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글에 이어 애플도 우리 정부에 고정밀지도 데이터 반출 요청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정부의 통상 압박이 거센 가운데 미국을 대표하는 두 기업이 고정밀 지도 반출을 요청하며 국가안보와 한·미 통상문제를 두고 실용 외교를 표방하는 새 정부의 고심도 깊어가고 있다. 오는 7월 8일 미국과 상호관세 유예 시한을 앞두고 있는 만큼 7~8월 중 결론이 날 것으로 전망된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애플이 최근 국토지리정보원에 고정밀 지도 반출 관련해 문의하고, 조만간 공식적인 반출 요구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은 최근 국내 한 대형 로펌에 관련 업무를 의뢰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는 지난 5월 구글의 지도 반출 허용 여부 결정을 한 차례 미루고, 오는 8월 11일까지 결론을 내기로 했다. 현행법상 국내 5000대1 축척의 지도 데이터의 해외 반출을 금지하고 있으며, 구글은 지난 2011년과 2016년, 애플은 2023년 한국의 고정밀 지도 반출을 요구했으나 우리 정부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불허한 바 있다.
구글은 민감한 보안 시설에 대해 '블러 처리'를 하는 대신 좌표값을 제공하는 조건을 달고, 고정밀 지도에 대한 국외 반출을 요청한 상태다.
산업계에선 반대 목소리가 거세다. 한국공간정보산업협회가 회원사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90%가 고정밀 지도 반출을 반대했다. 지도 반출이 이뤄질 경우 장기적인 매출과 일자리 창출 등 관련 산업 생태계에 부정적 영향이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구글과 애플에 지도 반출을 허용하면 중국 등에도 지도 반출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 단순히 미국과의 통상 셈법에 따라 결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법인세 회피를 위해 국내에 서버를 두지 않으려는 해외 빅테크와 국내에 서버를 두고 서비스하는 국내 기업들과의 역차별 문제도 거론된다.
여당인 민주당은 고정밀지도 반출에 반대하는 분위기다. 국가 안보와 디지털 주권과 결부된 문제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문진석 의원은 지난달 토론회를 통해 "고정밀 지도데이터는 안보와 디지털 주권에 직결되는 핵심 자산인 만큼 국외반출에 아주 전략적이고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부승찬 민주당 의원 역시 "1대 5000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관세협상에 활용하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주권적 침해 행위"라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실용 외교 측면에서도 고정밀 지도 반출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상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자동차·반도체·철강 등이 현재의 자산이라면 인공지능(AI), 데이터, 플랫폼 등은 미래를 위한 자산"이라면서 "데이터 확보는 결국 AI 기술 경쟁력과 연결되기 때문에, 미래의 실용을 위해선 국가적으로 중요한 데이터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 정부도 지도 반출 문제는 골칫거리다. 허용하지 않는 것이 맞지만 실익을 고려해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가 고정밀지도 반출 문제를 비관세장벽으로 지적하며, 통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어서다.
국토지리정보원은 최근 국가공간정보자산 국외반출 대응 방안 수립을 위한 긴급 연구용역 입찰 공고를 냈다. 정밀 지도 해외 반출 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 선제 대응하기 위해서다.
국토지리정보원은 관련 산업 생태계와 법·제도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공간정보의 국외 반출 대응 전략을 마련하고, 올해부터 2027년 이후 단계별 대응 계획을 수립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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