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율 명지대 교수]
에너지경제신문이 의뢰해 지난 9월 1일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8월 25일부터 29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2,537명을 대상으로 ARS 방식으로 실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1.9%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했다. 이러한 상승세는 전화 면접 방식의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8월 29일 공개된 한국갤럽 정례조사(8월 26일부터 29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전화 면접 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도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은 상승세를 보였는데, 해당 조사에서 이 대통령 지지 이유 1위는 '외교'였다.
한국갤럽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공통적으로 주목되는 현상은 대구·경북(TK) 지역과 40대 연령층에서의 지지율 상승이다. 이는 주목할 만한 현상인데, TK 지역은 전통적으로 보수층의 핵심 지지 기반이며, 40대는 진보 성향이 강한 세대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TK 지역에서의 지지율 상승은 이재명 대통령의 방일 및 방미 행보가 보수층의 기대와 상당 부분 부합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방일 직전 요미우리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은 "국가 간 약속을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위안부 문제에 있어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또한 "해결할 문제는 해결하고, 진취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는 그에 맞게 풀어가야 한다"고 강조하여 역사 문제와 외교 현안을 분리 대응하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이는 보수 진영에서 오랫동안 제기해 온 관점과 일치한다. 방미 당시 한미 정상회담 직후 CSIS 대담에서 이 대통령은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 정책에서 어긋나는 방식으로 판단하거나 행동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과거의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기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 역시 보수층이 지속적으로 주장해 온 내용과 맥락을 같이하며, 이러한 발언들이 보수 유권자들의 호응을 이끌어 낸 것으로 분석된다.
그런데 진보 성향이 강한 세대로 인식되는 40대에서도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한 것은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다. 이 대통령이 외교에서 보인 행보는 분명 보수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성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40대에서 지지율이 올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해석으로는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 첫 번째는 40대 유권자들이 이재명 대통령이라는 ‘인격체’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 성향인 ‘진보적 이념’을 동일시해, 대통령의 구체적 정책 스탠스에 관계없이 일관된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추론이다. 두 번째는 이들이 이재명 대통령을 적극 지지한다기보다는 국민의힘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상대편 정당의 상징인 이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해석이다. 만일 이런 추론이 설득력을 갖는다면, 국민의힘은 이러한 양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방일과 방미 이후 국민의힘의 대응은 대부분 비판 일변도였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아첨으로 시작해 선물 공세만 하다 끝난 비정상적인 정상회담"이라고 평했다. 대통령이 보수 진영의 기존 주장과 유사한 입장을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적인 비판만 한 것이다. 국민의힘이 이런 입장을 지속한다면, 보수 유권자조차 이에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야당이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역할이지만, 자신들의 기존 입장과 부합하는 발언이나 행보에 대해서는 인정과 평가를 병행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태도이다. 이 점에서 국민의힘은 성찰할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전당대회 이후에는 컨벤션 효과로 인해 지지율이 단기간 상승하는 것이 통상적이고, 이는 최소 2주 이상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그러한 효과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전당대회 직전 리얼미터 조사에서의 지지율 상승이 두드러졌다고 주장할 수 있으나, 이는 중도층의 호응을 얻은 일반적 컨벤션 효과라기보다는 기존 지지층의 결집에 따른 결과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즉, 통상적 의미의 컨벤션 효과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의미이다. 국민의힘이 이처럼 컨벤션 효과를 누리지 못한 배경에는 현재 그들이 보여주는 행보가 국민 다수의 여론 및 인식과 괴리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존재할 수 있다. 전당대회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김문수 후보는 선거인단 투표에서 41.12%, 여론조사에서 60.18%의 지지를 받았고, 장동혁 후보는 선거인단에서 52.88%, 여론조사에서는 39.82%를 얻었다. 이번 전당대회 여론조사는 국민의힘 지지층과 무당층만을 대상으로 실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온건한‘ 성향의 김 후보가 60% 이상의 지지를 얻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지지층조차 당의 방향성에 대해 어떤 기대를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다. 그럼에도 '강성 친윤' 성향으로 평가받는 장동혁 후보가 대표로 선출됐다는 것은 국민의힘이 '여론의 섬'에 고립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결과라 할 수 있다.
물론 장 대표는 당선 이후 점진적으로 온건한 입장을 내비치고는 있다. 당선 직후에는 윤 전 대통령 면회를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이후에는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결정을 하겠다"고 유보적 입장으로 전환했다. 인선에서도 통합적 성격을 반영하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이는 본인의 기존 입장만으로는 당 운영이 어렵다는 현실적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가장 중요한 점은, 통합과 지지율 상승이 국민의힘이 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태도를 지속적으로 보여줄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공천 청탁'이 있었다는 주장을 하는 인물을 '의병'으로 칭하는 당 대표에게 이러한 기대를 갖는 것이 합리적인지는 의문이지만, 정치는 생물이라는 관점에서 현재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장 대표에게 희망을 걸어볼 만하다. 아니 희망을 갖고 싶다.
필자 주요 이력
▷프라이부르크대학교 정치학 박사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전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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