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철 글로벌비지니스연구센터 원장]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국익·실용 외교가 도마 위에 올랐다. 우와 좌, 보수와 진보를 떠나 국익 중심 혹은 실리 중시 실용 외교는 언제나 옳은 방향이다. 그런데도 정권의 색깔에 따라 한쪽으로 치우쳐 일을 그르치거나, 상대의 노선을 헐뜯지 못해 안달을 부리며 적전 분열하는 때도 허다했다. 나라 안의 일이 아닌 밖의 일에 대해서 현명한 국가나 국민은 대체로 한목소리를 낸다. 그러지 못하면 국익이 새어 나가고, 철 지난 이념이나 정치적 이익에 볼모가 되어 국가의 역주행이 반복된다. 다만 요즘과 같이 국제 정세가 급변하면 국익의 원천이 바뀌고 이에 따라 실용적인 대오와 진용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큰 흐름을 놓치면 국가가 크게 흔들리고 이에 속한 기업이나 개인까지 우왕좌왕하게 된다.
첫 방문 국가로 일본을 택했다. 미국 방문에 앞서 일본을 경유한 형식이지만 여하튼 첫 방문국은 일본이 되었다. 엄중한 세계 질서 속에서 한국의 이익, 특히 실리를 추구해 나가기 위해 한·미·일 구도를 기본 프레임으로 획정한 것은 안정적 정권 유지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속성으로 볼 때 현 정권이 일본에 대해 적극적인 협력의 손짓을 내민 것은 다소 의외이지만 충분히 수긍이 가고 모처럼 긍정적 평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극심한 미·중 충돌로 경제적으로나 안보적으로 글로벌 지형이 빠르게 변화하는 과정에서 한국과 같이 이익이 첨예한 국가일수록 유사한 처지에 있는 국가와의 공조가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동병상련 형편에 있는 일본과 우리의 협력이 여느 때보다 절실할 수 있다.
때마침 올해는 한·일 수교 60년이 되는 해다. 양국 관계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부침을 거듭해 왔다. 분명한 점은 가까워지면 양국의 이익이 커지지만 멀어지면 반대 현상을 보였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기 위한 미국의 전방위 압력이 거세지고, 이웃인 중국의 힘이 계속 확대되는 추세에서 상대적으로 한국과 일본은 계속 초라해지는 형편이다. 양국 정치권은 계속 엇박자를 내고 있지만, 경제계를 포함한 민간은 과거를 뛰어넘는 경제·안보 협력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기대엔 미흡했지만 나름대로 의미는 있었다. 협력 확㎞대의 전제 조건인 셔틀 외교 재개가 포함되면서 한 차원 높은 경제적 협력의 물꼬가 트일 것 같은 조짐은 보였다. 일관성과 실행력이 동반되느냐가 관건이다.
일본에 이어 25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은 성사도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졌고, 회담 직전까지도 긴장감이 팽팽했던 것과 비교하면 외견적으로는 별문제 없이 끝났다. 지난 7월 말에 합의한 관세 협상 내용이 대부분 정상 간의 확인으로 일단은 무난하게 종료된 것으로 보인다. 악마는 사소한 것에 있다고 어떤 불협화음이 튀어나올지는 더 두고 볼 일이기는 하다. 항간에 떠돌던 이재명 정권에 대한 트럼프 측의 불신은 봉합이 되고 양국이 전략적 국익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내외 평가도 인색하지 않다. 한국에 대한 내정 간섭으로 인해 미국 측의 의도대로 만들어진 협상 결과를 구태여 깰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불씨는 남겨두면서 향후 주한미군 관련 이슈나 추가적인 통상 이슈에 써먹을 거리는 남겨두었다.
밖에서는 국익과 실용 강조, 안에서는 이에 역행하는 엇박자 계속
이번 양자 회담에서 눈이 크게 띄는 대목이 하나 있다. 우리 측이 천명한 안미경중(安美經中, 안보는 미국 vs 경제는 중국) 포기이다.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를 펼치기 위해서는 경제나 안보 양쪽 모두 한·미 동맹 혹은 한·미·일 삼각 프레임을 중시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밝혔다. 중국과의 첨예한 패권 경쟁을 하는 미국 처지에서 보면 새로 출범한 한국 좌파 정권의 이러한 변신이 마음에 들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마 방미 대표단이 미국 측에 특히 이를 강조하면서 트럼프의 환심을 산 것으로 보인다. 좌파 정권으로서 노선 선회가 쉽지 않았겠지만 냉정한 관점에서 국익의 원천을 잘 인지한 결과로 평가된다. 이웃인 중국과 절연하지 않고 우호적으로 관리해 나가는 것은 이 정권의 또 다른 딜레마이긴 하다.
현실적으로 판단해 보면 중국으로부터의 경제적 실익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중국과 수교 이후 30여 년 동안 양국은 서로가 경제적 이익을 공유하면서 충분한 수혜를 누렸다. 중국은 한국 기업의 진출로 급속한 공업화를 통한 경제발전을, 한국은 무역으로 엄청난 흑자 덕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3년 전부터 무역은 완전히 역전되어 한국이 오히려 적자국으로 바뀌었다. 기술 추격 속도에서도 마지막 남은 반도체까지 거의 대등한 수준이 되었다. 태양광·고속철·원전이나 AI 혹은 로봇 등에서도 중국이 우리를 앞지르고 있다. 경제는 중국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중국과 부딪히면 이익이 나기보다 손해가 나는 구조적 현상이 두드러진다. 이제는 미국이나 일본과 붙어야 중국의 습격을 방어할 수 있고 이익이 생겨날 수 있을 정도로 글로벌 통상 환경에 완전히 반전되었다, 이것이 새 일상이다.
밖에 나가서는 미국과 일본에 대해 실용 외교를 하겠다면서 안방에서는 여전히 이념이나 진영 논리에 사로잡혀 반(反)기업 혹은 성장보다 분배를 중시하는 이율배반적인 행태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 심히 우려스럽다. 우물 안 개구리였다가도 정권을 잡고 해외 나가서 보면 왜 국력이 중요한지와 국력의 원천이 기업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트럼프가 무슨 의도로 “한국에서는 사업하기 어렵다” 말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여러 해석을 가능케 한다. 미국의 관세 폭탄으로 심지어 중소기업까지 미국에 전용 공단을 지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잊힐 만하면 GM의 한국 철수설이 튀어나와 현실화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모두가 보따리 쌀 궁리만 한다. 외교 첫 단추 홍보에 열 올릴 일이 아니다. 국익이나 실용의 출발지는 국내고 그 주체는 기업이다. 공허한 사상누각만 자꾸 지으면 다른 위기가 닥친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년)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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