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지난 5000년 동안 가장 매혹적이고 가장 오래 버틴 아이디어 중 하나다.”(26쪽)
사람들은 종이 쪼가리인 지폐에 엄청난 가치가 있다는 걸 언제부터 또 어떻게 믿게 됐을까. 책 <머니: 인류의 역사>(포텐업)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돈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돈이 ‘신뢰’를 얻게 된 과정을 보여준다.
아일랜드 중앙은행, 글로벌 투자은행 UBS 등에서 이코노미스트로 일했던 저자는 기원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사건들 속 돈 이야기를 풀어내며 “돈이란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적 약속이라는 것이며, 우리가 변하면 돈도 변하고 돈 역시 우리를 변화시킨다”(22쪽)고 말한다.
저자는 "돈이 무너지면 사회는 방향을 잃는다"고 강조한다. 아돌프 히틀러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상공에 수백만 파운드에 달하는 위조지폐를 투하할 계획을 세운 점은 돈이 한 나라의 사회, 정치,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독일은 유대인 전문가 142명으로 이뤄진 팀을 꾸려 가짜 영국 화폐를 대거 찍어냈다. 위조지폐를 유통해 영국 중앙은행은 물론이고 영국 사회, 정치, 경제 전반에 혼란을 주기 위한 셈법이었다. 특히 영국인들의 지배층에 대한 신뢰를 흔들어 애국심 등 심리 전반을 흔들고자 했다.
사실 '돈'을 노린 공격은 영국의 주특기였다. 영국은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여파를 막기 위해 프랑스 위조 화폐를, 미국의 독립을 저해하기 위해 미국 위조지폐를 대량으로 유통했다. 인플레이션을 자극해 상대국의 경제를 뒤흔들고 사회 통합을 막았다.
인류 역사에 등장했다가 사라진 화폐들과 그 화폐들이 당시 시대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저자는 그리스 금화 유통이 활성화되면서 철학, 경제학, 의학, 민주주의 등 개념이 꽃핀 점, 피렌체의 순금 주화 플로린이 유럽에서 기축통화로 자리 잡으면서 왕실을 넘어 은행가와 상인들이 돈의 흐름을 손에 쥐며 수평적 네트워크가 형성된 점 등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돈이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진화를 촉발했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신뢰를 얻었다가 다시 신뢰가 무너진 사례들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금으로 가치를 담보하지 않은, 즉 정부의 신용만을 기반으로 한 화폐 실험들이 19세기 내내 실패로 돌아간 사실에 주목한다. 토지를 담보로 한 존로의 화폐 실험이 실패하며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졌고, 미국 독립혁명에 자금을 댄 콘티넨털은 미국 경제에 독이 됐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신뢰를 받는 돈, 달러가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과정을 통해 화폐의 가치와 신뢰의 관계성도 볼 수 있다. 스페인 달러에 가치를 연동하며 공식 화폐로 지정된 미국 달러가 금본위제를 폐기했다가 부활하고 또 폐기하는 등 경제 사이클의 파도에 휘청이며 한정된 금속이 아닌 '인간의 판단', 즉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의견에 따라 화폐의 가치가 결정되게 된 이유가 나타난다.
이 책은 현재 경제 상황을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읽어볼 가치가 있다. 우리 경제가 직면한 부동산 가치 급등, 스테이블 코인 활용 및 규제, 미국의 양적 긴축 등을 과거 사례들과 비교해 보자.
저자는 네덜란드 튤립 파동을 서술하면서 '소문의 경제학'을 제시한다. 가격 상승과 수요 하락의 경제학 법칙은 통하지 않는다는 그의 주장에서 부동산 불패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자산의 가격이 오르면 그 자산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부유해졌다는 걸 주변 사람들에게 퍼뜨린다. 얘기를 들은 잠재적 구매자들은 자산의 가격이 더 오를까 봐 불안해지고 그 불안감 때문에 서둘러 매수에 나선다. 이렇게 가격 상승은 수요를 부추기면서 더 많은 가격 상승을 불러일으킨다.”(209쪽)
가격이 오르면 공급 역시 늘지 않는다. '내년에 팔면 더 큰돈을 벌 수 있을 텐데'란 생각으로 관망세에 빠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강조한다. “경제학자들에게 가격은 하나의 숫자에 불과하지만 실제 사람들에게 가격은 감정이자 욕망일 따름이다.”(210쪽)
또한 중앙은행의 권위 뒤에는 돈을 다루는 평범한 인간들의 심리가 있을 뿐이다. “주택담보대출을 알아볼 때는 신용 사이클에 의해 금리가 결정된다는 점을 명심하라. 그리고 이 신용 사이클은 합리적인 경제학 이론이 아니라 '군중의 광기'에 더 크게 좌우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3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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