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김부장'의 하이퍼리얼리즘

사진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사진=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명심해. 대기업 25년차 부장으로 살아남아서 서울에 아파트 사고 애 대학까지 보낸 인생은 위대한 거야!"

누군가가 보면 분명 대단한 인생이다. 서울에 자가를 마련하고 통신사 대기업 임원을 앞두고 있는 25년차 부장. 그간 묵묵히 남편을 뒷바라지해온 아내는 부부의 노후를 위해 공인중개사 시험에 보란듯이 합격한다. 명문대에 입학한 아들은 부모의 도움 없이 자신의 꿈을 찾기 위해 달려간다. 여기까지만 보면 오랜 직장생활이 결실을 맺고 행복한 가정을 꾸린 '한국형 성공 서사'의 정석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마냥 부러워할 수도 없다. 동료의 가방이 200만원인지 300만원인지, 국산차인지 외제차인지, 사는 곳이 강남인지 강북인지 비교하고 일희일비하는 모습은 짠내 나는 웃음을 만들어낸다. 비교에서 안도를 찾고, 비교의 기준이 점점 더 높아지는 상황. 그 감정은 시청자들의 피로감과 맞닿아 있다.

그럼에도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가 직장인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퇴직과 좌천의 압박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일하는 우리들의 이야기와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김낙수 부장 고민은 단순한 드라마 설정이 아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임금근로 일자리 중 15.8%가 '퇴직·이직으로 대체된 일자리'였다. 이는 '25년차 대기업 부장'도 퇴직 압박에서 자유롭지 않은 현실을 말해준다. 특히 관리자급은 성과 중심 인사제와 구조조정의 주요 타깃이 되기 쉬워 불안감이 더 크다.

퇴사 후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를 찾는 일은 더 어렵다. '퇴사(정년퇴직) 후 계속 쉬고 있는' 비경제활동인구 다섯 중 하나는 '원하는 일자리 혹은 일거리를 찾기 어려워서'였다. 60세 이후 정규직으로 계속 일하는 행운을 얻더라도 소득은 퇴직 전보다 40~60% 감소한다는 통계 자료도 있다.

자존심 강한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직접 '두 번째 인생 설계'에 나선 것도 노후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의 희망 은퇴 연령은 73.4세이지만 평균 퇴직 연령은 52.7세다. 게다가 한국 가구의 노후 적정생활비는 월 350만원, 최소 생활비는 248만원인데 실제 조달 가능금액은 230만원에 불과하다. 연금과 저축, 근로소득을 모두 합쳐도 생활비가 부족한 '노후 적자'는 절반에 가까운 노인 가구에서 겪는 문제다.

불편한 현실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구축 아파트에 사는 김 부장이 '손밑가시'처럼 불편해하는 후배 도 팀장의 집은 전세값만 38억원인 강남의 신축 아파트다. 당연히 전세일 줄 알았는데 자가란다. 매매가는 70억원에 육박하고, 김 부장은 상대적 박탈감을 넘어 경악하고 만다. 아내의 결단력과 영끌 대출로 서울 자가를 얻었던 만족감은 잊은 지 오래다.

주변에 쉽게 돈버는 사람만 잔뜩 있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초등학교 동창은 건물주로 월세만 3000만원씩 받는다고 하고, '월급은 끊겨도 월세는 평생 간다'는 솔깃한 문구의 전단지는 자꾸만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인터넷·SNS에는 '억대 연봉 퇴사자의 자산 증식 스토리'나 '부동산 임대 수익 인증' 같은 성공담이 넘쳐나며 심리적 격차는 더 커진다.

그럼에도 김 부장이 끝까지 버티며 삶을 이어가는 모습에서 시청자들은 현실을 사는 평범한 사람의 의지를 발견하게 된다. 드라마를 보며 웃지만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묘해지는 기분, 그건 우리 모두가 김 부장이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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