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 컬럼- 병력에서 두뇌로] 2회 육사를 군사과학 두뇌센터로 바꾸자

  • ― 이스라엘 군은 어떻게 IT·AI 창업의 요람이 되었나

이스라엘을 설명할 때 흔히 안보 위협과 전쟁 경험이 먼저 언급된다. 그러나 오늘날 이 나라를 규정하는 진짜 힘은 다른 데 있다.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IT·AI 스타트업을 배출한 국가 중 하나다. 그리고 그 창업 생태계의 출발점에는 언제나 군이 있다. 이스라엘에서 군은 총을 드는 조직이 아니라, 기술 창업의 요람이다.

 
이스라엘군(Israel Defense Forces)의 역할은 전통적 군대의 범주를 훌쩍 넘는다. 이 군은 국가가 직면한 가장 복잡한 문제를 기술적으로 정의하고, 이를 해결하는 실전형 연구 조직에 가깝다. 대규모 데이터 처리, 실시간 의사결정, 신호·영상 분석, 사이버 보안, 자율 시스템 운용은 이스라엘 군에서 일상적으로 다뤄지는 과제다. 이는 그대로 AI·딥테크 창업의 출발 문제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군 복무가 IT·AI 인재를 길러내는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핵심은 군 복무 자체가 세계 최고 수준의 실전 R&D 경험으로 설계돼 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의 젊은 병사와 장교들은 교재 속 문제가 아니라, 실패 비용이 매우 큰 실제 환경에서 문제를 해결한다. 코드 한 줄, 알고리즘 하나가 작전의 성패를 좌우한다. 이 경험은 민간 기업에서도 쉽게 제공할 수 없는 훈련이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이 구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정보·사이버 부대인 Unit 8200이다. 이 부대 출신 인재들은 전역 후 이스라엘 IT·AI 창업 생태계의 핵심 인력으로 이동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특정 부대의 명성이 아니다. 더 본질적인 이유는, 군에서 다룬 문제와 기술이 전역과 동시에 창업 아이디어와 사업 모델로 전환될 수 있는 연속 구조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에서 군 복무는 ‘경력 공백’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강력한 이력서다. 군에서 어떤 데이터를 다뤘는지, 어떤 알고리즘을 설계했는지, 어떤 시스템을 구축했는지가 이후 창업과 취업에서 그대로 평가된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회에서 군 복무 경험은 IT·AI 인재 인증서처럼 작동한다. 군은 인재를 소모하지 않는다. 인재의 가치를 증폭시키는 인큐베이터로 기능한다.

 
이 점에서 이스라엘 군사교육의 성격은 분명하다. 군은 단순히 명령을 수행하는 지휘관을 길러내지 않는다. 군은 기술을 이해하고, 문제를 정의하며, 시스템으로 해결할 수 있는 리더를 만든다. 미래의 지휘관은 총과 병력을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 기술의 가능성과 한계를 이해하고 이를 작전 개념으로 번역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스라엘에서 군 엘리트 교육은 곧 국가 기술 엘리트 교육이다.

그래픽노트북LM
[그래픽=노트북LM]


 
이 사례는 한국의 육군사관학교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육사는 여전히 장교 양성기관이라는 틀에 머물러도 되는가. AI와 드론, 사이버전과 무인체계가 전장의 중심이 된 시대에,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지휘관을 양성하는 군사학교는 미래형 조직이라 보기 어렵다. 군 과학화가 구호로 끝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두뇌 기관이 바뀌지 않으면, 군은 영원히 기술의 소비자에 머문다.

 
육사를 군사과학센터로 바꾸자는 제안은 공학 과목을 몇 개 늘리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스라엘 사례가 보여주듯, 군 엘리트 교육은 문제 정의 능력과 기술 이해를 중심으로 재편돼야 한다. 육사는 군이 필요로 하는 기술 과제를 정의하는 두뇌가 되고, 연구와 실증, 산업화로 이어지는 흐름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이 지점에서 태릉이 다시 등장한다. 육사와 인접한 태릉을 군사연구단지로 설계한다면, 군 교육과 연구, 실증과 창업이 하나의 동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군을 단순한 안보 조직이 아니라, 국가 AI·IT 혁신의 플랫폼으로 재정의하는 선택이다. 이스라엘이 군을 통해 창업 생태계를 만든 것처럼, 한국도 군을 인재와 기술의 출발점으로 바꿀 수 있다.

 
인구절벽 시대에 국방의 경쟁력은 병력의 숫자가 아니라, 얼마나 뛰어난 인재가 군을 거쳐 사회로 확산되느냐에 달려 있다. 이스라엘은 이미 답을 보여줬다. 군을 최고의 기술 인큐베이터로 설계한 나라만이, 안보와 산업을 동시에 강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질문은 분명하다.

대한민국 육사는 계속 과거의 전쟁을 가르칠 것인가,
아니면 미래 산업을 만드는 두뇌 기관으로 진화할 것인가.
이 선택이 군 과학화의 성패를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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