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AI 강국위한 100조 베팅 …'올인'인가 '올킬'인가

곽재원 논설위원장
[곽재원 논설위원장]
 
 
미국 뉴욕타임스는 최근 데이터센터를 두고 흥미로운 비유를 들었다. 그것은 오늘날 테크 산업의 건강도를 재는 체온계이자, 동시에 AI 버블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찬사와 불안이 동시에 덧씌워진 이 정의는 지금 전 세계가 마주한 인공지능 시대의 모순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나의 데이터센터를 짓는 데에는 수천억~수조원의 자금이 들어간다. GPU(그래픽 처리 장치)와 서버를 조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식히기 위한 냉각 기술, 막대한 전력망, 그리고 안정적 부지와 규제가 따라붙는다. 그럼에도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앞다투어 투자를 늘리고 있다. 일본, 싱가포르, 대만 등도 국가 차원에서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투자자들에게 데이터센터는 AI 붐의 살아있는 지표이자, 동시에 거품 논란의 불씨다.

바로 이런 시점에 한국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AI 3대 강국’을 향한 국가적 올인 전략을 선언했다. GPU 5만장 확보, 100조원 투자, 데이터센터 확충 등. 이는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실질적 자원 배분이 뒤따르는 전례 없는 결단이다.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이 전략은 과연 한국의 새로운 도약의 사다리가 될까, 아니면 버블 붕괴의 추락 사다리가 될까.

정부가 이처럼 과감하게 AI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는 배경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무엇보다 성장 동력의 고갈이 크다. 반도체와 자동차는 여전히 한국 경제의 기둥이지만, 더 이상 과거처럼 두 자릿수 성장을 견인하지 못한다. 고령화와 저성장이라는 구조적 한계 속에서, AI는 거의 유일하게 남은 미래 성장 후보로 비친다.

둘째는 산업 경쟁력의 위기감이다. 미국과 중국은 이미 AI를 국가안보와 패권 경쟁의 핵심에 올려놓았다. 미국은 반도체와 GPU 공급망을 동맹 중심으로 재편하면서 한국을 강하게 끌어들이고 있다. 중국은 국가 주도로 ‘제조 2025’ 이후의 전략을 AI로 옮겨가고 있다. 이 속에서 한국이 주저한다면 곧바로 종속국가로 전락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되어 있다. 셋째는 정치적 동력이다. 이재명 정부는 포스트 탄핵 정국에서 출범했다. 사회를 통합하고 국정의 동력을 확보할 분명한 비전이 필요했다. ‘AI 강국’은 기술 패권 경쟁이라는 국제 환경과, 미래 성장이라는 국내 과제를 동시에 설명할 수 있는 간명한 구호였다.

과감한 올인은 분명 기회가 된다. 먼저 한국을 단숨에 글로벌 AI 경쟁의 전선에 올려놓는다. GPU와 데이터센터 같은 인프라는 속도전에서 후발주자가 따라가기 힘들다. 한국이 선제적으로 투자하면, 반도체 신화를 재현할 가능성이 생긴다. AI가 만들어낼 산업 생산성 혁신도 크다. 의료 진단, 행정 간소화, 금융 리스크 관리, 제조 자동화, 교육 플랫폼 혁신 등 국민이 체감할 성과가 빠르게 쌓일 수 있다. 대기업만이 아니라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국가 인프라를 값싸게 활용할 수 있다면, ‘작은 기업의 큰 도약’이 가능하다. 한국 경제가 구조적으로 안고 있는 대기업 의존도를 낮추는 계기도 될 수 있다.
또한 GPU와 데이터센터는 단순한 경제 인프라가 아니라 전략 자산이다. 이를 보유한 국가는 기술 패권의 협상 테이블에서 발언권을 갖게 된다. 미국과 일본, EU와의 협력에서 영향력을 높일 수 있고,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전략적 완충력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올인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뒤따른다. 첫째는 재정의 지속성이다. 100조원이라는 숫자는 명분은 크지만, 한국의 재정 현실을 고려하면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따른다. 고령화와 복지 지출은 늘고, 세수는 경기 둔화로 줄어들고 있다. AI 투자가 정치적 비판의 표적이 될 위험도 있다. 훗날 정권이 교체된다면 중도에 무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둘째는 민관 파트너십의 불확실성이다. 삼성, SK, 네이버, 카카오 같은 대기업은 AI 국가전략의 실제 주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재벌개혁을 강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협력을 요청한다면 기업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까. “AI만큼은 민관이 일체가 된다”는 특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셋째는 에너지 문제다. 데이터센터는 안정적인 전력이 없으면 가동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정부는 탈원전의 가능성을 내비치며 태양광과 풍력 중심의 재생에너지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이상적 목표와 현실 수요 사이의 간극은 너무 크다. 과도기적 대안 없이 신재생만으로 AI 인프라를 감당하는 것은 위험하다.

