뜻하는 ‘–ite’의 합성어다. 이른바 최초의 ‘기계와의 전쟁’이었다. 기계가 도입되면서 숙련공들은 일자리를 잃고 수공업이 몰락했지만 경공업과 중공업을 중심으로 산업화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남는다.
21세기 들어 AI 혁명이 시작되었다. 생산성이 올라가고 산업의 고도화가 전개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지만 그 이면에는 노동자들을 대체할 것이라는 위협도 있다. 2026년 연초부터 미국 주요 기업들이 10만명가량 인력 감축을 계획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세계적인 화물운송사 UPS는 약 3만명, 아마존은 약 1만6000명 감원을 예고했다. 대부분 기업은 감원 사유로 AI 도입을 꼽고 있다. 현대자동차 계열사인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양산하고, 2028년부터는 단계적으로 생산 공정에 투입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현대차 노조는 “로봇 투입, 판 엎겠다”고 말하고, 이재명 대통령은 “거대한 수레는 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AI와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AI 혁명이 본격화함에 따라 인류는 어떠한 구조적 변화를 마주할 것이고,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모색해야 할 때라는 점이다.
AI 확산 가속화
AI 확산 속도가 어마어마하다. 대규모언어모델(LLM) 기반의 생성형 AI인 챗GPT가 2022년 11월 공개된 이후 2026년 2월 현재 약 10억명에 달하는 활성 사용자 수를 기록하고 있다. 인터넷이 상용화된 지 3년 후 활용률이 7.8%인데 생성형 AI 활용률은 같은 기간 64%를 넘어섰다. PC가 처음 도입되어 약 20년 걸리고, 인터넷이 도입되어 약 10년 걸린 도입률을 생성형 AI는 3년 만에 돌파했다. 개인적 AI 사용경험도 빠른 속도로 늘어나지만 다양한 산업에 걸쳐 기업들이 AI 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보면 미국 ICT 기업들은 이미 63%가 AI를 도입했고, 향후 3년 이내에 90%가 AI를 도입할 계획이다. 다른 산업에서 속도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AI를 도입해 나가는 추세는 유사하다.
AI 모델이 경쟁적으로 고도화되고, 휴머노이드 로봇 양산도 가시화되고 있다. 오픈AI의 챗GPT뿐만 아니라 구글의 제미나이(Gemini), 앤트로픽의 '클로드 오퍼스(Claude Opus)', SK텔레콤의 퍼플렉시티(Perplexity) 등 차별화되고 고사양의 생성형 AI가 출시되면서 AI 도입은 더욱 가속될 전망이다. 2028년부터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생산 현장에 본격 투입될 것으로 판단된다. 세계 각국은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해 AI와 로봇 확산 경주를 하고 있고, 기업들은 생산성 향상을 목표로 AI 도입을 가속화하고 있다.
생산성 향상
AI와 로봇의 도입은 극명한 생산성 향상을 가능케 한다. 필자가 시대적 흐름을 아래 그림과 같이 표현해 보았다. 물론 AI를 활용했다. 만약 직접 그림을 그렸다면 며칠이 걸려도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래픽 디자인으로 표현했더라면 별도의 담당자를 고용해야만 했을 것이다. 이 그림을 그려내는 데 필요한 시간은 단 몇 분이었다. 이렇게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증대되는 현상을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이라고 하지 않는가? AI를 도입하면서 전개되는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시대임을 자각하게 만든다.
AI를 사용하면 할수록 생산성은 더욱 향상된다. AI 초기 사용자는 결과물을 검토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지만 경험이 축적될수록 AI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AI도 학습을 하면서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환각현상)이 감소한다. 할루시네이션이란 AI 모델이 잘못된 결과나 부정확한 아웃풋을 생성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즉 사용자도 AI를 학습하고, AI도 사용자를 학습하면서 생산성은 더 올라가는 것이다.
생산성이 향상된다는 것은 적은 노동 투입으로도 같은 수준의 성과를 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생성형 AI를 업무에 활용하는 근로자는 주 40시간을 기준으로 약 1.5시간 정도 근무시간 단축효과가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작업별로는 관리직이나 전문직 등에서 시간 절감 효과가 크게 나타났다(1.5~2.8%). 한국은행은 AI 활용에 따라 잠재적인 생산성 향상 효과가 나타남을 증명했고 미국을 대상으로 수행한 그 밖의 다른 연구들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도출되었다.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 새로운 일자리 어젠다
AI는 골디락스를 불러온다. 즉 성장을 견인하면서 물가 안정에도 기여할 것이다. AI를 도입할수록 비용을 절감하니 기업의 마진은 증가한다. AI를 활용하면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재편이 일어나고 생산성은 올라가니 경제는 성장할 수밖에. 물가 상승률이 둔화하는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통상적으로 기술이 발전하고 신기술이 도입되면 같은 수준의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이 감소하게 된다. 1차 산업혁명의 증기, 2차 산업혁명의 전기, 3차 산업혁명의 인터넷과 PC는 신기술 도입이 엄청난 비용 감소를 만들어낸다는 역사적 증거들 아닌가?
AI 시대가 가져올 경제적 변화는 '고용 없는 성장'이다. 기업들 걱정하지 말자. 생산성이 올라가니 경제 걱정도 하지 말자. AI는 물가 안정에도 기여한다. 일자리 문제만 남았다. 문제는 일자리에 있다. 최근 국내외 저명한 컨설팅사들과 연구기관들이 AI를 사용하기로 하면서 RA(Research Assistant·연구보조원)를 고용하지 않기로 했다. 법률회사에서도 이제 '새끼변호사'를 채용하지 않는 분위기다. 최근 기업들이 신입직원을 채용하지 않고 경력직만을 뽑는 이유도 유사하다. AI에 의해 대체될 대상은 청년인 것이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일자리 구조 변화에 주목하자. 사라지는 일자리도 있지만 생겨나는 일자리도 있다. 인류 역사는 늘 신기술이 도입되어 왔고 그때마다 사람의 노동력을 줄여왔다. 그런데 왜 현대인은 늘 바쁘게 살아가는 것일까? 새로운 산업과 새로운 부가가치와 새로운 기업들 그리고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시가총액 상위 기업들을 보라. 3차 산업혁명 또는 4차 산업혁명 이전에는 존재하지도 않던 업종과 기업들이 채워져 있지 않은가? 일자리의 양이 줄어드는 것보다 일자리 구조가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집중해야 한다. 사라지는 일자리에서 생겨나는 일자리로 인력을 재배치 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어떠한 역량이 요구되고 어떠한 훈련 등 프로그램을 도입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청년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사회는 경력을 요구하지만 청년은 경력을 가질 기회조차 없다. 단기적 시야로 경력직만을 찾는다면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면 경력을 갖춘 사회의 허리 계층이 부재할 것이다. 정부는 비취업 청년에게 청년수당 등과 같은 안전망을 제공하느라 바쁘다. '쉬는 청년'을 유도하는 정책이 아니라 '일하는 청년'을 유도해야 한다. 쉬는 청년에게 수당을 제공하는 대신 신입 청년을 채용하는 중소기업들에 임금을 지원하는 방식은 어떠한가? 청년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안전망은 수당이 아니라 일자리임을 잊지 말자.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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