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 대한 존중은 말로 완성되지 않는다.
감사와 예우의 표현이 아무리 반복돼도, 군이 국가 안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가 분명하지 않다면 존중은 공허해진다. 군이 존중받는 사회란, 군이 국가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설계된 사회다. 지금 대한민국이 마주한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는 군을 정말 쓸모 있게 쓰고 있는가.
이재명 대통령이 군 과학화를 국가 과제로 제시한 것은 이 질문에 대한 정면 응답이다. 병력과 숫자 중심의 군에서 장비·무기·기술 중심의 군으로 전환하겠다는 인식, 군 복무를 청춘의 공백이 아니라 첨단 기술을 익히는 기회로 바꾸겠다는 발언은 군을 소모 조직이 아닌 생산 조직으로 재정의하려는 시도다. 이는 안보 정책을 넘어 국가 인재 전략에 가깝다.
그러나 방향 제시만으로 존중이 생기지는 않는다. 존중은 구조에서 나온다.
군이 여전히 ‘버텨야 하는 시간’, ‘경력이 멈추는 공간’으로 인식되는 한, 아무리 군 과학화를 외쳐도 인재는 오지 않는다. 인구절벽 시대에 국방의 위기는 병력 감소보다, 국가가 군을 통해 무엇을 만들고 축적하려 하는가의 문제다.
해외 주요국은 이 문제를 오래전부터 구조적으로 다뤄왔다. 미국에서 군은 단순한 방위 조직이 아니다. 군은 기술 혁신의 주요 플랫폼이다. 미 국방 체계에서 군은 새로운 기술 수요를 정의하고, 이를 대학과 민간 기업이 해결하도록 연결한다. 군은 초기 수요자가 되어 기술을 실증하고, 성공한 기술은 민간 산업으로 확산된다. 이 구조 속에서 군 복무는 경력 단절이 아니라 고난도 문제 해결 경험으로 인정받는다. 그래서 군 출신 인재는 민간에서도 경쟁력을 갖는다.
이스라엘의 경우는 더욱 직접적이다. **Israel Defense Forces**에서 군 복무는 의무이지만, 동시에 최상위 인재가 선택하는 경로다. 기술 부대에서의 복무 경험은 이후 창업과 산업 진출에서 강력한 신뢰 자산으로 작동한다. 군은 인재를 소모하지 않는다. 인재의 가치를 증폭시키는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회에서 군은 존중의 대상이자, 국가 기술 생태계의 핵심 허브로 인식된다.
유럽도 다르지 않다. 프랑스와 독일은 군 연구 인력이 공공 연구기관과 산업계로 자연스럽게 이동하도록 제도를 설계해왔다. 군 출신이라는 이유로 경력이 단절되지 않는다. 군은 폐쇄된 조직이 아니라, 국가 지식 생태계의 한 축이다. 이들 사회에서 군에 대한 존중은 희생을 강조하는 문화가 아니라, 군의 역할을 쓸모 있게 설계한 결과다.
이 해외 사례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군을 존중하려면, 군을 유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군이 기술을 이해하고, 생산하며, 국가 경쟁력에 기여할 때 존중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반대로 군을 과거의 역할에 묶어둔 채 희생만 요구하면, 존중은 점점 공허한 구호가 된다.
본 컬럼에서 제안한 육사와 태릉CC를 묶은 군사과학 복합캠퍼스는 바로 이 존중을 구조로 구현하는 방식이다. 이는 시설 확충이나 개발 계획이 아니다. 군을 지식·기술·인재의 플랫폼으로 바꾸는 설계다. 육사는 군사과학과 전략을 정의하는 두뇌가 되고, 태릉CC는 연구·실증·산학협력이 이뤄지는 몸통이 된다. 군 복무는 희생의 시간이 아니라, 국가 최고 수준의 기술 경험이 된다.
이 선택은 군인 개인을 위한 배려를 넘어선다. 국방의 성격 자체를 바꾼다. 지금까지 한국 군은 민간 기술을 뒤쫓아 구매하는 소비자에 가까웠다. 그러나 군사과학 복합캠퍼스가 작동하면, 군은 기술을 정의하고 검증하는 공동 설계자로 전환된다. 국방비는 소모 비용이 아니라, 국가 기술 주권을 축적하는 투자로 재해석된다.
이 지점에서 태릉CC를 아파트 중심으로 활용하자는 발상은 다시 질문받아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주택 공급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대가로 국방이 인재 경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을 잃게 된다. 주택 수요는 다양한 방식으로 풀 수 있다. 하지만 군을 기술 플랫폼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공간과 구조는 흔치 않다.
군을 존중하는 사회란, 군인에게 고생을 요구하는 사회가 아니다.
군에서의 시간이 쓸모 있고, 의미 있고, 미래로 이어지도록 설계하는 사회다.
군 과학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다.
그리고 그 필연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느냐가,
대한민국 안보와 성장의 다음 10년을 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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