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과 압박이 일상인 증권업계에서 ‘남성 육아휴직’은 여전히 사치에 가까운 제도입니다. 올해부터 기업들이 일·가정 양립 지표를 공시하게 되면서 증권사들의 남성 육아휴직 실태가 드러났는데 생각보다 상황은 더 좋지 않았습니다.
2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10대 증권사 중 반기 보고서에 관련 내용을 올린 곳은 8곳입니다. 이 가운데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메리츠증권, 삼성증권, KB증권, 하나증권, 대신증권의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은 ‘0%’였습니다.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인 미래에셋증권조차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이 8%에 불과했습니다.
이마저도 ‘사업연도 내 자녀가 출생한 남성 임직원 중 실제 육아휴직을 사용한 비율’입니다. 8세 이하 자녀를 둔 임직원 중 육아휴직 사용자로 범위를 넓히면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
업계 안팎에서는 증권사 특유의 ‘성과 중심 문화’가 남성 육아휴직 확산을 가로막는 가장 큰 이유로 지목됩니다. 수익과 성과가 곧 승진 및 보상으로 직결되는 구조 속에서 남성 직원이 장기간 자리를 비운다는 건 곧 경쟁에서 낙오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죠.
증권사들은 업계 전반에서 평균 연봉이 1억원을 웃돕니다. 올해 상반기 기준 △메리츠증권 1억3100만원 △한국투자증권 1억2900만원 △NH투자증권 1억500만원 △키움증권 1억300만원 △미래에셋증권 1억원 등입니다. ‘고연봉-고성과’ 구조가 굳어진 상황 속 직원 개개인은 자리 싸움에 몰입할 수밖에 없고 육아휴직은 사실상 언감생심인 셈입니다.
다만 여성 직원 상황은 다릅니다. 증권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일부 회사에선 여성 육아휴직 사용률이 100%에 달하기도 합니다 .최소 절반 이상 여성 직원들은 육아휴직을 쓰고 있습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워킹맘’ 지원 분위기가 자리 잡은 데다 영업창구 등 여성 인력이 비중이 높은 부문에서 출산·육아휴직이 비교적 수월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전문가들은 남성 직원들도 여성 직원들처럼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남성이 육아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현재 채 1명이 안 되는 출산율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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