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 칼럼] 병오년 北의 '제9차 당 대회'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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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 아주대 아주통일연구소 교수(연구실장)]

 
북한의 최대 정치행사인 제9차 조선노동당 대회(이하 ‘당 대회’)가 개최 시기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늦어도 내년 1분기 중에는 열릴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 당 대회는 이재명 대통령의 남은 임기와 궤를 같이하기에 현 정부의 한반도 정책 수립 시 직접적인 참고가 된다. 북한의 당 대회는 지난 시기의 과업을 평가하고 새로운 노선과 전략 목표를 제시함과 동시에 향후 5년간의 행동 지침을 공식 채택하는, 새 정치 주기의 시작을 대내외적으로 선언하는 자리이다. 무엇보다 최상위 규범인 노동당 규약의 개정이 가능하다. 1980년 제6차 당 대회 이후 36년 동안 개최를 미뤄오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를 당 위원장으로 채택한 2016년 제7차 당 대회 이후 5년 단위로 개최하고 있다. 당장 대남정책의 의미있는 전환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세간의 중론이지만, 제8차 당 대회 이후 평가와 다가올 제9차 당 대회 전망을 다각도로 살피는 것이 ‘한 지붕 두 가족’인 한반도 실정을 오롯이 진단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사실 김정은 체제 2기 출범을 알렸던 제8차 당 대회의 채택 결정서는 내용이 전면 공개되었던 제7차 당 대회 때와 달리 보도 수준에 그쳤음에도 몇 가지 방향성을 시사했다. 첫째, 제8차 당 대회는 이민위천, 일심단결, 자력갱생의 3대 구호로 장식된 정면돌파형 내부결속의 향연이었다. 2021년 코로나-19 팬데믹과 태풍 피해 등 불확실성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 내부적 피로감이 누적되는 상황에서 당 대회가 필요했던 이유이다. 둘째, 군사에서 경제로, 강조점의 이동이다. 제7차 당 대회에서 노동당 규약 서문에 명시한 핵무력과 경제건설 동시 추진의 ‘병진노선’을 삭제하고 ‘자력갱생 경제건설’로 대체하였다. 즉, 병진노선 시기의 북한 경제는 발전과 성장 중심의 5개년 전략 목표를 제시하여 성과에 대한 부담을 떠안는 구조였다면, 제8차 당 대회에서 제시된 ‘5개년 계획’은 안정과 유지에 방점을 두고 생활 개선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지방공업, 주택, 병원 등 가시적·소규모 성과 중심으로의 전환이라 평가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체제 생존의 절대 전제로서 ‘핵무력 고도화’라는 핵의 위상변화이다. 즉 핵과 경제, 양자의 성과를 약속한 이전 노선의 부담을 지우고 핵을 전제로 체제를 관리하는 생존 노선으로 변모이다. 핵보유국의 기정사실화와 동시에 미국과의 장기 대결도 불사하겠다는 포석이다. 셋째, 통일·민족 정책은 유지하되 사회주의 건설 범주의 현실화이다. 제8차 당 대회에서 개정된 현행 규약에는 '조국 통일'과 '민족의 공동 번영'이 노동당의 투쟁 목표라고 명시돼 있으나, “부강하고 문명한 사회주의 사회 건설”은 ‘공화국 북반부’에 국한하는 것을 노동당의 당면 목적으로 규정하였다. 동시에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 과업 수행”이라는 문구는 삭제, 완화하며 ‘남조선 혁명론’의 유효기간에 대한 국내 전문가들 사이의 논란을 촉발시켰다.

북한은 이미 2021년 제8차 당 대회에서 제시된 계획들에 대한 정책 결산을 지난 9일부터 3일간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3차 전원회의를 통해 완료했다. 특히 군사 및 경제부문에 있어 “많은 문제들이 효과적으로 올바르게 해결됐으며 정확한 발전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내지는 “올해 경제발전목표들과 함께 5개년 계획이 완수됐다”는 식으로 넉넉히 자평한 바 있다. 이어 18일 재일 조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 또한 지난 5년간 “생산 확대의 물질기술적 담보가 마련됐다”며 제9차 당 대회 이후를 “전례를 초월하는 경이적인 역동의 시대”로 규정하며 보조를 맞추었다. 김 위원장이 제8차 당 대회에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수행이 거의 모든 부문에서 크게 미흡했다고 실토한 것과는 사뭇 대조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향후 5년, 북한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제9차 당 대회의 핵심 메시지는 큰 축의 노선 전환이 아닌 지난 5년간 구축해온 노선을 정치적으로 완결하고 제도화하는 무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제8차 당 대회 이후 북한의 행보는 비교적 일관됐고, 최근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가 발신하는 메시지는 다음 방향성이 내부적으로 정리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한다.

