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가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좌파 정권을 향해 전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다. 제럴드 R. 포드 핵추진 항공모함을 포함한 병력 1만5000명을 카리브해에 배치하고, 대형 유조선을 나포하며, 마두로 정권을 '해외 테러조직'으로 지정하는 등 그 수위는 1기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지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마약 카르텔 척결을 내세우지만 이면에는 석유 패권 확보와 중국 견제라는 전략적 계산이 깔려 있다. 트럼프의 베네수엘라 전략은 세 가지 층위로 분석할 수 있다.
첫째, '군사 개입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마약 전쟁'이다. 트럼프는 베네수엘라 마약 카르텔에 대해 전쟁을 선포하며 미국으로 유입되는 펜타닐과 코카인 차단을 강조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베네수엘라가 마약 생산국이 아니라 단순 경유지에 불과하며, 미국으로 유입되는 코카인의 4분의 3이 태평양을 통해 들어온다고 지적한다. 카리브해에서의 고속정 밀수는 극히 일부다. 즉 마약 전쟁은 군사 개입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명분에 가깝다.
셋째, '지정학적 차원의 중국 견제'이다. 베네수엘라 원유 수출의 80%가 중국으로 향하고 있다. 중국은 차베스 집권 시절부터 650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하며 '미국의 앞마당'인 중남미에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미국이 중국행 유조선을 집중 나포한다면 마두로 정권뿐 아니라 중국에도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트럼프 1기 베네수엘라 특사였던 엘리엇 에이브럼스가 "마두로를 그대로 두는 것은 중국, 쿠바, 이란, 러시아와 관계를 유지하게 하는 것"이라며 군사 개입 필요성을 강조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트럼프 코롤러리: 서반구 패권의 재확인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5일 발표한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에서 '먼로 독트린에 따른 트럼프 코롤러리(Trump Corollary)'를 제시했다. 보고서는 “서반구에서 먼로 독트린을 재확인하고 강화해 미국 우위를 회복하고 미국 본토와 역내 지리적 요충지에 대한 접근권을 확충할 것”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1823년 제임스 먼로 대통령이 선언한 '미주 대륙에 대한 유럽의 불간섭' 원칙을 재확인하되 21세기 버전으로 업데이트한 것이다. 이는 1904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중남미 국가들이 불안정할 경우 미국이 간섭할 권리가 있다"며 도미니카, 쿠바, 니카라과, 아이티에 군사 개입한 '루스벨트 코롤러리'의 재판으로 볼 수 있다. 베네수엘라는 이 '트럼프 코롤러리'의 첫 시험대다. 콜롬비아에는 마약 밀매 퇴치 예산 지원을 중단했고, 멕시코에는 30% 관세를, 브라질에는 50% 관세를 부과하며 좌파 정권들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의 전략은 명확하다. 중남미의 반미 좌파 정권을 와해시키고 친미 우파로 교체함으로써 서반구 패권을 재확립하겠다는 것이다.
마두로 정권의 생존 전략과 한계
그렇다면 왜 마두로는 트럼프 1기의 압박과 경제 붕괴, 800만명의 국민 엑소더스, 국제사회의 퇴진 압력에도 불구하고 버틸 수 있었을까? 핵심은 '군부 장악'이다. 군 출신이 아닌 마두로는 집권 후 군을 돈으로 회유해 사조직화했고, 여러 조각으로 분열시켜 단결된 반란을 어렵게 만들었다. 2019년 트럼프 1기 때 야당 지도자 후안 과이도를 내세운 쿠데타 시도가 실패한 것도 군부가 마두로를 배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마두로는 차베스타(차베스 지지자)들의 향수를 정치적 자원으로 활용했다. 우고 차베스 집권기(1999~2013)의 무상 복지 정책으로 빈곤율이 49%에서 25%로 감소한 '황금기'를 기억하는 이들은 여전히 마두로를 지지한다. 비록 유가 하락과 부정부패로 경제가 파탄났지만 미국의 개입을 '제국주의 침략'으로 규정하며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하는 전략은 일정 부분 먹혀들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러시아, 중국, 북한 등 전통 우방국과의 협력 강화'로 버텼다. 중국은 650억 달러 차관 상환을 위해서라도 마두로 정권의 붕괴를 원치 않으며 러시아는 미국의 뒷마당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려 한다. 이란과 쿠바 역시 반미 연대 차원에서 마두로를 지지한다. 베네수엘라 위기는 단순한 독재 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중국-러시아의 지정학적 각축장이 된 것이다.
군사 개입 가능성과 위험성
트럼프는 지난 11월 마두로와의 통화에서 '일주일 내 망명'이라는 최후통첩을 전달했지만 거부당했다. 이후 베네수엘라 영공 폐쇄를 선언하고 카리브해에 1989년 파나마 침공 이후 최대 규모의 해군력을 배치했다. 백악관은 지상군 투입 등 군사 옵션에 대해 "의회 승인이 필요하다"고 선을 그었지만 트럼프는 CIA에 비밀 작전 권한을 부여했다.