넷째는 대외 리스크다. 미국은 동맹망을 통해 GPU·반도체 공급망을 장악하려 하고, 중국은 여전히 한국의 최대 무역 파트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면 곧바로 외교적 부담으로 돌아온다. 유럽의 AI 규제 확산도 한국 기업에 새로운 장벽이 될 수 있다.

이런 불안 속에서 지난 9월 22일, 뉴욕에서 열린 한 만남은 중요한 전환점을 보여주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글로벌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을 만난 것이다. AI와 에너지 전환을 포함한 다양한 협력 방안이 논의됐다.

블랙록은 단순한 투자회사가 아니다. 10조 달러가 넘는 자산을 굴리며 세계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거대 플레이어다. ESG와 기후 전환 투자의 선두주자로서, 그들의 관심은 단순한 수익이 아니라 지속 가능성과 리스크 관리다. 블랙록은 한국 시장에서도 주요한 투자자로 자리 잡았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하이닉스 등 한국 대표 기업들의 지분을 일정 부분 보유하며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해 왔다. 단일 기업 지분율은 2~5% 수준이지만, 글로벌 자산운용사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특히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율 가운데 블랙록 계열 펀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아, 경영 감시와 지배구조 개선 요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외국인 투자자 신뢰의 척도로 여겨진다. 카카오·네이버 같은 플랫폼 기업에도 참여해 한국 신산업 성장 가능성에 베팅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따라서 이 대통령과 래리 핑크 회장의 만남은 한국의 AI 전략이 국내 재정사업에 머무르지 않고, 국제 자본과 연결된 글로벌 프로젝트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데이터센터 전력난, 탄소배출 문제는 한국 혼자 해결하기 어렵다. 그러나 블랙록 같은 글로벌 자본과 파트너십을 맺는다면 자금과 기술, 신뢰를 함께 끌어들일 수 있다. 무엇보다 블랙록의 리스크 관리 철학은 한국의 올인 전략이 버블 논란을 넘어서 국제적 신뢰를 확보하는 길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순탄한 것은 아니다. 이재명 정권은 진보정권답게 큰 정부를 지향한다. 복지 확대와 AI 투자가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정치적 상황이 바뀌면 정책이 뒤집힐 위험도 크다. 따라서 민간 매칭과 정책금융, 연금기금까지 포함하는 AI 전용 펀드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정권이 바뀌어도 지속할 수 있다. 이재명 정부는 물론 대규모 국민성장펀드를 조성, 첨단산업에 투자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대기업과의 관계도 쉽지 않다. 진보정권은 전통적으로 재벌개혁을 강조하지만, AI는 대기업의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 ‘AI만큼은 예외적으로 민관 동맹’이라는 정치적 합의 없이는 동력이 부족하다. 에너지 정책도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옳지만, 데이터센터는 24시간 안정적 전력이 필요하다. 원자력, 가스 같은 전통 전원과의 믹스 없이는 AI 올인은 버블의 위험을 키울 수밖에 없다.

대외관계 역시 시험대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한국이 “AI=미국 편”으로만 보인다면 중국과의 경제 충돌은 불가피하다. 일본과의 협력을 글로벌 공공재로 포장하고, ASEAN·인도·중동 같은 제3시장에서 영향력을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블랙록과의 접점은 이런 국제 확산 전략의 실질적 발판이 될 수 있다.

AI 국가 올인 전략은 한국의 미래를 건 초고속 엘리베이터와 같다. 성공하면 한국은 새로운 성장 신화를 쓸 수 있다. 실패하면 추락의 충격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 모든 것은 한국의 자세에 달려 있다.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민관의 신뢰를 구축하며, 에너지의 현실적 전환을 이루고, 외교에서 균형과 확장성을 확보해야 한다. 블랙록 회동이 보여준 것처럼, 글로벌 자본과 손잡는 시도가 이어지고 국민이 체감할 작은 성공이 쌓여간다면, 한국의 올인은 위험한 도박이 아니라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될 것이다.

(박스) 

블랙록이 한국에 기대하는 4대 포인트
 
① AI·디지털 전환 잠재력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AI 3대강국’ 전략과 대기업의 GPU 대규모 투자, 반도체·디지털 인프라 강점은 글로벌 자본이 주목하는 미래 성장축이다.
② 에너지 전환 가속화
재생에너지 확대, 수소·원전 병행 전략 등은 블랙록의 ESG·그린 인프라 투자 철학과 맞닿는다. 한국은 동북아 에너지 허브로 성장할 기회를 가진다.
③ 혁신적 대기업 생태계
삼성·SK·현대차·포스코 등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국가 챔피언 기업’들이 존재한다. 블랙록은 이들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수익을 기대한다.
④ 민관 협력의 제도화 가능성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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