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율 명지대 교수
지난 9월 19일에 공개된 한국갤럽의 자체 정례 여론조사(9월 16일부터 18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 여론조사를 실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나타난 국민의힘 지지율은 24%였다. 한국갤럽 여론조사 기준으로 보면, 대선 이후 지금까지 국민의힘 지지율이 30%를 넘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국민의힘은 장동혁 체제를 출범시키기도 했지만, 새로운 지도부가 등장했음에도 지지율 반등의 기미는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국민의힘이 그동안 여론과 괴리된 모습을 보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즉, 국민의힘이 '여론의 섬'이 되어 독특한 정치적 풍경만을 연출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동시에, 정부 여당의 실책에도 불구하고 반사 이익을 얻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 여당의 무리한 정책 추진이나 말 바꾸기가 적지 않음에도, 그런 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전환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는 먼저 자신들의 주장과 행동이 왜 여론에 영향의 호응을 유도하지 못하고 있는지 성찰하고, 입장을 조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국민의힘은 오히려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바로 '패널 인증제'를 실시하려 하기 때문이다.
장동혁 대표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방송에서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분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언론의 자유와 정당 내 표현의 다양성을 심각하게 제한할 우려가 있다. 국민의힘의 이러한 입장은 과거 윤석열 정부의 운영 방식을 연상시킨다. 당시 많은 전문가들이 대통령실에 레드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윤석열 정부는 이를 도입하지 않았다. 반대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제는 국민의힘이 당의 주류와 다른 목소리를 차단하려는 것으로 비칠 수 있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었다. 이런 발상은 여러 면에서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민주적 정당이라면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해야 하는데, 국민의힘은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과거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이재명의 민주당'이라고 비판하며, 내부의 획일성과 일사불란함을 문제 삼았다. 민주당이 22대 공천 당시 '비명횡사 친명 횡재'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친명계 위주의 공천을 실시했고, 비명계는 거의 소멸했는데 이렇듯 민주당 내 정파의 다양성이 실종된 것을 국민의힘은 강하게 비판한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스스로 그와 유사한 모습을 보이려 하고 있는 것이다. '패널 인증제'를 제도화한다면, 국민의힘은 스스로 비민주적 정당임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결국 국민의힘에 대한 국민 여론의 반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강성 세력이 당을 장악하고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는 상황에서, 주류와 다른 목소리를 봉쇄하는 조치로 비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둘째, '패널 인증제'는 방송사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 방송사가 패널을 섭외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시청률 혹은 청취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인물인지 여부다. 필자는 20년 넘게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과거나 지금이나 이 기준은 변함이 없다. 이른바 '친한계' 인사들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이들이 시청률 혹은 청취율을 견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당이 특정 인사 위주로 출연시킬 것을 요구하는 것은 방송사의 섭외 기준을 인위적으로 바꾸려는 시도이고, 이는 시장 경제 원리에 반하는 처사다. 시장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보수 정당이 이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자기 모순이다. 이는 현재 국민의힘 지지율이 낮은 이유에 대한 설명이 될 수도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매우 낮은 이유는, 국민의힘 주류의 주장과 행동이 여론의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인데,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힘 주류의 의견을 대변하는 인사들만 방송에 출연하게 된다면, 시청자 혹은 청취자들은 채널을 돌려버릴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국민의힘 지지율은 더욱 떨어질 것이다.
셋째, 친한계 패널들의 민주당에 대한 비판은 국민의힘 주류 측 인사들의 비판 못지않게 날카롭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들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비판할 점이 있으면 지적하는 인물들이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국민에게 더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설득력도 높다. 여론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오히려 유리한 조건을 이들 친한계 인사들이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야 정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배제하려는 것은, 국민의힘 스스로가 지지율 반등의 기회를 버리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현재 국민의힘의 방식은 마치 계몽주의 시대의 권위주의적 사고에 머물러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점도 지적해야겠다. '패널 인증제'는 주류의 목소리만 반복해서 전달하려는 시도로 보이는데, 이는 결국 국민에게 특정 의견만 주입하려는 시도로 비칠 수 있는데, 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방식이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볼 때, 패널 인증제는 실행에 옮겨져서는 안 되는 방안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패널 인증제 실시의 목적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패널 인증제를 통해 주류 세력이 자신들의 권력 기반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는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당내 다른 의견을 가진 세력을 약화시키려 패널 인증제를 도입하려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가 제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친한계들을 비롯한 비주류의 비판적 목소리 덕분에 국민의힘이 일정 수준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의 합리성이 오히려 당의 신뢰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민주당 사례를 보더라도, 당내 다양한 목소리를 완전히 차단하기는 어렵다. 대통령의 의중과 다른 의견이 반영되는 경우도 존재한다.
현재 국민의힘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국민의힘의 혼란이 보수층의 흔들림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국민의힘의 운명이 어떻게 되든, 대한민국 보수의 가치와 정체성은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지금 자신들이 진정으로 보수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성찰해야 한다. 지금은 착각과 독선을 버려야 할 때다.
필자 주요 이력
▷프라이부르크대학교 정치학 박사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전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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