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치용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북극 빙하 연구 네트워크 ‘북극대학’(University of the Arctic)이 26~28일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회의를 열었다. 회의 명칭은 ‘북극 살리기’(Arctic Repair Conference 2025) 정도로 번역하면 되겠다. 회의에서는 북극의 기후변화를 늦추고 멈추며 되돌리기 위한 개입 시나리오 61개를 검토했다.
61개 시나리오는 모두 북극의 빙하 소멸을 늦출 수 있는 기술적 아이디어이다. 따뜻한 해수를 막기 위한 빙하 아래의 거대한 수중 커튼, 태양광을 반사하는 우주 거울, 비행선에 매단 길이 10㎞짜리 태양가림막, 북극 야생동물의 이동통로를 제공하기 위한 얼음 뗏목 등 과거에는 공상과학으로 간주해 과학자들이 논의조차 하지 않은 “황당한” 생각들을 살펴본다.
케임브리지대학교 기후복원센터 션 피츠제럴드 소장은 자신과 같은 기후과학자 중엔 탄소 배출량 감축이란 합리적이고 온건한 해법에서, 북극을 구하기 위해 급진적 방법으로 방향을 튼 이들이 더러 있다고 전했다. 지난 30년 연구에도 인류는 계속 엉뚱한 길로 갔고, 무력감에 사로잡힌 일부 과학자가 식이요법이 아닌 수술에 해당하는 방법을 의무감에서 모색하고 있다는 얘기다.
회의에서는 기술적 타당성에 국한하지 않고 윤리, 거버넌스, 지속가능성, 대중 참여 등 포괄적 주제를 논의했다. 환자의 생명이 위태로운 응급 상황에서 어떻게 처치하는 것이 최선인지를 검토하는 지구와 인류를 대상으로 한 응급의학 세미나를 떠올리게 한다.
■‘플랜B’ 필요한 상황=비영리 공공기관인 영국 에너지 연구소가 26일 발표한 세계 에너지 통계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지난해에 4년 연속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는 기록상 가장 더운 해였으며,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처음으로 1.5℃를 넘어섰다. 풍력과 태양 에너지 발전은 2024년에 16%나 증가했지만 전통적인 화석연료 발전을 줄이지 못해 2023년 온실가스 발생량(408억 이산화탄소 환산톤)을 초과한 것으로 추산했다.
세계 각국이 세계시민 의식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탄소를 감축하겠다는 이상적인 구상은 사실상 좌초 단계다. 재생에너지를 늘리고 화석연료 사용을 줄인다는 단순하지만 이상적인 해법은 인류의 에너지 탐욕 때문에 표류 중이다. 최근엔 인공지능(AI)까지 전기 먹는 하마로 기후위기의 새로운 위협 요소로 등장하며 ‘기후공학’으로 불리는 급진적 방법론에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열린 ‘북극 살리기’ 회의는 이런 흐름의 반영이다.
기후공학은 판도라의 상자처럼 예상하지 못한 재앙을 불러올 수 있어 환경운동단체 등을 중심으로 반대하는 의견이 강하다. “지금도 (기후위기가) 충분히 심각하지만 앞으로 100년을 생각한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의 위험이 더 크다”는 게 기후공학을 검토하는 과학자들의 반론이다.
하지만 이것도 정답은 아니다. 스탠퍼드대학교 연구팀은 화석연료로 오염된 대기를 탄소포집 기술로 정화하기보다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것이 훨씬 비용 효율적이고 환경적 효과도 크다는 연구 결과를 최근 내놓았다.
과학 저널 <환경과학과 기술>에 게재된 연구팀 논문에서 2050년까지 전 세계 에너지원 전부를 풍력, 태양광, 지열, 수력 등 재생에너지로 전환한다면 세계 에너지 소비량을 절반 이상 줄이고, 에너지 비용을 60% 가까이 절감하며, 대기오염으로 인한 수백만명의 조기 사망을 예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를 이끈 마크 제이컵슨 교수는 “배출원을 없애는 것이 배출 후 정화하는 것보다 언제나 낫다”고 말했다. 제이컵슨 교수는 재생에너지로 탄소포집을 하더라도 그 에너지를 직접 화석연료 대체에 사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탄소포집과 재생에너지를 병행하려는 현재의 정책 방향이 근본적으로 잘못됐다고 지적하며 “기후변화 유발 가스와 대기오염 물질을 완전히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은 ‘연소’를 없애는 것뿐”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절충론으로서 DAC=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2022년 4월 발간한 제6차 IPCC 정책입안자를 위한 보고서에서 거의 한계에 다다른 온실가스 배출 문제의 해결 방법으로 직접대기포집(DAC: Direct Air Capture) 방식을 포함한 다양한 탄소 제거 방법을 실행할 것을 강조했다. DAC는 간단히 말해 공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직접 잡아서(포집) 되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기술이다.
스위스의 클라임웍스(Climeworks)는 전 세계 DAC 기술을 선도하는 기업이다. 클라임웍스는 2009년 얀 부르츠바허와 크리스토프 게발트가 공동으로 창업했다. 두 사람은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에 다닐 때 처음 만나 알파인 스키라는 취미를 공유하며 친해졌다.