그러나 미국의 군사 개입에 대한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국제위기그룹의 필 건슨 수석분석가는 "무력 전복이 곧 민주주의 이행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가정은 위험하다"며 "베네수엘라는 장기 저강도 전쟁에 적합한 환경"이라고 경고했다. 마두로의 권력 기반인 군부, 콜롬비아 민족해방군 등 무장단체, 민간 폭력조직 등이 봉기할 경우 리비아나 시리아와 같은 내전에 빠질 위험이 크다.
더구나 현재 조치는 엄격한 의미의 '해상 봉쇄'가 아니다. 군사력을 이용한 해상 봉쇄는 국제법상 전쟁 행위로 안보리 승인이나 교전 상태가 요구된다. 미국의 마지막 해상 봉쇄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였다. 현재 조치는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 PDVSA 관련 제재 선박에 대한 선별적 차단이며, 셰브론 같은 미국 기업의 활동은 제외된다. 이는 베네수엘라 원유 시장에서 중국을 밀어내고 미국 기업의 지배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봉쇄라고 할 수 있다. .
마두로 이후의 시나리오
'빈민의 영웅'이라 불리는 우고 차베스(Hugo Chavez) 대통령 집권(1999년 2월~2013년 3월) 당시 베네수엘라의 기세는 의기양양했다. 세계 최강국 미국에 반기를 들고 막대한 석유 자원을 바탕으로 무상 복지 정책과 부(富)의 재분배를 밀어붙이던 카리스마 넘치는 열정적인 지도자에 국민들은 열광했다.
암투병 중이던 차베스는 2013년 자신의 꿈인 '베네수엘라식 사회주의'를 완성하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그는 사망하기 전 버스 운전기사이자 노조 위원장 출신으로 부통령에 오른 마두로에게 자리를 물려준다. 차베스와 마두로가 집권한 26년 동안 그들의 집권당인 통합사회주의당(PSUV)은 국회와 사법부, 선거관리위원회 등 주요 기관을 장악했다.
2024년 대선에서 마두로는 야당이 집계한 개표 결과 에드문도 곤살레스 후보가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선자로 선언되었다. 곤살레스는 출마 자격을 박탈당한 주요 야당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를 대신하여 후보로 나섰다. 미국이 세계 최대 핵추진 항공모함과 특수부대를 투입해 베네수엘라 대형 유조선을 나포한 날 민주화 운동으로 올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마차도는 정부의 감시를 피해 노르웨이에 도착했다.
현재 미국은 마두로의 사임과 망명, 이후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를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2024년 대선에 출마했던 곤살레스나 노벨평화상을 받은 마차도가 그 대안이다. 마차도는 오슬로에서 "질서 있고 평화로운 전환"을 강조하며 "군대와 경찰은 국민이 선출한 민간 정부에 복종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마두로가 요구한 '글로벌 사면'과 '군부 통제권'을 미국이 거부한 상황에서 평화적 정권 교체는 요원해 보인다. 마두로 측근들은 권력을 내려놓는 순간 국제형사재판소 등에서 인도에 반한 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끝까지 저항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그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엄포를 놓지만 마두로 정권의 붕괴는 쉽지 않아 보인다.
만약 미국이 군사 개입으로 마두로를 축출한다면 그 이후는 더 복잡하다. 베네수엘라 전문가들은 정치적·사회적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2019년 트럼프 행정부의 모의 전쟁 게임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 마두로 이후 베네수엘라의 혼란은 오히려 미국 기업들의 진출을 방해할 수 있다. 월 최저임금이 1달러에도 미치지 못하고 국민의 80%가 빈곤층인 상황에서 물가 상승률이 700%에 달하는 경제를 재건하는 것은 또 다른 도전이다.
베네수엘라의 운명은 누가 결정하는가
트럼프의 베네수엘라 전략은 마약 전쟁이라는 명분, 석유 지배권이라는 실리, 중국 견제라는 지정학이 결합된 다층적 게임이다. '트럼프 코롤러리'는 20세기 초 루스벨트의 중남미 군사 개입을 21세기에 재현하려는 시도로, 베네수엘라는 그 첫 시험대다. 하지만 역사는 외부 세력의 군사 개입이 민주주의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교훈을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베네수엘라의 진정한 문제는 마두로 개인이 아니라 차베스-마두로 집권기 26년 동안 고착화된 제도적 부패, 군부의 사조직화, 포퓰리즘의 유산이다. 외부에서 정권을 갈아치운다고 해서 이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베네수엘라에서 독재자를 몰아내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건설하는 문제는 베네수엘라 국민 자신들이 결정해야 한다. 국제사회는 인도주의적 지원과 민주적 전환을 위한 대화를 촉진할 수는 있지만 군사력으로 해결책을 강제할 수는 없다. '바람 속 촛불' 같은 베네수엘라가 또다시 강대국 정치의 제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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