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수의 중동워치] 20억 무슬림 1400년의 성지 순례 엑스포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20억명에 달하는 이슬람 세계는 지난 7일부터 최대 종교축제인 이둘 아드하를 맞이하고 있다. 이슬람교 성지가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순례를 마치고 치르는 대규모 종교 행사다. 사우디아라비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올해도 순례객은 100여 개국에서 200만명 정도가 메카를 찾았다고 한다. 심지어 전쟁 중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도 600명 정도의 순례객이 참석했다고 한다. 1400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종교-경제-관광 엑스포인 셈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산유국으로 발돋움하기 전까지만 해도 국가 경제의 가장 큰 부문을 차지하는 것도 단연 순례경제였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탈석유 미래 산업을 결정하는 ‘사우디 비전 2030’ 프로젝트의 핵심 어젠다에 관광부분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배경이다.
 
하즈(Hajj)라 불리는 성지 순례는 평생에 한 번 이슬람력 12월 첫 주에 메카를 방문하는 이슬람의 종교적 의무다. 메카는 이슬람이 완성된 곳일 뿐 아니라 그곳의 카바신전은 ‘알라(하느님)의 집(Bait-al Allah)’이 있는 곳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슬림들이 매일 다섯 차례 메카를 향해 예배를 드리는 이유다. 더욱이 메카는 이슬람을 믿는 신자들만 출입이 허용된다. 메카를 보고 싶어하는 미국 대통령의 간청이 정중하게 거절되었던 일화는 유명하다.
 
성지 순례의 종교적 관행은 예언자 아브라함(이슬람에서는 이브라힘)이 하느님의 명을 받아 건설한 메카의 카바 신전을 일곱 차례 돌고,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이 어머니 하갈과 함께 물을 찾아 뛰어다녔다는 고사가 남아 있는 마르완과 사파 동산을 일곱 차례 왕복하는 것에서 연유한다. 기적적이게도 오아시스 도시 메카에는 잠잠이란 샘물이 있다. 순례객들은 성수로 여기는 잠잠 샘물을 받아 고향으로 가져가기도 한다. 샘물이 솟는 이곳에 사람들이 터를 잡고 형성된 도시가 바로 메카다.
 
순례객들은 정결과 순수의 상징인 이흐람이란 하나의 천으로 두른 순례복으로 갈아입고 메카의 카바 신전에 도착한다. 순례가 시작되면 거의 한달간 메카는 흰 물결이 파도를 이룬다. 한 생애를 정리하며 천국을 준비하는 순례자들의 기도소리가 거룩한 합창이 되어 메아리진다. 미나 동산에서 하룻밤을 보낸 순례자들은 다음날 메카에서 동쪽 20㎞쯤 떨어져 있는 나지막한 아라파트 언덕에 오르고 무즈달리파 평원에서 야영을 한다. 아라파트 언덕은 예언자 무함마드가 마지막 설교를 한 곳이다. 세 번째 날 아침에는 다시 무즈달리파 평원을 떠나 미나로 돌아가서 그곳에서 사탄의 기둥으로 상징화된 곳을 향해 세 번씩 응징의 돌팔매를 하고 마지막 날 속죄의식의 하이라이트인 동물 희생제를 치른다. 순례자 스스로도 머리를 조금 자르거나 수염을 깎으면서 희생 의례에 동참한다. 속죄 의식을 모두 마친 뒤에는 아침 일찍 모스크에 모여 축제예배를 드리면서 이슬람 세계 전체는 일제히 이둘 아드하 대축제를 즐긴다. 이로써 평생을 기다리고 꿈꿔왔던 절대적 종교의무를 완성하게 된다.
 
의무는 아니지만 많은 순례자들은 메카를 떠나 350㎞ 북쪽의 제 2성지 메디나로 이동해 간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이상적인 이슬람 국가를 열었던 곳이고 그의 유해가 안치된 예언자 모스크가 있는 곳이다. 메카에서 발아한 이슬람은 토착 기득세력인 쿠라이쉬 부족들의 집요한 방해와 탄압에 시달렸고, 결국 무함마드는 622년 추종자들을 이끌고 메디나로 이주를 단행한다. 이를 이슬람에서는 헤지라라 하고 바로 이슬람 역사와 이슬람 역법의 기점으로 삼는다.
 
수백개 나라 수백만이 몰려드는 종교-교역 엑스포
 
순례는 재정 형편이 허락되고 건강한 조건에서 부여되는 무슬림의 마지막 의무이다. 따라서 경제 사정이나 건강이 불편할 때는 다른 선행으로 대체할 수도 있는 상대적인 의무다. 순례가 시작되면 인종과 국경, 신분 등의 차이를 초월한 전 세계의 무슬림이 한자리에 모여 공동 관심사를 교환하고 지구촌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는 소통의 공간이 마련된다. 공식적인 순례 과정이 끝나면 메카와 메디나 일대에는 수백개 나라에서 모여든 상인 순례객들로 인해 거대한 글로벌 교역시장이 형성된다. 이런 점에서 순례는 연례 교역 엑스포이자 이슬람 세계의 단합과 결속의 장이기도 하다. 무슬림은 평생의 의무인 순례를 삶의 목표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다. 아프리카나 아시아 극지에 사는 무슬림들이 비행기 같은 교통수단이 발전하기 전에 메카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이었을 것이다. 메카까지 오가는 1년이라는 긴 여정의 경비와 준비과정에서 많은 돈이 필요했을 것이다. 순례객들은 스스로 상인이 되어 귀한 토산품을 낙타등이나 배에 잔뜩 싣거나 어깨에 메고 하느님을 만나러 떠났을 것이다. 아프리카의 상아와 걸프 해의 산호와 진주, 오만의 유향, 예멘의 몰약, 동남아시아의 보석과 향신료, 중국의 비단과 도자기, 대추야자와 이슬람 성물들이 광범위하게 교환되면서 전 세계로 퍼져갔다. 이처럼 새롭게 형성된 시장 가격과 물품 정보는 다음해 순례를 기다리는 자국 동료들에게 소중한 선물이 되었을 것이다.
 
