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밀려나고 있다. 나보다 더 젊고 어린 사람들에게. 그리고 기계에게.”(젊음의 나라, 25쪽)
“이제 3차 세계 대전이라 불리는 이 사태에 모두 휘말렸어요. 자동 발사 프로그램으로 가동되는 미사일 발사 시스템이 많았던지라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폭주했죠.”(키메라의 땅 1권, 120~121쪽)
'남의 일이 아니다.'

젊음의 나라와 키메라의 땅
소설 <젊음의 나라> 주인공 유나라(29)에게 유일한 낙은 단 하나, 시카모어섬이라는 메타버스 세계에 접속하는 것이다. 아르바이트로 번 돈마저도 섬 체험에 탈탈 쏟아부을 정도다. 나라는 한때 배우를 꿈꿨다. 하지만 인공지능(AI)이 배우를 대체하면서 그가 설 무대는 현실 세계에서 사라졌다. 생계를 위해 시작한 호텔 청소마저도 로봇으로 대체됐다. 모두가 외동인 시대, 나라에게 가족은 엄마뿐이다. 저출산으로 젊은 세대는 급감하고, 사회는 절대다수의 노인과 극소수의 청년으로 재편된다. 세계 각국의 부호들은 남태평양섬 시카모어에 모여 젊은 근로자들에게 특급 대우를 받으며 꿈같은 말년을 보낸다. 반면 청년들은 노인들을 부양하기 위한 세금에 짓눌려 "젊은 피를 빨아먹는 늙은 흡혈귀들!"이라고 외치며 거리로 나선다. 그들 눈에 노인은 시스템을 갉아먹는 얼룩에 불과하다. 나라는 우연히 '유카시엘'이란 요양기관에서 일하게 되면서 재력에 따라 A부터 F까지 등급이 매겨진 각 유닛에서 여러 노인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삶의 무게, 연결, 존재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소설 <키메라의 땅>은 인류의 생존 위기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인 진화 생물학자 알리스 카메러는 다가올 재앙에 대비해 극한의 환경에서도 탁월하게 적응할 수 있는 '혼종 인류'를 만드는 실험에 몰두한다. 그런데 중동에서 시작된 갈등이 전 세계로 퍼지면서 3차 대전이 발발하고, 인간의 개입 없이 컴퓨터가 미사일을 퍼붓는 핵전쟁으로 지구는 파괴된다. 다행히 우주에 머물고 있던 카메러는 생존하게 되고, 고농도의 방사능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키메라 배아 3종을 안고 지구로 귀환하는 데 성공한다.
하늘을 날 수 있는 인간-박쥐 혼종 '에어리얼', 땅을 파고 지하에서 생활할 수 있는 인간-두더지 혼종 '디거', 바닷속을 자유롭게 유영하며 살아가는 인간-돌고래 혼종 '노틱'. 각기 다른 방식으로 환경에 적응하는 이 세 종은 핵전쟁 이후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 구인류와 연대하고 충돌한다. 키메라의 모습을 통해 독자들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혐오와 증오, 그리고 사랑
두 작품의 결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인간과 그 사회 속 혐오와 증오, 그리고 꿈과 유토피아를 향한 갈망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엇갈린다. <젊음의 나라>는 사랑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세상이 아무리 각팍해지더라도 결국 삶을 살아가는 힘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연결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반면 <키메라의 땅>은 핵전쟁 이후에도 인간 내면 깊숙이 자리한 혐오와 증오, 적대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한다. 현 인류가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두 작가가 보는 유토피아도 다르다. <젊음의 나라>는 사랑하는 이의 눈을 바라보는 시간이 인생에 무늬를 남기는 진짜 유토피아라고 속삭인다. 반면 <키메라의 땅>은 '유토피아가 존재하긴 해'라고 되묻게 된다.
또한 주인공 카메러의 혼종 실험은 지구상에서 인간만이 주인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키지만 동시에 인종에 따라 우열이 존재한다고 믿는 인종주의와 겹친다. 현 인류가 모두 호모 사피엔스라는 하나의 종이긴 하지만 피부색과 문화적 배경 등에 따른 차별은 여전히 지구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 나은 종'을 만들어내려는 실험이 불편함을 자아낸다.
혼종 간 갈등으로 인한 또 다른 세계대전의 위협 속에서 무결하고 불멸하는 새로운 종에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거는 점 역시 소설 앞 부분에서 전하는 다양성의 가치를 무색하게 만든다. 실험보다는 공존을 위한 대화가, 인간의 개입보다는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태도를 돌아보게 된다고 할까. 어쨌든 두 작품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현재를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읽어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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