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논설고문]](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5/02/13/20250213113057569156.png)
[이재호 논설고문]
노동운동가 출신의 김문수 후보가 11일 국민의힘(이하 국힘) 대선후보로 등록하면서 6·3 대통령 선거는 김 후보와 이재명 민주당 후보와의 대결로 치러지게 됐다. 김 후보는 국민의힘 지도부가 주도한 한덕수 후보로의 후보 교체 작업이 당원투표 부결로 무산돼 후보 자격을 회복했다. 그는 즉시 “빅 텐트를 세워 반(反) 이재명 전선을 구축하겠다”고 밝히고 “뜻을 같이하는 모든 분들과 연대해 새롭게 위대한 대한민국을 만들어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이번 대선은 보다 다채로워졌다. 지지율 여론조사에선 이재명 후보가 줄곧 앞서 있어서 전망과 그 함의를 논하는 건 쉽다. 그러나 대선 승패와 관계없이 밑바닥에서 발화(發火)해 우리에게 본격적으로 스며들 ‘김문수’라는 ‘요소’가 어떤 궤적을 그릴지 궁금하다.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프레임으로 그를 보는 건 이미 낡았다. 김 후보에 대한 선입견 없는 천착이 필요한 이유다.
그는 과거 국회에서건, 재야에서건 사리에 맞지 않는 사안에 대해선 비판과 반대를 가차 없이 드러내는 사람이다. 노동운동의 대부로서 안기부에 끌려가서도 노동운동의 동지였던 심상정 의원의 집주소를 끝까지 불지 않았던 걸로 유명하다. 그는 그동안 여러 당을 전전하고 지금은 정통 보수정당인 국힘에 소속돼 있지만 우리사회는 정치든 뭐든 ‘소금’의 역할을 다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는 원칙주의자이고 한번 물면 놓지 않는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 주위에선 그의 관상을 ‘투견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 집념이 강하다는 얘기다.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3선 국회의원과 두 차례에 걸쳐 경기도지사, 제13대 경제사회노동위원장, 제10대 고용노동부장관 등을 지낸 그는 경북 영천군 출신으로 경북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그가 현실(보수)정치에 본격적으로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은 김영삼(YS) 대통령 때였다. 김 대통령이 그를 민주자유당으로 영입했고 이어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으로 등으로 옮기면서도 늘 함께 움직였다. 당시 김 후보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수당으로 간 뒤에서 개혁파로 남아 보수정당의 각성을 촉구하곤 했다. ‘여당 속의 야당’이 그에게 붙여진 별명이다.
필자는 2000년대 초 한 언론대학원 강좌에서 그를 볼 기회가 있었다. 대표 질의자로 경기도지사였던 그에게 질문을 했는데 그의 답변이 절묘했다. “ 우리는 정치 군사는 미국과, 경제는 중국에 각각 의존하고 있는데 양국관계가 깨질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시만 해도 반미감정이 거세 내 깐에는 조금 까다로운 질문이라고 던진 것인데 그의 답변이 절묘했다. “미·중을 떠나 우리 사회에 만연된 반미감정부터 누그러뜨리는 것이 급선무”라고 했다. 그의 말인 즉, 우리가 미국이라는 나라와 반미감정을 이성적으로 볼 수 있을 때 미·중문제도, 한·중 문제도 비로소 해법이 보인다는 취지였다. 짧은 시간에 질문의 미묘함을 알고 이를 피해가면서 영리하고도 현실감 있게 해법을 제시한 것이다.
이런 김문수에 맞서 국민의힘 지도부는 너무 안이했다. 양측 간 힘겨루기가 현실로 다가왔을 때 나는 일종의 ‘패턴’을 예상했다. 그 패턴을 따라가면 한덕수 후보, 권영세 비대위원장, 권성동 원내대표 측이 질 거라고 예감했다. 어떤 패턴인가. 국힘의 대선후보 결정과정을 보면서 떠오른 패턴이다. 마땅한 후보가 없어 용병(傭兵)을 데려오고, 정치경험이 전무한 그 용병이 검찰을 앞세워 국정을 쥐락펴락 하고, 이를 놓고 뒷말과 법률 논쟁이 격화되고, 이를 돕기 위해 법을 잘 안다는 친구들이 총동원되나 결국엔 크게 패배하는 그런 패턴 말이다. 윤석열 정권의 재판, 그대로였다.
권영세, 권성동 두 지도부(일명 쌍권)가 기획 연출한 대선후보 ‘빅텐트 치기’와 대선후보 정하기’는 처참한 패배로 끝났다. 예상했던 대로 ‘용병-검찰-법’의 악순환은 되풀이 됐다. 이번에도 선의의 정치가 관여할 공간은 마련되지 않았다. 습관적으로 용병을 불러다 쓰고, 고비 때마다 검찰을 동원하고 검찰에 의존한다면 정치는 왜 필요한가. 윤 정권 내내 주요 인사는 소위 ‘용산’에서 다 결정됐고 그 과정에서 무속(巫俗)까지 개입했다는 얘기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심지어는 윤 전 대통령이 내란혐의로 수사 받고 있는 지금 순간에도, ‘쌍권’에 의한 대선 농단에 관한 얘기는 그치지 않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번 국힘 경선파동의 주역인 권영세 비대위원장, 권성동 원내대표는 모두 검사 출신이다. 이들 당 지도부는 10일 김문수 대선후보의 자격을 전격 취소했다가 여론의 집중타를 맞았다. 김 후보는 반발했고, 이날 오후 법원에 후보자 지위박탈에 대한 가처분 소송을 내 이겼다. 이와 함께 국힘 지도부가 밤 9시까지 전 당원을 대상으로 별도로 실시한 대선후보 변경 여부에 대한 여론조사에서도 김 후보가 이겨 후보 지위를 완전히 회복했다.
그 과정에서 당은 깊은 내상을 입었다. 양측의 대결이 어떤 형태로 결론이 날지 예단하기 어렵지만 당이 창당 이래 최대의 위기에 몰려 있다는 데에 이견은 없다. 사실 오래 전부터 국힘 안팎에선 “결국엔 한덕수 전 총리가 대선후보가 될 거”라는 관측들이 많았다. 여론조사에서 누가 1위를 하더라도, 주저앉히고 한 전 총리를 내보내 이재명 민주당 후보와 맞붙게 할 거라고들 했다. 여러 주자들 중 그래도 한 전 총리가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지도부는 판단하고 있다는 거였다. 이와 동시에 당 지도부는 경선 결과보다 당권에 더 관심을 갖고 있어서 김문수, 한동훈 등은 후보가 되기 어려울 거라는 전망도 나왔다. 당의 한 관계자는 “내년 6월 지방선거와 2028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누군들 기득권을 내려놓고 싶겠느냐”고 반문했다. 당권을 쥐게 되면 지방선거에서만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장을 포함해 포함해 총 243개 자리의 공천권을 갖게 되는데 이를 포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얘기였다.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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