첫째, 성과 총화형 당 대회의 가능성이다. 최근 전원회의와 현지지도 보도에서 반복되는 표현은 “결정적 단계”, “총결산”, “새로운 발전 국면의 토대 구축”이다. 이는 이번 당 대회가 제8차 당 대회 5개년 계획의 성과 총화, 김정은 집권 2기의 정치적 안정성 확인, 다음 단계로의 관리 가능한 발전이라는 성격으로 진행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둘째, 핵무력 완성을 넘어 ‘일상화’ 단계로의 진입과 재래식 병진 정책이다. 우선 핵을 더 이상 협상 수단이 아니라 국가 존립의 상수로 규정하는 기존 노선이 재확인됨은 물론 전쟁억제력의 신뢰성을 확보했음과 함께 책임 있는 핵보유국과 같은 기존 표현을 반복하며 핵보유 명분을 도모하고 과시적 행보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이미 지난 9월 13일 조선중앙통신은 제9차 당 대회에서 핵무력과 상용(재래식)무력 병진정책 제시를 예고한 바 있다. 셋째, 달라진 대남·대미 인식이 반영된 노동당 규약 개정이다. 2023년 12월 당 전원회의에서 “적대적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인 두 교전국 관계”로 규정한 이후 이 같은 흐름이 반영된 헌법개정과 노동당 규약 가능성이 이미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김 위원장은 최근까지도 핵 추진 잠수함 진전 상황을 시찰하며 한국과 미·일의 군사적 움직임을 ‘위협’으로 규정하는 일관성을 보이고 있다. 대내적으로도 ‘대결적 조한관계’에 대한 내부 선전이 일상화, 고착화된 상태다. 대미 관계 역시 성급한 대화 제안보다는 장기 대결의 관리라는 틀이 유지될 전망이다. 넷째, ‘지방발전’의 내치를 통한 경제의 안정화이다. 최근 한 달간 신포시를 비롯하여 김 위원장이 집중적으로 참석한 지방공업공장, 병원, 살림집 준공식 현장은 9차 당대회의 방향을 상징하는데, 노동신문은 이를 “지방발전의 새시대”, “인민생활의 실질적 향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제8차 당 대회 이후 경제 정상화와 내적 결속을 과시하기 위해 지방의 생산·봉사 기반시설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을 고려하면, 제9차 당 대회에서 경제 분야의 핵심 메시지는 △지방발전 20×10 정책 성과를 통한 통치기반 확보 △제재 장기화 속 “돌파 가능한 국가” 이미지 구축 등이 예상된다. 결국 중·러의 지원 속에서 유연한 고립을 전제로 내부 완결형 경제 모델을 공식화하는 장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권력 재편 대신 조직부문과 정책이슈를 내세운 김정은 혁명사상 홍보에 주력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북한의 제9차 당 대회는 새로운 길의 출발이 아니라, 이미 선택한 길을 끝까지 가겠다는 정치적 선언식이 될 전망이다. 지난 21일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이 △한국과 남북관계논의 거부 △북한의 핵문제 용인 등을 담은 성명을 발표하며 혈맹관계를 과시한 것도 북한의 ‘선택’을 추동하는 대목이다. 이재명 정부는 지난 19일 통일부 내년도 업무계획을 통해 ‘통일 지향의 평화적 두 국가 관계’로 전환을 보고한 바 있다. 위기관리의 장기화에 대비하되 북·미협상은 물론 새해 노정된 선전 APEC과 평양 ATTU 아시아주니어선수권대회 등 한반도 정세 관련 크고 작은 이벤트들도 적의 활용하는 병오년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한기호 필자 주요 이력
 
▷아주대 아주통일연구소 교수(연구실장) ▷연세대 통일학 박사 ▷통일부 과장(서기관) ▷(사)북한연구학회 대외협력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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