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개혁 골든타임" vs "증원이 해법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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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정 기자
입력 2024-03-1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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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대 증원 강대강 대치 정부·의협 입장

  • "노령화 사회 수요 감당 불가능

  • 의료개혁 '골든타임' 사수해야"

  • "2000명 아닌 2만명으로 늘려도

  • 10년 뒤 현장 문제 변함없을 것"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정원 증원 정책에 반발해 휴학계를 제출한 의대생들의 집단 유급 마지노선이 다가오고 있는 14일 대구 한 의과대학 강의실이 의대생 집단휴학으로 개강이 미뤄지며 조용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정원 증원 정책에 반발해 휴학계를 제출한 의대생들의 '집단 유급 마지노선'이 다가오고 있는 14일 대구 한 의과대학 강의실이 의대생 집단휴학으로 개강이 미뤄지며 조용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와 의료계가 의과대학 입학정원 2000명 확대를 두고 한 치 양보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정부는 우리나라 의사가 부족하다면서 베이비부머 의사 2만3000여 명이 대규모 은퇴를 시작하면 전체 의사 수가 빠르게 감소할 것으로 예측한다. 의료계는 인구 1명당 병원과 병상 수가 가장 많은 나라가 한국이라며 필수의료 등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양쪽 모두 서로에게 대화를 제안하면서도 갈등의 시발점인 의대 증원을 두고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양측을 대표하는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과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장의 주장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 사진보건복지부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 [사진=보건복지부]

세계 최고 수준인 대한민국 의료는 우리 모두의 자랑이다. 그러나 2017년부터 5년간 치료할 의사가 없어 재이송 중 사망한 환자가 3752명이라는 통계는 우리 의료의 어두운 이면을 극명히 보여준다. 지역으로 가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전국 226개 시·군·구 중 1시간 이내에 필요한 응급처치를 받을 수 없는 응급의료 취약지는 98곳에 달한다.
 
필수의료 위기는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니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모집률 급락, 응급실 표류 사망, 상경 진료 고착화 등 위기 징후들이 있었으나 근본적 해법인 의료개혁을 갈등을 핑계로 미루고 땜질 처방만 해 온 결과다. 대한민국 필수의료는 붕괴의 임계점에 도달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경제성장과 고령화, 전 국민 의료보험 등으로 의료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러나 정부와 의료계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인력을 늘리거나 공급 체계를 개선하는 근본 대책보다는 병상을 늘리는 손쉬운 방식을 택했다. 규제개혁 열풍 속에 진료권 규제 해제, 병상 허가권 지방자치단체 이양 등은 병상 경쟁을 부채질했다. 수도권 대형병원의 대형화·고급화를 위한 병상 경쟁은 치열해진 반면 의료 인력은 오히려 부족해졌다. 의료 인력과 환자들이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쏠리며 지역의료는 뿌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의료행위 가치를 평가해 건강보험 수가를 결정하는 상대가치 체계도 취지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치료에 필요한 자원 소모량을 기준으로 삼다 보니 오랜 기간 경험을 쌓은 의료인의 행위보다는 장비를 사용하는 검사에 대한 보상이 더욱 커졌다. 상대가치 결정의 핵심인 업무량 산정 권한을 위임받은 대한의사협회가 내부 조정에 실패하며 진료과목 간 불균형도 심화했다. 불균형을 신속히 시정할 책임이 있는 정부도 지난 20년간 불과 세 차례 상대가치 개편을 시행해 보상 왜곡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2009년부터 본격화한 실손보험은 비급여 시장의 과잉 팽창을 초래해 건강보험 급여 진료와 보상 격차를 늘렸다. 여기에 급격하고 광범위하게 추진된 보장성 강화는 병들어가는 의료체계에 쐐기를 박았다.

무엇보다 의사 부족은 과학이 아닌 산수 문제가 되었다. 2035년에만 현재 활동 의사 수 11만5000명 중 20%에 달하는 베이비부머 의사 2만3000여 명이 대규모 은퇴를 시작하면 총 의사 수는 빠르게 감소하게 되고, 노인 대국이 될 대한민국의 폭증할 의료수요를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정부는 '필수의료를 반드시 살려야 한다'는 결연한 의지를 갖고 지난해부터 필수의료 강화 방안을 마련해 왔다. 대통령부터 실무자에 이르기까지 현장과 소통하며 관련 대책을 연이어 발표했다. 전례를 찾기 어려운 수준이다.

