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내에도 강력한 베드뱅크가 필요하다

김기헌 영산대학교 관광컨벤션학과 교수
김기헌 영산대학교 관광컨벤션학과 교수
여행 수요의 빠른 회복은 관광산업 전반의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특히 숙박 유통 시장은 단순한 가격 경쟁을 넘어, 공급망의 효율성과 유통 구조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와 같은 변화 속에서, 글로벌 시장은 이미 호텔과 여행사를 연결하는 B2B 숙소 유통 시스템인 ‘베드뱅크(Bed Bank)’를 핵심 인프라로 자리매김시키고 있다.

그러나 국내 시장에서는 아직 베드뱅크 개념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일부 기업이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베드뱅크는 독립적이고 체계적인 유통 모델로 정착하지 못한 상태다. 이는 오랜 기간 지속되어 온 전통적 유통 관행에 기인한다. 호텔과 OTA, 여행사 간 직접 계약이 일반화되어 있고, 숙박 재고는 여전히 채널별로 개별 관리되는 경우가 많다. 실시간 재고 연동, 자동화된 요금 조정 같은 기술 기반 유통은 기대 수준에 한참 못 미친다.

또한 디지털 전환을 위한 체계적인 투자가 미흡한 점도 이러한 정체의 배경이다. 대형 OTA들은 이미 자체 플랫폼 생태계를 구축하며 기술 경쟁력을 강화해온 반면, 국내 중소 숙박업체나 여행사는 수동적이고 단편적인 방식에 머무르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국내 숙박 재고의 상당 부분이 해외 OTA를 통해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숙소 운영자들은 높은 수수료 부담을 지고, 국내 여행사들은 안정적인 재고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국내 현실에 맞는 유통 플랫폼의 구조화를 고민할 시점이다. 다수의 판매 채널에 동시 대응이 가능하고, 공급자와 판매자 모두에게 효율성과 유연성을 제공하는 베드뱅크 모델이 그 해답이 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유통 시스템의 디지털화에 그치지 않는다. 숙박업체에는 마케팅 자율성과 직거래 기반의 수익성을, 여행사에는 상품 구성력과 경쟁력을, 소비자에게는 더 다양하고 안정적인 숙소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이미 국내에서도 이 같은 가능성을 현실화하고자 하는 민간 기업의 시도가 시작되고 있다. ‘올마이투어’는 전 세계 약 300만 개 숙소와 실시간으로 연동된 인프라를 기반으로, 국내외 여행사에 안정적인 숙소 재고를 공급하고 있다. 특히 AI 기반의 자동화 기술을 통해 객실 조건 구조화, 글로벌 OTA 간 가격 비교 기능 등을 구현하며 베드뱅크 플랫폼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국내 베드뱅크 모델의 실질적 가능성과 발전 방향을 보여주는 주목할 만한 사례다.

그러나 이러한 민간의 선도적 시도가 산업 전체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공공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수적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중소 숙박업체의 디지털 전환을 지원할 수 있는 인프라 정책을 마련하고, 국내 숙박 재고가 해외 유통망에 종속되지 않도록 체계적인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숙박산업의 경쟁력은 더 이상 시설이나 입지에만 달려 있지 않다. 유통 구조의 혁신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관광산업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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