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지의 Chip Q] 의대 증원에 '계약학과' 비상…반도체 업계 "의대로 인력 쏠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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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지 기자
입력 2024-02-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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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도체 대신 '지방대 의대' 간다…"우수 인력 의대로"

  • 전문가들 의견 나뉘어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이 반도체 인력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의대 입학 정원 확대가 결국 반도체 계약학과의 더 큰 이탈을 불러일으킬 것이란 우려에서다. 이미 반도체 인력 부족이 심화하고 있는 가운데 의대 증원은 국내 기업들의 초격차 경쟁력 확보에도 걸림돌이 될 것이란 지적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반도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전문인력 부족을 두고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내 기업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계약학과의 합격자 미등록 비중이 높은 수준을 나타내면서다.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반도체 계약학과를 확대하고 있지만, 정작 반도체 분야를 원하는 수요가 적은 셈이다. 학계는 물론 산업계, 연구계 등 반도체 전문가들이 인력 부족을 난제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계약학과는 대학이 기업과 계약을 맺고, 기업이 요구하는 특정 분야를 전공으로 개설하는 학과를 의미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들은 계약학과를 인력 확보 방안의 하나로 활용하고 있다.
 
반도체 계약학과를 포기하는 가장 주요한 배경에는 의대가 있다고 본다. 우수한 성적의 이공계 지원생이 합격 커트라인이 비슷한 지방대 의대에 합격하면 이후 반도체 계약학과를 등록하지 않는 상황이 다수 연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계약학과는 대기업 취업이 보장된다는 장점이 있음에도 의대를 택하는 상황이다.
 
실제 종로학원 등에 따르면 2024학년도 대입 정시모집에서 상위권 대학의 계약학과에 합격했지만, 등록을 포기한 수험생이 작년 대비 크게 증가했다. 예컨대 삼성전자 계약학과인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의 정시 최초합격자 중 미등록 비율은 92%로 지난해 70%보다 22%포인트 높아졌다. 해당 학과의 정원은 25명인데 정시 최초 합격자 중 23명이 등록을 포기한 것이다.
 
SK하이닉스 계약학과인 고려대 반도체공학과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총 10명 중 절반인 5명이 등록하지 않았다. 이는 지난해 18.2%의 등록 포기 비율보다 3배가량 증가한 수준이다. 종로학원 측은 자연계열 상위권 학과인 계약학과에서 대규모 이탈자가 발생한 건 다른 대학 의약학계열 등에 동시 합격해 빠져나간 것으로 추정했다.
 
삼성전자와 울산과학기술원UNIST 간 반도체공학과 신설 협약식 모습 왼쪽부터 이용훈 UNIST 총장 남석우 삼성전자 제조담당 사장
삼성전자와 울산과학기술원(UNIST) 간 반도체공학과 신설 협약식 모습. (왼쪽부터) 이용훈 UNIST 총장, 남석우 삼성전자 제조담당 사장. [사진=삼성전자]

문제는 의대 정원이 보다 확대했을 때다. 지난 6일 정부는 내년 대학입시부터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의대 정원을 늘리는 건 27년 만이다. 이미 수험생은 물론 현재 반도체 종사자들 사이에서도 향후 몇 년을 준비해 의대 도전을 재검토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알려졌다.
 
이미 반도체 전문인력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부족이 심화하고 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오는 2031년까지 국내 반도체 인력은 12만7000명이 부족할 전망이다. 대만 TSMC의 경우 미국 애리조나에 건설 중인 제1공장을 숙련 인력의 부족 등을 이유로 올해에서 내년 상반기로 가동 시점을 연기한 바 있다.
 
우수 인력이 의대로 빠지는 점도 문제라고 반도체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안진호 한양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겸 연구부총장은 “사실 지금 안 그래도 학생 수가 줄고 있는데, 의대 정원을 늘리면 학생들이 선호하는 의대 쪽으로 우수 인력이 쏠릴 가능성이 되게 크다”며 “학생 수를 채울 수는 있겠지만, 현재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는 우수 인력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아직 의대 증원 초기인 만큼 반도체 업계 내에서도 일부 엇갈린 의견도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혁재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의대 정원이 늘면 오히려 의사 직군에 대한 인기가 줄어 공대로 오려는 학생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기는 하다”며 “여러 의견으로 좀 나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전문인력이 부족한 건 기업이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힘든 정말 어려운 문제 중 하나”라며 “국내 기업들뿐만이 아니고 해외 반도체 기업들도 인력이 모자란 상황인데, 향후 우수 인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기술 연구·개발(R&D)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중장기적인 솔루션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내 엔지니어 모습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내 엔지니어 모습 [사진=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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