당시 알프스 산맥에서 스키를 타던 두 대학생은 빙하가 녹아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지구온난화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를 직접 확인했다. 이 체험은 공학도로서 지구온난화를 늦추는 데 도움을 주는 방법을 찾는 것으로 이어졌고, 이들은 고민을 거듭한 끝에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에서 직접 없애는 DAC 방식에 주목하여 클라임웍스라는 스타트업을 만들었다.
클라임웍스의 이산화탄소 포집은 성능이 문제이지 간단한 기술에 속한다. 우선 포집기에 대기를 흡입한 후 필터를 통해 이산화탄소를 걸러낸다. 이산화탄소를 걸러낸 ‘깨끗한’ 공기는 방출된다. 필터에 이산화탄소가 꽉 차면 대기 흡입을 중단한 뒤에 포집기 내 온도를 100℃까지 가열한다. 가열된 포집기의 필터에서 순수 이산화탄소를 포집한다.
클라임웍스의 DAC 기술은 창업 이후 많은 발전을 이뤄냈다. 대표적으로 포집제의 안전성을 들 수 있다. DAC 설비는 ‘흡수’ 기술을 사용하는 습식 설비와 ‘흡착’ 기술을 사용하는 건식 설비로 나뉘는데 클라임웍스는 건식 설비를 선택했다. 액체 형태의 염기성 포집제를 사용하는 습식 설비에 비해 고체 형태의 염기성 포집제를 사용하는 건식 설비는 더 안전한 포집 방식으로 간주된다.
클라임웍스가 각광받은 이유는 기술을 지속해서 발전시키고 구체화하여 시장에서 팔리는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한 데에 있다. ‘직접 대기 포집 및 저장(DAC+S)’에 대한 추상적인, 혹은 원론적인 접근에 그치지 않고 탄소 포집 기술을 활용해 실제로 대기 중에서 대규모의 이산화탄소를 없애는 방법을 찾느라 애를 썼다.
대표적인 게 아이슬란드에 건설한 오르카이다. 클라임웍스는 카브픽스(Carbfix)와 온파워(On Power)라는 기업과 협력해 2021년 9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탄소 포집 시설인 오르카(Orca)를 아이슬란드에 설치했다. 오르카의 연간 이산화탄소 포집량은 총 4000톤이며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광물화해 영구 저장할 수 있는 저장소를 보유하고 있다.
오르카는 에어컨처럼 생긴 대형 컨테이너 크기 상자 4개를 겹쳐 둔 모양이다. 근처에 있는 온파워의 헬리셰이디 지열발전소에서 전력을 공급받아 가동된다. 클라임웍스가 온파워의 전력을 받아 DAC 기술로 공기 중에서 순도 높은 이산화탄소를 걸러내면, 카브픽스가 그 이산화탄소를 물과 섞어 이 물을 수백 미터 땅속 현무암에 묻는다. 이 물은 2~3년 안에 탄산염 광물로 바뀐다. 이산화탄소가 지하에 돌덩어리로 영구 저장되기에 완전한 탄소 격리가 된다.
탄소 포집과 광물화 과정에 필요한 전력을 온파워의 지열에너지로 충당하고 있어 오르카는 넷제로를 넘어 ‘탄소 네거티브’를 실현한다. 오르카를 가동하며 배출한 온실가스보다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실질 배출량을 마이너스로 만들었다는 얘기다.
오르카를 성공시킨 클라임웍스는 2022년 6월 아이슬란드에 두 번째 탄소 포집 시설 맘모스를 착공했다. 착공 2년이 안 된 2024년 5월 클라임웍스는 신규 DAC 설비 맘모스 가동에 들어갔다.
맘모스의 연간 탄소포집 규모는 3만6000톤으로 오르카의 거의 10배로 확대됐다. 단일 설비로 세계 최대 규모다. 클라임웍스는 2030년 100만톤, 2050년 10억톤의 탄소포집 능력을 갖추겠다는 계획이다.
■개마고원에 남북합작으로 DAC를 만들자=스탠퍼드대 연구가 권고하듯 DAC보다는 탄소포집하는 데 쓰는 재생에너지를 다른 용도로 쓰는 게 더 효율적일 수 있긴 하다. 다만 DAC엔 약간의 유보 조건이 붙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지열 등 재생에너지원이 풍부한데 주변에 에너지를 활용할 곳이 없다면 DAC가 유효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전기를 다른 곳으로 보내는 데에도 탄소가 들기 때문이다. DAC 입지는 대기만 있으면 되기에 다른 산업 등과 입지를 두고 경쟁하지 않는다. 오지에서도 재생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다면 ‘탄소포집+재생에너지+광물화’의 맘모스 모델을 적용할 수 있다. 이에 따른 탄소배출권 수입 등을 생각하면 ‘투명 황금’인 셈이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남북교류 확대가 점쳐지고 있다. 개마고원의 지열발전 적지를 찾아서, 아니면 풍력발전을 해서 남북합작으로 DAC사업을 펼쳐보면 어떨까. 남한 기업은 그곳의 탄소저감분을 배출권으로 사 오고 북한은 그 돈으로 식량난 해소 등 건설적인 용도로 쓸 수 있지 않을까. 스탠퍼드대 연구에 동의하지만 개마고원 DAC사업은 여러 이유에서 충분히 예외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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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 2025-07-01 09:49:57음...그 돈으로 식량을 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