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등장을 계기로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한 반면 기존 방송통신업계는 사양길을 걷고 있다. 지상파, 케이블, 인터넷TV(IPTV) 등 전통 방송업계는 광고 형식과 편성, 재승인 심사 등 다양한 규제를 받으며 콘텐츠 투자와 활성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존 미디어 업계는 OTT 사업자와의 규제 역차별을 호소하며 동일한 규제 적용을 요구하고 있다. 동일한 조건이 갖춰져야 OTT와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미 시장 주도권을 OTT가 장악한 상황에서 기존 방송업계가 이를 되돌리기는 어렵다는 회의론도 나온다.
OTT '3584만명' 시대…플랫폼 간 격차 확대
24일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OTT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3584만5608명에 달했다. 1위는 넷플릭스로 1450만5305명을 기록했으며 이어 티빙(715만8800명), 쿠팡플레이(715만1036명), 웨이브(412만5283명), 디즈니플러스(243만4607명) 순이었다. 전환사채(CB) 만기 연장에 실패한 왓챠(47만577명)를 제외하면 대부분 OTT 플랫폼은 이용자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이 승인되면서 두 회사가 넷플릭스와 대등한 협상력을 확보하고 ‘규모의 경제’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는 "한 사람이 2~3개 OTT를 동시에 이용하는 사례가 많아 단순히 합병한다고 해서 가입자가 그만큼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며 "결국 핵심은 좋은 콘텐츠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플랫폼끼리 경쟁하기보다는 전체 시장을 키울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줄어드는 방송 영향력…제작편수·광고 모두 감소
OTT의 성장과 맞물려 방송 채널의 영향력은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하루 평균 방송 시청 시간은 2020년 161분에서 2023년 121분으로 25% 감소했다. 같은 기간 국내 방송사의 드라마 제작 편수는 109편에서 77편으로 줄어든 반면 글로벌 OTT가 제작한 한국 드라마는 3편에서 22편으로 7배 넘게 증가했다. 전체 광고 시장에서 방송광고가 차지하는 비중도 2023년 기준 17.6%까지 하락했다.
케이블TV 업계도 비슷한 위기를 겪고 있다. 대선 직후 규제 완화와 지역방송 지위 확보 등을 요청했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케이블TV협회에 따르면 콘텐츠 사용료 부담은 매출의 90%에 달하며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14개사 중 11곳이 적자를 기록 중이다.
"OTT는 자유, 방송은 규제"…역차별 심화
업계는 이러한 위기의 원인으로 방송과 OTT 간 규제 불균형을 지적한다. 방송사는 편성, 광고, 콘텐츠 주제 등 전반에 걸쳐 방송법 규제를 받는 반면 OTT는 사실상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방송사는 콘텐츠 투자보다는 규제 대응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업계는 콘텐츠 사용료 거래 제도 마련, 광고 규제 완화, 콘텐츠 제작 세액공제 확대, 지역방송 법적 지위 확보 등을 정치권에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통합미디어법 추진…‘동일 서비스-동일 규제’가 핵심
이런 가운데 이재명 정부가 추진 중인 ‘통합미디어법’이 방송통신업계의 핵심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최민희 위원장 직속 ‘통합미디어법 태스크포스(TF)’는 지난 20일 첫 회의를 열고 입법 작업에 착수했다. TF는 오는 8월 말까지 법안 초안을 마련해 국정기획위원회에 제안하고 국회 발의도 병행할 예정이다.
법안의 핵심은 ‘동일 서비스-동일 규제’ 원칙이다. 지상파와 라디오 등 전통 미디어뿐만 아니라 넷플릭스, 유튜브 같은 글로벌 OTT까지 포괄하는 통합 규제 체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OTT나 유튜브 같은 신유형 플랫폼은 현행 방송법에서 반영되지 않아 규제 사각지대를 만들어왔으며 이로 인한 역차별은 지상파 광고 매출 23% 감소 등으로 이어졌다.
글로벌 OTT는 규제 바깥…국내는 ‘삼중 규제’
국내 OTT는 문화체육관광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등 세 개 부처의 복잡한 규제를 받고 있지만 글로벌 OTT는 사전심의 없이 자유롭게 콘텐츠를 송출하고 망 사용료 부담도 상대적으로 작다. 국내 사업자들은 이중 규제, 이중 부담 속에 경쟁에서도 불리한 위치에 서 있다는 지적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미디어산업 발전을 위한 컨트롤타워 설립을 공약한 바 있으며 ‘미디어 혁신 범국민 협의체(가칭)’를 구성해 제도 정비와 거버넌스 개편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TF, "OTT도 방송 간주"…법 개정 본격화
국정기획위원회가 지난 17일 발표한 ‘대한민국 진짜 성장을 위한 전략’에 따르면 정부는 기존 미디어와 신규 플랫폼 간 규제 역차별 해소와 방송·통신 관련 부처의 자율규제 체계 정비를 중심으로 정책을 개편할 예정이다.
통합미디어법 TF는 현재 OTT를 부가통신사업자로 분류해 방송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 현행법을 개정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영상물을 통신망을 통해 전송하는 행위 자체를 방송으로 간주’하는 규정이 핵심이며 관련 내용은 오는 27일 열릴 TF 2차 회의에서 구체화될 전망이다.
법 개정 논의가 속도를 내면서 정책을 조정할 컨트롤타워 마련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현재 미디어 관련 규제와 진흥 기능은 과기정통부, 방통위, 문체부 등 여러 부처에 분산돼 있어 정책 일관성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대통령실 산하에 방송·통신·미디어 콘텐츠를 총괄하는 수석실을 신설하고 정책 기능을 통합 관리할 독임제 부처를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박세진 한양대 미디어학과 교수는 “미디어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려면 정책 조정 기능이 필수”라며 “흩어진 기능을 단일화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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