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베네수엘라 사태, 개입이 문제라면 방치는 대안인가

  • 박선태 페루 투르히요 국립대명예교수

박선태 전 주페루공사 현 페루 트루리요 국립대학 명예교수
[박선태 페루 투르히요 국립대명예교수  
미국의 개입 이후 베네수엘라 사태를 둘러싼 논쟁은 빠르게 ‘국제법 위반’이라는 프레임으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국내외 시민단체와 일부 정부, 국제사회 일각은 주권 국가의 현직 대통령을 무력으로 체포·연행한 행위가 국제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선례라고 비판한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국제법과 규범의 중요성을 환기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경청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논의가 국제법 조항의 해석에만 머문다면 정작 핵심 질문 하나가 빠진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이었는가라는 질문이다.

나는 오랜 기간 중남미 여러 국가의 현장을 직접 지켜봤다. 그중에서도 베네수엘라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자원 부국이다. 국제에너지기구와 OPEC 통계에 따르면 확인 매장량 기준 세계 최대 수준의 원유를 보유하고 있으며, 남미 상위권의 천연가스 매장량도 갖고 있다. 여기에 금, 철광석, 보크사이트, 콜탄 등 전략 광물, 풍부한 수력과 농업 잠재력까지 더하면 정상적인 제도와 정책만 작동했더라면 국민 다수가 안정적 삶을 누릴 수 있는 조건을 갖춘 나라였다.

그럼에도 오늘날 베네수엘라는 경제·사회·인도주의적 차원이 중첩된 심각한 복합 위기에 직면해 있다. 유엔과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은 베네수엘라 상황을 전시에 준하는 국가 기능 붕괴로 평가해 왔다. 차베스에서 마두로로 이어진 장기 집권 체제는 포퓰리즘 정책과 무리한 국유화로 시장과 제도의 신뢰를 무너뜨렸다. 석유 수출로 확보한 재원은 생산성 회복이나 기술 재투자보다 정치적 동맹 유지와 단기적 인기 정책에 소진되었고, 국영 석유회사(PDVSA)의 설비 투자와 유지·보수는 급격히 위축됐다.

결과는 수치로도 분명하다. 한때 하루 300만배럴에 달하던 원유 생산량은 2010년대 후반 100만배럴 이하로 급감했고, 노후화된 정유 시설과 파이프라인에서 원유 유출 사고가 반복되며 환경 피해까지 겹쳤다. 핵심 산업이 국가를 지탱하기는커녕 오히려 부담이 되는 역설이 현실이 된 것이다.

이 모든 비용은 국민에게 전가됐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베네수엘라를 떠난 탈주민과 난민은 700만명을 넘어 전체 인구의 약 3분의 1에 이른다. 이들은 정치 구호보다 “돌아갈 수 없는 나라”를 말한다. 의사와 교사, 기술자였던 사람들이 국경을 넘은 뒤 비공식 노동에 의존하는 현실은 국가 붕괴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잠식하는지를 보여준다.

문제는 내부 붕괴에 그치지 않는다. 국가 통제력이 약화되면서 베네수엘라는 마약 밀매와 불법 경제의 경유지로 전락했고, 이는 중남미 전역의 치안과 안정성에 부담이 됐다. 그럼에도 국제사회는 오랫동안 ‘주권 존중’과 ‘대화 촉구’라는 정치적으로 안전한 언어를 반복해 왔다. 그러나 그 언어가 실제로 굶주림을 막았는지, 탈출을 줄였는지에 대해서는 답을 찾기 어렵다.

이미 수개월 전부터 미국은 공개적으로 압박과 작전 가능성을 시사해 왔다. 그사이 마두로 정권은 구조 개혁이나 정치적 타협보다 중국, 러시아와 밀착을 강화했다. 일부에서는 이번 개입이 마약과 테러 차단이라는 명분 이면에 중국 견제와 에너지 이해관계가 작동한다고 지적한다. 국제정치의 현실을 고려하면 이 주장 역시 일정 부분 설득력이 있다. 그렇기에 이 사안을 단순히 선악 구도로만 재단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논의는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누가, 어떤 조건에서, 어떤 자본으로 베네수엘라 경제를 다시 일으킬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법과 제도의 신뢰가 붕괴된 상황에서 순수한 인도적 명분만으로 대규모 투자와 재건이 가능하다고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이제 시선은 개입의 옳고 그름을 넘어 포스트 마두로 시대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로 옮겨가야 한다. 국제사회가 모아야 할 것은 비난의 언어가 아니라 협력과 지혜다. 무너진 치안을 회복하고, 붕괴된 경제를 재건하며, 훼손된 인권과 자유를 복원하는 일은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 조속한 시일 내에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 민주적 정당성을 갖춘 정부를 선출하도록 지원하는 것도 필수다.

다만 이행하기는 쉽지 않다. 장기간 독재 체제 아래 놓였던 사회에서 독재 청산은 또 다른 불안정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치안 공백과 야권 분열의 위험도 존재한다. 잘못 관리된 전환은 사회를 더 악화시키고 국민의 기대를 좌절로 바꿀 수 있다. 그렇기에 핵심은 속도가 아니라 관리된 전환이다. 단기 성과를 서두르기보다 제도 회복과 사회 안정, 경제 재건이 단계적으로 맞물리도록 장기적 관점의 다자 협력이 필요하다.

결국 이 사태는 개입이 옳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방치 이후의 세계를 어떻게 복구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 가깝다. 개입이 언제나 옳지는 않다. 그러나 방치가 언제나 옳았던 것도 아니다. 우리가 선택을 미뤄 온 시간만큼 그 비용은 언제나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먼저 전가되어 왔다.

박선태 필자 주요 이력

▷중남미전문가(전 외교관, 페루 투르히요 국립대명예교수) ▷국가철도공단 글로벌대사 ▷중남미철도경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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