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디지털 시대 통화 주권 수호를 위한 해법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주목받고 있다. 단순히 투자를 목적으로 한 가상자산을 넘어 국가 간 통화 패권 경쟁 도구로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학계와 업계를 넘어 정치권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28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이 최근 실물 경제를 움직이는 새로운 축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달러 같은 특정 법정화폐에 가치를 연동해 가격 변동성을 줄였기 때문에 활용도가 높아진 것이다.
스테이블코인이 주목받는 배경에는 ‘크립토 대통령’을 자처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스테이블코인 육성책이 있다. 미국 정부는 국채 수요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스테이블코인 제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1개당 가격이 1달러로 고정된 테더(USDT), USD코인(USDC) 등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확산하면서 이미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새로운 결제·거래 표준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문제는 이러한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확장이 △국내 통화정책 약화 △원화 대체 현상 심화 △자본 유출 가속화 같은 문제점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시장 규제를 통해 스테이블코인을 무조건 억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제도권 내에서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설계하고 육성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당장 명확한 정의와 분류 체계를 확립하고 발행·유통 주체에 대한 책임 규율을 마련해 원화 코인을 직접 설계해야 한다는 의미다.
특히 원화 코인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활용처 확보가 핵심이라고 입을 모았다. 복진솔 블록체인 리서치 기업 포필러스 리서처는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법정화폐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존재하지만 대부분은 USDT·USDC 대비 점유율이 현저히 낮다”며 “규제에 부합하는 안정적인 설계도 중요하지만 활용 가능성이 뒷받침돼야 지속적인 생존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스테이블코인 활용처에 따라 코인 발행 규모에도 큰 차이가 난다. 글로벌 거래소 바이낸스와 협력한 FDUSD, 글로벌 결제 플랫폼 페이팔이 참여한 PYUSD는 높은 활용도를 기반으로 짧은 시간 안에 몸집을 각각 15억 달러, 9억 달러 수준까지 키울 수 있었다. 제대로 된 사용처가 없다면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발행되더라도 유명무실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원화 기반 코인은 달러나 유로, 엔화 같은 기축통화를 기반으로 한 스테이블코인보다 해외 수요가 적을 수밖에 없다.
이정두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관련해 제도를 정비하는 과정은 필요하다고 보지만 아직 수익 모델이나 효용성에 대해서는 업계에도 입증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며 “유로화 등 기축통화에 기반을 둔 스테이블코인도 시장 점유율이 미미한 편인 데다 국내에는 간편결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 국내외로 원화 코인 수요가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성공을 위해선 안전한 발행 보고와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가상자산 2단계 입법을 통해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사용 관련 포괄적 규제체계를 마련하고, 국내 시장 경쟁력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강희창 포필러스 프로덕트 리드는 “신뢰 확보를 위해서는 투명성과 감시 체계가 핵심”이라며 “한국판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는 초기 설계부터 외부 감시와 정보 공개를 내재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민간 발행자가 참여하되 규제 당국이 실시간 감독하는 구조를 고려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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