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년 전 무연고자들의 삶을 추적하는 르포 기사를 봤어요. 굉장히 마음이 아팠죠. 기회가 되면 이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틈만 나면 했어요. 그리고 이번에 그 기회를 얻게됐죠.”
고선웅 연출은 22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그의 창작 신작 <유령> 기자간담회에서 이처럼 말하며 “굉장히 불행하게 살다가 지워진 무연고자들에 대한 얘기를 썼다”고 말했다.
고선웅 연출이 창작 신작으로 관객들과 만나는 것은 14년 만이다. 이 작품은 "사람으로 태어 났다면 사람으로 살다가 사람처럼 죽어야 한다"는 화두 아래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지워진 존재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남편의 지속적인 폭력에 시달리던 주인공 배명순은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치고, 정순임이란 새 삶을 시작한다. 하지만 결국 무연고자로 생을 마감한다. 작품은 죽은 이후 유령이 되어 무대 위로 돌아온 배명순을 비롯해 그와 유사한 '잊힌 이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고선웅은 “이 작품은 묘한 소동극처럼 됐다”라고 설명했다. “사회고발로만 연극을 하게 되면 관객들에게 너무 힘든 상황을 강요하게 되죠. 인물로 접근하다 보니까, 연극과 인생이 결부되면서 묘한 소동극이 됐어요. 유령이란 아이덴티티가 없는, 즉 누군지를 확정 지을 수 없는 상태죠. (영어 제목을) 'ghost(고스트)'라고 안 하고 ‘I’m nowhere’, 즉 ‘나는 어디에도 없다’로 했어요. 'I'm now here'(난 여기 있다)라고 말하면서 작품을 준비 중이긴 하지만요.”
그는 이번 작품의 모티브는 ‘측은지심’이라고 했다. “저는 글을 쓸 때 내면의 분노, 불안, 측은지심 등을 모티브로 삼아요. <유령>의 모티브는 측은지심이에요. 그런데 이야기를 파고들수록 ‘난 유령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죠. 무연고자 등의 삶에 대해서 환기하지만, 삶과 인생 존재에 대한. ‘이 생이 뭐지’ 이런 느낌들이 (작품에) 있어요.”
특히 그는 무연고자의 삶이 너무 슬펐다고 한다. "사람은 사람으로 태어났고, 누가 봐도 한국 사람인데 넘버가 없으면 인정을 못받아요. 사람의 삶이, 인생 전체가 뿌리 없이 둥둥 떠다니는 느낌. 그것이 굉장히 마음이 아팠어요.”
그러면서도 우울하지 않게 이야기를 풀었다. “(주인공은) 떠돌 수밖에 없는 유령이 되죠. 그런데 겉으로만 보면 폭력에 시달리고 암에 걸려 죽는 여자인데, 이 작품은 전혀 무겁지 않아요. '너무 아파서 보면 안되겠네'하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고선웅은 간담회 도중 "세상은 무대고, 사람은 배우다"란 말을 강조했다. "(이번 작품은) '세상은 무대고 사람은 배우다.' (<유령>은)이 지점에서 시작한거예요. 이 말에 동의하나요? 저는 그렇다고 봐요. 우리는 엉뚱하게 이 세상에 던져진 게 아닌, 우리가 이 세상을 선택해서 왔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세상을 선택했기에 내가 어떤 역할을 선택했을 것이고, 내가 그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이죠. 끝나면 돌아가고, 또 다시 오고 말이죠."
그는 사명감을 말했다.
“저는 원대한 강박관념이 있어요. 인류를 위한 강박관념이 있어야 작가를 할 수 있다고요. 이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있었어요. 아버지가 아프시는 등 글을 쓸 때 글 쓸 수 있는 환경이 제대로 조성되지 않았죠. 그런데도 (글이) 잘 풀렸어요. 어느 정도의 산고는 있었지만요.”
세종문화회관에서 5월 30일부터 6월 2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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