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 칼럼] 과거에 갇힌 정치보단 미래를 위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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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시사평론가
입력 2024-03-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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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22대 총선이 막을 올렸다. 어느 시기, 어떤 총선이든 중요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어떤 인물들을 당선시켜 국회를 어떤 모습으로 만드냐에 따라 정치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의 중요함도 국민의 실망만 키워온 우리 정치가 어떻게든 변화의 계기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한 필요성에서 비롯된다.

21대 국회가 지난 4년 동안 보여준 모습은 국민들로 하여금 탄식을 하게 만들었다. 절대 다수 의석을 보유한 더불어민주당은 의석수의 힘을 앞세워 입법 독주를 반복했다. 민주당이 보물단지처럼 밀어붙였던 공수처가 정작 유명무실한 기구가 된 작금의 현실이 그러한 입법 독주의 폐해가 어떤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심지어 민주당은 대선에서 패배하고서도 새 정권이 들어서기 전에 서둘러 ‘검수완박’ 입법을 강행했다. 그러나 법의 미비로 인해 검찰은 사실상 수사권을 되찾았고 공연히 소동만 벌인 꼴이 됐다. 

‘위장탈당’이라는 기상천외한 편법도 절대 다수 의석을 가진 야당이 보여준 구태였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이 정권을 내놓게 된 이유 가운데는 일방적인 입법 독주에 따른 민심 이반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렇다고 소수 여당인 국민의힘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치를 한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국회에서 여당이 소수라 해도 국민의 지지가 뒷받침된다면 야당이 그렇게까지 마음대로 국회를 운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힘도 정권은 차지했지만 민심의 기대에 부응하는 정치를 보여주지 못했다. 용산의 눈치만 살피다가 여당이 ‘용산 출장소’ 소리를 듣게 만든 ‘친윤’ 지도부가 보여준 정치는 단적인 예가 된다. 아무리 야당이 의석수를 앞세워 입법 독주를 하려 해도 여당이 높은 지지를 받고 있으면 협상과 타협을 할 수밖에 없다. 선거에서 심판받을 것을 걱정하는 정당들의 속성이다. 그런데 여당이 우스워 보이니 야당이 그렇게 자기 마음대로 국회를 운영했던 것이다. 

지난 4년간 보여준 국회의 모습이 그렇게 실망으로 점철되었지만 총선을 앞둔 여야 정치권의 모습 또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급조되었던 비례위성정당의 구태가 반복된 상황은 참담하다. 이는 표의 비례성을 높이고 정치의 다양성을 보장한다며 도입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부정하고 다시 거대 양당이 비례대표 의석을 독차지하려는 욕심의 발로다. 국민들은 4년 전에 이어 또 한번 비례위성정당을 위한 ‘의원 꿔주기’라는 편법을 지켜보게 됐다. 비례위성정당의 반복을 막기 위한 입법조차 해내지 못한 21대 국회의 무능과 무책임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런가 하면 준연동형제는 강성 팬덤층의 지지에 기반하여 비례선거에만 출마하는 정당의 국회 진출을 보장해주는 제도로 변질되고 말았다. 무려 38개 정당이 비례대표 후보 등록을 신청하여 수개표를 해야 할 상황을 맞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여야 각 정당들의 비례대표 후보 공천 과정이 졸속 검증으로 진행되는 것도 큰 문제다.

이렇게 여러 문제를 드러내는 현행 비례대표제의 개선은 22대 국회에서 어떤 식으로든 필요하다. 총선에 임하는 과정에서도 여야 불문하고 많은 논란거리가 등장했다.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은 공수처 수사 대상인 이종섭 주호주 대사의 귀국, ‘회칼 테러’ 발언을 한 황상무 시민사회수석의 사퇴 문제를 놓고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윤석열 대통령이 한동안 갈등을 빚었다. 지난해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여권이 어쩌다 참패를 당했는지를 망각한 광경이었다. 결국 여론 악화와 여당 후보자들의 항변을 의식한 윤 대통령이 여당의 요구를 수용하며 한발 물러서 봉합되기는 했다. 그러나 비례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후보 공천을 두고도 갈등이 드러났다. 친윤계 핵심인 이철규 의원은 공천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며 강력 반발했고, 윤 대통령은 비례대표 당선권에서 배제된 친윤계인 주기환 전 국민의힘 광주시당 위원장을 대통령 민생특보에 곧바로 임명했다. 이는 여당의 비례후보 공천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해석된다. 윤석열 정부 집권세력은 보궐선거 참패 당시와 과연 달라졌는지를 묻게 만드는 광경들이었다. 윤 대통령이 달라지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라는 6개월 전의 교훈을 집권세력은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대통령실과 여당의 올바른 관계 정립은 여전한 숙제로 남아 있다.