순례 축제, 이둘 아드하가 가져다주는 또 다른 측면은 글로벌 경제 활성화다. 속죄를 위한 이둘 아드하 축제는 동물 희생 의식으로 절정을 이룬다. 하루 이틀 사이에 5천만 마리 이상의 양과 염소, 가축들이 도살되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희생제는 순례에 참가한 사람뿐만이 아니고 전 세계 무슬림들이 모두 참여하는 종교적 의무이자 공동체적 의식이다. 이 희생제 기간에 전 세계 모피 업계, 양모회사. 육류가공업체 등은 비상체제에 돌입한다. 얼마나 좋은 품질의 고기와 털-가죽을 확보하느냐에 따라서 그 해의 업계 판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희생제는 교역 활성화와 함께 세계 경제에 끼치는 영향도 지대하다.
 
희생제 제물은 소나 낙타를 가족 단위로 잡기도 하지만, 대부분 개인들은 양을 도살한다. 희생제는 아브라함의 고사에서 연유되었다.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했을 때, 하느님의 명령을 충실히 따른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들을 실제 번제로 바치고 칼을 대었다. 그러나 그의 신앙을 확인한 하느님은 아들 대신 양을 번제로 놓이게 하는 기적을 보여주신 것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양을 잡는 희생제를 순례 마지막 날 가장 의미있는 행사로 준비한다. 재미난 사실은 구약에서는 번제에 올려진 아들이 본처 사라에게 태어난 이삭인 반면, 꾸란(코란)에서는 그 아들이 하갈의 몸에서 난 이스마엘로 바뀌어 있다는 점이다. 이슬람에서는 당연히 처음 낳은 이스마엘을 장자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교-기독교-이슬람의 세 종교가 모두 아브라함을 공통 조상으로 두고 있는 셈이다. 서로의 차이 때문에 갈등과 전쟁보다는, 같은 조상을 둔 후손끼리 공존과 화해의 틀 속에서 번영을 찾아보자는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중동 평화 구상이 바로 ‘아브라함 협정’인 것이다.
 
메카와 메디나 순례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면 사람들은 그에게 하지(Haji)라는 호칭을 붙여준다. 마을에서 최고의 영예와 존경은 물론 신뢰와 신실함의 상징이 된다. 순례자 스스로도 집 대문에 하지라는 표지를 하고, 더욱 종교적인 삶의 태도를 갖게 된다.
 
부산과의 치열한 유치 경쟁 끝에 2030 엑스포는 결국 사우디아라비아가 승자가 되었다. 신흥 석유부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세계적인 엑스포를 유치한다고 했을 때, 국제적 경험이 부족한 아랍국가보다는 부산이 더 유리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1400년 동안 해마다 엑스포를 유치해 온 오랜 역사성과 이슬람 종교문화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도 득표전략이나 예측실패의 한 원인이 아니었는지 되새겨 보면 좋겠다. 엑스포 유치를 위해 이슬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종교적 순례 행사와 연계한 전략으로 57개 이슬람 국가를 품어 안았고,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동남아, 오세아니아에 있는 많은 개발 도상국들에 대한 전폭적인 재정 후원으로 그들의 표심도 얻을 수 있었다.
 
오늘의 메카도 관광대국을 위한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메카 대사원 남쪽으로 아브라즈 알 바이트(Abraj al Bait) 건축 숲이 들어서면서 순례 관광객 유치와 부동산 개발을 위한 초고층 복합빌딩이 하나둘 하늘로 향하고 있다. 복합 단지 중심에 있는 600m 높이를 자랑하는 세계에서 넷째로 높은 시계탑 빌딩이 대표적이다. 더욱이 메카에는 1945년에 설립된 알 와흐다(Al Wahda FC) 축구클럽이 있고, 홈 경기를 위한 3만8000명 수용 규모의 킹 압둘아지즈 전용 스타디움도 문을 열었다. 메카인들의 스포츠 열정이 성스런 도시에 축구까지 끌어들였다.
 
한 모금 맑고 신선한 물을 찾기 위해 헤맸던 이스마엘의 고사는 이제 신화가 되었고, 메카 도시의 집집마다 바닷물을 바꾼 담수가 공급되어 또 다른 풍요의 원천이 되었다. 바닷물에서 얻어진 담수는 메카 시민들이 먹고 마시고, 남은 물은 길가의 초목을 키우고, 관개 수로를 따라 사막으로 공급되어, 나무가 자라고 곡식을 일구게 되었다. 수입에 의존하던 채소와 과일, 그리고 곡물이 광활한 사막의 벌판에서 녹색 혁명을 이루고 있다. 일정한 물의 공급과 내리쬐는 일사량으로 과일의 맛은 세계 최고를 자랑하고, 일부 사막의 밀밭에는 사우디 국내의 밀 수요량을 충족하고도 남는 수확량을 자랑하고 있다. 이제 메카는 20억 무슬림들에게 영성의 고향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재미와 즐거움을 찾아 떠나는 새로운 관광 순례의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필자 주요 이력

▷한국외대 ▷터키 이스탄불대학 역사학 박사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한국튀르키예친선협회 사무총장 ▷중앙아시아연구원(UNESCO-IICAS) 학술위원(한국대표) ▷성공회대 석좌교수 ▷국내외 저서 90여 권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고궁걷기대회_기사뷰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