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봉준 공초'로 본 동학농민혁명은 동학과 무관하다

  • 김정일 동학농민혁명대안포럼 총재

김정일 동학농민혁명대안포럼 총재
김정일 동학농민혁명대안포럼 총재

131년 전, 조선 말기 전라도 고부 땅에서 일어난 민란은 탐관오리 고부 군수 조병갑에 대한 농민들의 정당한 분노에서 비롯되었다. 불효, 불목, 잡기, 대동미, 건비 등 갖가지 명목으로 세금을 착복하던 조병갑은 당시 백성들에게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존재였다. 이에 분노한 농민들은 전봉준, 손화중, 최경선을 중심으로 1894년 1월 10일 고부 관아를 습격했고, 백성에게 세곡을 나눠준 뒤 만석보를 허물고 동년 3월 12일 자진 해산했다.
이는 삶을 지키기 위한 민중의 행동이었다.
전봉준은 한문 훈장이었고, 봉기 역시 동학교도의 조직적 움직임이 아니라 문자를 아는 전봉준을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결집한 농민들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분명히 밝혔다. 전봉준 공초에는 동학을 가르친 적 없다는 진술이 분명히 있고, 동학교도는 일부 있었지만 농민이 주축이었다는 언급도 남아 있다. 재판관은 그에게 동학과의 관련성을 묻지만, 전봉준은 단호하게 부정한다. 고부에는 동학교도는 있었지만, 자신은 그들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실제로 전봉준 공초에는 동학교도임을 묻는 질문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이로써 고부 봉기는 동학과 무관한 민중 봉기였다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동 출신 신순철은 1996년부터 역사의 흐름은 조직적으로 왜곡되기 시작했다. 전년도 일본 홋카이도에서 발견된 가짜 '한국동학당 수괴'라 적힌 유골을 국내로 송환한 일을 계기로, 신순철은 동학 전문가로 급부상했다. 이후 정읍 출신 이진영 과 함께 '무장포고문'이라는 이름의 문건을 조작해 ‘실록 동학농민혁명사’라는 책을 국가 예산으로 발행했다. 실록이라면서도 주석 하나 없이, 근거도 없이 오직 재단의 홍보용으로 만들어진 책이 2008년에는 영문, 중문, 일문으로 발간하여 국제적인 망신을 자초하였다.
2022년에는, 신순철이 재단 이사장이 되자 4쇄까지 출판되었다. 
신순철 이사장은 혁명 당시 경유지인 ‘무장’을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로 둔갑시키며 기념비를 세우고, 고부는 단지 민란지역으로 격하하고, 2004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대한 특별법에서 참여자 범위에서 제외 시켜 버렸다. 위와 같은 조작 내용을 2024년 3월에 1억 5천만 원 예산으로 주최 전북자치도(지사 김관영) 전주시 (시장 우범기) 주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신순철 이사장)’이름으로 “동학농민혁명” 320쪽짜리 호화 양장본으로 발간하였다.
구체적으로, 1894년 1월 10일 고부농민혁명과는 아무 관련 없는 동학농민 혁명 주요전개과정 전사(前史)라 제목을 달고, 1892년 8월 동학교도 도솔암 마애석불 비기탈출’하는 것으로 시작, 동년 10월 21일 동학교단 공주집회(교조신원운동), 동년 11월 2일 동학교단(교조신원) 1893년 2월11일 동학교도 광화문 복합상소,(교조신원운동) 동년 2월 11일 동학교단 교조신원운동 충북 보은집회 동년 3월 11일 동학교단 교조신원운동 전북김제 원평집회, 동년11월 ‘사발통문 거사계획 수립’ 이라고 조작하여 기록으로 남겨 동학농민혁명의 시발점(前史)인 것처럼 기술되어 있다..
전봉준 공초에는 없는 진도, 해주, 예천, 하동, 상주, 장흥 등의 전투 기록이 전혀 없다. 그러나 ‘무장포고문’을 근거로 다수의 전투를 나열하고, 각 지역마다 기념비를 세우는 현실은 심각한 문제다.
이는 마치 조병갑의 만석보 수세 징수처럼 오늘날 또 다른 형태의 착취가 되어 국민 세금으로 특정인의 명예를 유지하는 구조로 이어지고 있다.
그는 지난해 국회 토론회에서 "잘못된 역사는 시간이 걸려도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그 자신에게 되돌아가야 한다. 동학의 이름으로 포장된 조작된 문건과 지역 이권 중심의 기념사업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1894년 고부에서 시작된 농민의 봉기는 종교적 색채가 아니라 민중의 절박한 삶의 투쟁이었다. 이를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끼워 맞추고 왜곡하는 것은 혁명의 진정성을 훼손하는 행위다.
고부농민봉기를 동학혁명의 일부로 끼워 넣는 구조, 특정 인물 중심의 허위 포고문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현실은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전봉준이 싸운 것은 조병갑인가, 아니면 종교의 이름을 빌린 이권의 구조였는가? 그리고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그 '혁명'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혁명의 이름으로 누군가의 명예를 세우기보다, 그날의 봉기를 이끈 민중의 진실한 분노를 정직하게 기록하고 기리는 일이야말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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