‘친명횡재 비명횡사’ 소리를 들은 민주당의 공천은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의 사당이 되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 대표는 차제에 민주당을 완전한 ‘이재명당’으로 굳히려는듯 비명계를 대거 축출하고 그 자리에 친명계를 앉히는 공천을 주저없이 밀어붙였다. 그동안 뛰어난 의정활동의 성과를 쌓아온 박용진 의원에게 ‘하위 10%’ 판정을 내려 30% 감점이라는 치명적인 불이익을 받게 만들어 끝내 탈락시킨 광경은 ‘비명횡사’ 공천의 민낯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박용진에게는 결코 공천을 줄 수 없다는 그런 무리한 과정 속에서 정봉주 전 의원이 막말 논란으로 사퇴하고, 다시 조수진 변호사가 성폭행범들에 대한 부적절한 내용의 변호가 문제가 되어 사퇴했다. 결국 친명계인 한민수 대변인이 후보등록 마감일에 ‘길에서 배지를 줍는’ 횡재를 거두게 됐다. 민주당의 강북을 공천 과정은 파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고,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다. 그런 공천을 하고서도 이재명 대표는 ‘혁신공천’이라고 자찬하고 있으니 그 또한 불통의 정치에 다름 아니다. 지금까지 지켜본 22대 총선의 광경은 여야 정치인들이 과연 성찰이라는 것을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낳는다.

거대 양당의 정치에 대한 실망이 크면 제3지대 신당에 대한 기대와 지지가 높을 수 있는 환경이다. 그동안 부동층이 많았던 이유도 국민의힘과 민주당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가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다. 그것을 읽고 이번 총선에서는 유난히 신당들이 많이 등장해서 후보를 냈다. 그런데 이들 신당이 과연 제3의 신당인지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의문이 따른다. 이준석 대표와 금태섭 최고위원 등이 이끄는 개혁신당이 거대 양당정치를 넘어서려는 제3지대 신당으로 주목받았지만 막상 존재감이 약화되고 내부 갈등까지 빚어지면서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민주당을 탈당한 이낙연 공동대표가 주도하는 새로운미래는 광주 광산을에 출마한 이 대표부터 고전을 하는 등 역시 힘든 상황이다. 두 신당 모두 위기감이 감도는 분위기다.

이들 두 신당을 덮어버린 것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이끄는 조국혁신당이다. 조국혁신당은 ‘반윤비명’층을 기반으로 일부 중도층까지 흡수하면서 기대 이상의 높은 지지율을 나타내고 있다. 신당 가운데 가장 높은 주목도를 보이며 비례대표 선거에서는 민주당과 경쟁이 뜨거울 정도다. 그러나 조국혁신당은 미래지향적인 정치보다는 현 정권에 대한 개인적 원한 감정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당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비례대표 후보 가운데 앞 순위 10번 안팎 가운데 4명이 수사·재판 중이라는 사실도 현 정권 아래에서 진행되는 수사나 재판은 모두 부정하는 극단적 법치 외면이라는 우려를 낳는다. 조국혁신당은 총선 이후에는 민주당의 연합세력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현재의 진영 대결 정치를 넘어설 제3지대 신당이라 하기는 어렵다. 큰 틀에서 보면 현재의 극단적 진영 대결 정치를 강화하는 방향성을 드러낸다.

이번 총선에서 해결해야 할 가장 큰 숙제를 보는 시각은 여야가 전혀 다르다. 하지만 국민의 눈높이에서 본다면 극단적인 정쟁만 야기해온 진영 대결의 정치를 극복하는 일이야말로 여야를 넘어선 중대한 과제다. 과거 시대의 우리 정치도 여러 문제는 있었지만 그래도 상대를 인정하고 협상과 타협을 하는 정치는 언제나 작동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예 정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 됐다. 언제부터인가 선과 악의 이분법이 우리 정치를 지배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가 서로 상대 정당은 악으로 간주하고 자신들만이 선이라는 신념에 갇혀 있다. 그러니 여야 정당 사이에서 당연히 존재하는 노선과 정책의 차이에 대한 협상과 타협은 금기시된다. 각 진영의 강성 지지자들은 팬덤이 되어 상대 진영에 대한 저주와 혐오에 매달려 시간을 보낸다. 시대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우리 정치는 미래가 아니라 과거로 가는 퇴행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에도 여야 각 정당에서 극단적 사고를 가진 강성 정치인들이 많이 후보로 나섰다. 이들이 그대로 국회에 입성한다면 22대 국회 또한 극단주의가 판치는 정치 부재의 국회가 되고 말 것이다. 선동적인 언어로 유권자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데만 매달리는 정치인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균형적 사고를 가진 정치인을 국회로 보내는 것이 우리 정치의 발전을 위한 선택이다.

누구의 승패를 떠나 희망보다는 우려를 많이 낳는 총선 환경이다. 그렇다고 외면할 수 없는 총선이다. 4·10 총선의 선택이 정치는 물론 우리 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최선을 찾기 어렵다면 차선, 차선을 찾기도 어렵다면 차차선을 찾는 유권자들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진영에 따라 ‘묻지마 투표’를 할 것이 아니라 후보들이 대체 어떤 인물인지를 살펴보고 진영을 넘어서는 인물 투표를 하는 것도 방법이다. 여야 정당들이 공천을 했지만 문제가 있는 후보들도 적지 않다. 정당들이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그런 후보를 걸러내는 일, 과거에 갇힌 정치보다는 미래를 위한 정치를 하려는 사람을 찾는 일도 결국은 유권자의 몫이다. 정치권은 달라지지 않았음을 탄식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그런 정치를 바꾸기 위해서도 유권자들의 현명한 선택이 절실하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대학원 사회학 박사 ▷전 경희대 사이버대학교 NGO학과 외래교수 ▷전 한림대 사회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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