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혜의 C] 인체 조각·타인·자연과의 조우…'대지의 몸' 속으로

  • 뮤지엄 산 '그라 운드'…건축가 안도 타다오·조각가 안토니 곰리 공동설계

  • 돔 형태로 7점 조각 품어…"7개 시공간에서 몸과 자신에 대해 사유하길"

뮤지엄 산 그라운드 사진뮤지엄 산
뮤지엄 산 그라운드 [사진=뮤지엄 산]

뮤지엄 산의 ‘그라운드’는 대지의 몸이다. 지상에서부터 44개의 계단을 내려가면 먼 산등성이와 인체 조각을 바라보는 대지와 만날 수 있다. 대지는 기꺼이 사람들에게 몸을 내어준다. 대지가 보는 것이 망막 속으로 튀어 들어오고, 대지가 듣는 소리가 고막을 친다. 대지의 몸도, 나의 몸도 살아 있다.
 
그라운드는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와 세계적인 조각가 안토니 곰리가 공동 설계했다. 플라워 가든 아래에 조성된 이곳은 내부 직경 25m, 천고 7.2m, 직경 2.4m다. 돔 형태의 그라운드는 둥그스름한 사람 머리-뇌를 닮았다. 눈을 닮은 전면부는 자연을 담고, 자연의 소리와 사람의 목소리는 돔 내부를 울린다.
 
몸속의 몸이다. 그라운드에서 존재하는 사람들은 인체 조각, 타인, 자연과 교류하고 반응한다. 땅이 씨앗을 품어 새 생명을 틔우듯, 1만년도 더 전의 인간들이 동굴 벽에 살아 움직이는 동물을 그렸듯, 사람들의 이야기는 새로운 메아리가 된다.
 
뮤지엄 산 그라운드 사진윤주혜 기자
뮤지엄 산 '그라운드' [사진=윤주혜 기자]

동시에 그라운드는 무덤이다. 반대편으로 나와 야외정원에서 바라보면 돔은 거대한 고분으로 변모한다. 땅에서 싹튼 생명이 언젠가 땅으로 되돌아가 새로운 생명을 움틔우듯, 그라운드에서는 생명의 순환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곰리는 지난 19일 뮤지엄 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지구’를 말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재위 117~138)의 판테온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곳을 찾는 모든 이에게 놀라운 영감을 줄 수 있는 공간을 탄생시키고자 했다. 형태는 지구의 원형을 닮았다. 둥근 천장에서 태양광이 내려오면서 이 전체가 하나의 해시계 같은 형상을 갖게 된다.”
 
그라운드는 돔 안의 6점, 야외정원의 1점 총 7점의 인체 조각을 품었다. 각각의 조각은 대지와 접촉한다. 서 있거나 앉아있거나, 누워있거나 웅크려 있다. 곰리는 7점의 조각은 7개의 시공간이라고 했다. “고요한 7개의 공간을 만들었다. 관람자들이 이곳에 멈춰서 시간과 공간 안에서의 몸에 대해, 자신에 대해 사유하고 명상할 수 있길 바란다.”
 
안토니 곰리 사진뮤지엄 산
안토니 곰리 [사진=뮤지엄 산]
몸 속의 몸
그라운드 안에서는 자그마한 움직임도 파동을 일으킨다. 발걸음, 속삭임, 웃음소리 등 행동 하나하나가 모든 사람의 고막을 진동시킨다. 의도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곰리는 이를 “두 팔 벌려 환영한다”고 말했다. “소리가 크게 증폭되리라고는 예상 못 했다. 소리 증폭 덕에 공간이 생동감을 지닌다. 또한 우리 자신도 생동감을 증폭시킬 수 있다. 발걸음 소리가 굉장히 커지기 때문에 공간 안에서 ‘내 여정이 이렇구나’ 같은 인식을 명확하게 할 수 있다.”
 
뮤지엄 산 그라운드 옵저베이션 룸 사진뮤지엄 산
뮤지엄 산 '그라운드' 옵저베이션 룸 [사진=뮤지엄 산]

그라운드는 ‘옵저베이션 룸’(Observation Room)과 주공간으로 분리된다. 옵저베이션 룸에서는 벤치에 앉아 유리창을 통해 그라운드의 주공간을 관조할 수 있다. 곰리는 옵저베이션 룸은 시신경이라고 했다. “옵저베이션 룸에서는 산이 보이고 나무가 보이고, 빛을 조망하고 관찰할 수 있다. 7점의 조각들과 주공간에 먼저 들어간 관람객도 볼 수 있고, 명상할 수도 있다. 또 주공간에 들어가 작품에도 참여할 수 있다.”

