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 반영된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계획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한동안 흔들리던 원전 정책의 방향은 일단 정리됐다. 그러나 이번 결정을 단순히 ‘원전 정책의 복원’으로만 해석한다면 본질을 놓치게 된다. 핵심은 원전이 아니라, AI 시대 전력 확보가 국가 생존 전략의 문제로 넘어왔다는 현실이다.
인공지능(AI)은 전기를 전제로 작동한다. 데이터센터, 반도체 공정, 클라우드 인프라, 초거대 연산 체계는 모두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전력 공급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전력이 부족한 국가는 AI 경쟁에서 탈락한다. 이는 환경 논쟁이나 이념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경쟁력과 국가 안보의 문제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신규 원전 건설을 다시 선택한 정책 방향 자체는 현실 인식에 부합한다. 재생에너지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전력망이 해외와 연결되지 않은 ‘에너지 섬’ 국가에서, 재생에너지 단일 체계만으로 24시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감당하겠다는 발상은 아직 기술적으로도, 시스템적으로도 성숙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문제는 결론보다 과정이다. 이미 확정된 국가 계획이 장관 발언과 대통령 발언을 거치며 사실상 유보 상태로 흔들렸고, 그 사이 시간은 흘렀다. AI 시대의 전력 수요 증가는 돌발 변수가 아니라 수년 전부터 예고돼 온 구조적 변화였다. 그럼에도 정책 결정자들은 이를 사전에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시간만 낭비했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후보자 시절에는 신규 원전 건설의 불가피성을 인정했다가, 취임 이후에는 ‘국민 공론화’를 전면에 내세우며 한발 물러섰다. 대통령 역시 원전 부지의 현실성과 안전성을 언급하며 추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 결과 정부는 “계획은 존중한다”면서도 실제 추진 의지는 불분명한 상태를 스스로 만들어냈다.
AI 산업은 이런 정책적 혼선을 감내하지 않는다.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은 수십 년을 내다보고 입지를 결정한다. 전력 정책의 신호가 흔들리는 국가는 글로벌 투자 지도에서 가장 먼저 제외된다. 전력은 이제 복지 인프라가 아니라 산업과 국가 경쟁력의 생존 인프라다.
더 아쉬운 점은 공론화의 깊이다. 그동안 진행된 토론회와 여론조사는 원전의 경직성 완화 같은 기술적 논의에 머물렀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 부지 선정 기준, 사고 발생 시 책임 구조 등 핵심 쟁점은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 이는 공론화의 형식을 갖췄을 뿐, 정책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과거 탈원전 정책이 사회적 갈등을 키운 이유 역시 방향성 자체보다 현실과의 속도 차, 그리고 설명 부족에 있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이제 정부는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준비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원전을 더 짓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AI 시대에 한국이 어떤 전력 구조로 산업 경쟁력을 유지할 것인가다. 전력 정책은 더 이상 정치적 구호의 대상이 아니다. 국가의 생존 조건이다.
결론은 내려졌다. 이제 남은 과제는 책임이다. 왜 혼선이 발생했는지, 그 사이 잃어버린 시간의 비용은 무엇인지, 그리고 다음 결정에서는 어떻게 예측 가능성을 확보할 것인지에 대해 정부는 분명히 설명해야 한다. 기본과 원칙, 그리고 상식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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