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뷰] 서울시 택시 정책, 민생지원금 15만원의 판박이

김두일 정치사회부 선임기자
김두일 정치사회부 선임기자

정치권은 ‘민생’을 입에 올릴 때마다 서민과 소비자를 위한다는 미사여구를 늘어놓는다. 그러나 현실에서 소비자는 정책의 중심이 아니다. 서울시의 ‘외국인 대상 택시 불법행위 근절 대책’과 이재명 정부의 ‘민생지원금 15만원’이 대표적이다. 이들 정책은 분야만 다를 뿐, 공급자만 살찌우는 구조라는 점에서 그 결함이 꼭 닮아 있다.  이쯤 되면 행정의 본질을 망각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시는 지금 택시 바가지 요금과 승차 거부를 없애겠다며 100일간 집중 단속을 벌이고 있다. 관광지에 단속 인력을 투입하고 QR코드 신고제, 영수증 개선을 한다지만, 이런 방식은 10년 전에도 쓰던 ‘이벤트성 행정’의 재탕이다. 2015년부터 외국인 전담 단속반을 운영했다면서도 연간 적발 건수는 고작 수십 건뿐이다. 매일 벌어지는 불법행위와 승객 피해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정작 필요한 건 전면 블랙박스 의무화, GPS 자동요금제, 상습 위반자 면허 취소, 우수 기사 인센티브 같은 구조 개혁이다. 그러나 이런 방안은 택시업계 반발이 두려운지 전혀 손대지 않는다. 요금은 올려주고, 면허는 지켜주고, 불친절 기사도 보호해 준다. 피해자는 오롯이 승객인데, 혜택은 택시업계 몫이다.

이재명 정부의 민생지원금도 마찬가지다. 서민 가계를 돕겠다더니, 사용처를 지역 가맹점과 전통시장 등으로 제한했다. 백화점, 대형마트, 온라인 쇼핑, 병원비 납부 등은 불가능하다. 현금 보유도 안 된다. 정책 설계의 핵심이 소비자 지원이 아니라 ‘소상공인 매출 보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상공인들은 이미 별도의 지원금을 받는다. 그런데도 소비자 몫까지 특정 업종에서만 쓰게 만들어 직접·간접 ‘이중 지원’을 챙긴다. 소비자는 품질이 떨어져도, 가격이 비싸도 지정된 곳에서 강제로 소비해야 한다. 선택권이 박탈된 시장은 긴장감이 사라지고, 경쟁력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두 정책 모두 소비자 권익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다. 불편과 피해는 단속 통계로 때우고, 진짜 필요한 구조 개혁과 선택권 보장은 외면한다. 이유는 뻔하다. 공급자를 자극하면 표와 조직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이런 행정이 반복되면 공급자는 변할 이유가 없고, 소비자는 계속 피해를 본다. 택시 기사는 승객을 무시해도 업계가 지켜주니 버티고, 상인은 품질을 올리지 않아도 정부 지원금과 소비자가 찾아오니 이득이다. 이것은 행정이 소비자를 기만하는 구조다. 명분은 민생이지만 실제로는 표를 지키고, 조직을 달래는 ‘정치적 방탄’에 불과하다.

민생의 주인은 소비자다. 택시 정책은 승객의 편리와 안전을, 지원금은 소비자의 자유로운 지출을 보장해야 한다. 이미 소상공인에게 지원금을 줬다면, 소비자 몫은 반드시 현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그것이 공정이고, 그것이 진짜 민생이다. 서비스 제공자가 아니라 서비스 이용자가 정책의 중심에 서야 한다는 말이다. 공급자 보호 행정이라는 낡은 틀을 깨지 않는 한, 민생은 헛구호에 불과하다. 정치권은 소비자가 왕이라는 상식을, 왜 이토록 모른 척하는가. 서민의 고통을 이용한 ‘가짜 민생’으로는 더 이상 국민을 속일 수 없다.

서울시는 ‘단속 성과 부풀리기’에서 벗어나 서비스 질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상습 위반자 퇴출, 요금 산정의 전면 투명화, 외국인·내국인 차별 없는 서비스 표준화가 필요하다. 이재명 정부도 민생지원금을 소비자가 가장 절실한 곳에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전면 현금화해야 한다. 지원은 소상공인의 매출 보전이 아니라 국민 생활 안정에 직결돼야 한다.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모두, 표 계산과 업계 눈치가 아니라 소비자의 신뢰와 선택권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민생’을 입에 올릴 자격조차 없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