대책을 통해 시행된 수가 인상액만 1조원에 달한다. 일례로 분만 수가는 80만원에서 256만원으로 3배 넘게 인상했다. 앞으로 10조원 이상을 긴급 수혈해 다른 필수의료 분야에서도 이 같은 획기적 보상을 계속할 것이다. 최선을 다한 진료를 보호하기 위해 세계에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에 대한 계획을 밝혔고 그 초안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의료계 일각에서는 정부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대책 없는 의대 증원, 일방통행식 깜짝쇼, 의료민영화 괴담까지 퍼뜨리며 반대하고 있다. '환자를 위해 환자 곁을 떠난다'는 모순적 발언을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이해관계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치면 일방적 정책, 의료 죽이기로 매도하며 환자를 볼모로 투쟁하는 오랜 관행을 이제는 끊어낼 때다.
 
의료개혁의 골든타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의료계가 개혁에 동참하지 않고 대정부 투쟁에 매몰돼 마지막 기회를 놓치는 것은 국민과 우리 후손에게 씻지 못할 과오를 범하는 일이다. 개혁의 대상은 의사가 아니라 낡고 불합리한 의료시스템이다. 최근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개최한 토론회에서도 개혁 방향에 대해 정부와 의료계 생각이 다르지 않음을 확인했다.
 
전 국민적 관심이 의료에 쏠린 지금이야말로 의료계가 그토록 원하던 의료개혁의 적기다. 너무나 오래 미뤄온 의료개혁을 이번에도 미룰 수는 없다. 개혁은 파워 게임이 아니다. 국민의 명령이고, 그 이정표는 오직 국민이다. 정부는 흔들림 없이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장 사진대한의사협회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장 [사진=대한의사협회]

우리는 허수(虛數)를 경험한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라는 이야기를 듣지만 실제로 내 소득수준은 그렇지 않다고 느끼고 전국 반나절 생활권이라지만 실제로는 하루를 소비해야 이동이 끝나기도 한다.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데이터를 예시로 들어 의사 수가 부족하다고 하고, 연구자 본인들조차 인정하지 않는 논문들을 근거로 10년 후 우리나라 의사가 1만명 부족하다고 한다. 큰 길가 건물마다 의원들이 무수히 많이 들어서 있고, 인구 1명당 병원과 병상 수가 가장 많은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그리고 환자가 원하는 의사를 지정하지 않는다면 일반적인 평일 근무 시간에 숙련된 전문의의 당일 진료가 언제든지 가능한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최근 이슈인 소아청소년과나 산부인과 같은 필수의료나 응급의료, 지역의료 같은 분야는 데이터상으로 의사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한다. 그러나 20여 년 전 의사 숫자가 지금보다 6만명이나 적었던 시절에는 외과나 산부인과 전공의 숫자가 줄고 있다는 말이 있었지만 의사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그곳에 있었던 의사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리고 20년간 늘어난 의사 6만명은 모두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대한의사협회는 보건복지부에 계속해서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환경, 현 의료제도와 관련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을 요청해 왔다. 그리고 선의를 바탕으로 하는 의료행위에 대한 결과론적 사법적 징벌과 배상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 정부가 잘못된 의료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사법부가 의료 분쟁에 대한 판결을 내놓을 때마다 소아청소년과 같은 필수의료나 응급의료, 지역의료에서 종사하던 의사들은 하나둘 현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선택했던 길을 떠나는 선배들을 바라보는 후배 의사들 또한 그 길을 외면하고 있다.
 
정부는 의대 입학 정원 2000명 증원 후 11년 뒤에나 전문의로 배출될 의사 수를 늘려서 지금 우리가 마주한 의료 문제를 당장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2023년 복지부와 구성한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의사협회는 의대 정원을 늘리지 않고 단기간에 의료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들을 제시해 왔다. 기존에 배출된 인력, 사라진 시니어 의사들을 정책적 유도를 통해 다시 의료 현장으로 돌아오게 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정부는 기존에 배출된 인력을 재배치하는 것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오로지 의대 정원을 늘리고 늘어난 의사 중 누군가가 필수의료나 지역의료를 할 것이라는 막연한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1인당 의사 수가 적다고 하는 말과는 다르게 우리는 언제든지 의사를 만나서 당일 진료를 받을 수 있다. 과거에는 의사 숫자가 더 적었음에도 의사가 부족하다고 느끼지 못했던 대한민국 의료가 현재에는 의사 수가 늘었음에도 왜 의사가 부족하다고 하는 걸까? 우리가 필요로 하는 곳에 있던 의사들이 사라진 이유를 파악해 바로잡지 못한다면 의대 정원을 2000명이 아닌 2만명으로 늘린다 한들 10년 뒤 여전히 의사가 부족하다고 할 것이다.
 
잘못된 처방은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의사협회는 정부가 잘못된 처방으로 대한민국 의료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을 결사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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