계절이 지나면서 철로 만든 인체 조각들이 부스러져 가루가 되듯, 사람도 언젠가 흙으로 돌아간다. 곰리는 새 생명을 강조했다. 그는 녹슨 철의 색깔을 보면 피와 태양이 떠오른다고 한다. “녹이 슨다는 것은 변화의 상징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물질들이 변할 텐데, 앞으로 이 과정을 감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녹슨 듯한 색깔은 철이 땅에서 왔다는 점을 연상시킨다. 우리의 몸은 자연이란 보편적 교환체계 안에 속한다. 때가 되면 몸에 내재된 물질들이 흙으로 돌아가고, 돌아가서는 새 생명의 자양분으로 변모한다.”
 
뮤지엄 산 그라운드 사진뮤지엄 산
뮤지엄 산 '그라운드' [사진=뮤지엄 산]
 
정신의 메아리
뮤지엄 산에서는 곰리의 대규모 개인전 ‘DRAWING ON SPACE’도 열린다. 조각 7점, 드로잉 및 판화 40점, 설치작품 1점 등 총 48점이다. 이들 작품은 몸에서 정신으로 확장된다. 정신은 메아리가 돼 온 우주로 퍼진다.
 
LIMINAL FIELD FOIL_2015_190 x 50 x 50_4 mm square section mild steel bar 사진뮤지엄 산
LIMINAL FIELD FOIL_2015_190 x 50 x 50_4 mm square section mild steel bar [사진=뮤지엄 산]

 
1관 '리미널 필드'(Liminal Field)의 7점의 인체 형상 조각들은 금속 용수철로 기포처럼 가벼운 형상으로 구현됐다.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거닐며 이들 조각과 겹칠 때마다 관람객은 조각이, 조각은 관람객이 된다. 손가락으로 살짝 밀치기만 해도 파르르 떠는 조각은 우리 모두가 연결돼 있다고 말한다. 

2관에서는 지난 30여 년간 인체, 공간, 자연의 상호 관계를 지속적으로 추적한 곰리의 드로잉 및 판화 연작이 소개된다. 이들 작품은 지문, 귀, 눈 등 신체의 각 부분에서 시작해 관에 갇힌 몸, 그 몸에서 뿜어져 나와 소용돌이치는 에너지의 파장으로 확장한다.

 
GROUND I_2024_14 x 19_Inkcap on paper 사진뮤지엄 산
GROUND I_2024_14 x 19_Inkcap on paper. [사진=뮤지엄 산]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성장한 곰리는 인도와 네팔에서 3년간 위파사나 명상을 수행했다. 그는 박스와 같은 공간 안에서 수행하면 할수록 몸이 더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몸을 석고 캐스팅하기 위해 입에 빨대를 물고 호흡할 때는 무덤 속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우주를 경험했다.  
 
3관의 오르빗 필드 II(Orbit Field II)는 그 우주의 궤도, 정신의 소용돌이다. 수십 개의 스틸 원형 구조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전시장 전체를 가로질러, 전시장 밖으로까지 휘몰아칠 기세다. 관람객들은 허리를 숙이고 몸을 기울이며 작품 사이 사이를 통과하며 에너지의 일부가 된다.

 
오르빗 필드 사진뮤지엄 산
오르빗 필드 II [사진=뮤지엄 산]

곰리는 “우리가 동물적인 본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인공지능, 가상현실, 증강현실에 빠져, 결국에는 챗GPT10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다.

“촉촉한 인간의 두뇌를 메마른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다. 우리 몸은 단순히 피트니스 클럽에서 운동시키는 대상이 아니다. 우주만큼이나 미지의 자율적인 존재다. 우리는 우리 몸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알게 되고, 우리가 속한 우주를 알게 될 수 있다.”
 
RUN I_2021_192 x 14_Blood on paper 사진뮤지엄 산
RUN I_2021_19.2 x 14_Blood on paper. [사진=뮤지엄 산]
 
CLEARING XLVIII_2006_77 x 111_Carbon and casein on paper 사진뮤지엄 산
CLEARING XLVIII_2006_77 x 111_Carbon and casein on paper. [사진=뮤지엄 산]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