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아 옛날이여" 쇠락한 대학가 전통상권 신촌·이대...'임대 문의' 현수막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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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새롬 기자
입력 2024-02-06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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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찾은 서대문구 신촌 연세로 일대. 곳곳에 임대 문의 현수막을 내건 빈 건물이 즐비했다. [사진=박새롬 기자]

"장사가 안 되니 권리금도 없고, 임대료도 떨어졌어요. 경기도 안 좋은데 몇년째 죽은 상권에 누가 들어오려 하겠어요. 지금 신촌은 10~20년 전과는 완전히 딴판입니다." (신촌 연세로 한 공인중개사)

6일 찾은 서대문구 신촌 '연세로'는 아직 차가운 날씨만큼이나 썰렁한 분위기를 풍겼다. 신촌역 2번 출구부터 연세대까지 이어지는 연세로를 걷다 보면 상가건물 4~5곳 중 1곳꼴로 빈 건물이 눈에 띌 정도였다. 유플렉스 건물과 광장이 있는 중심가 대로변에도 통째로 비어있는 4층짜리 건물들만 여러 곳이었다. 연세로를 오랫동안 지켜온 2번 출구 앞 투썸플레이스, 에뛰드하우스, 롯데리아 등도 철수하고 빈 건물로 남아있었다. 신촌역에서 이대역으로 향하는 대로변도 3~5층짜리 상가가 임대문의 현수막만 붙은 채 통째로 비어있었다. 

인근에서 30년째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 중인 고모씨는 "경기가 안 좋아 장사가 어렵다 보니 들어오려는 임차인들도 없고, 임대인들도 애매하게 월세 낮출 바엔 건물을 아예 비워두는 경우가 많다"며 "경기가 나아져도 몇년 새 상권 트렌드가 바뀌었는데 신촌상권은 이미 뒤처진 상태라 활성화되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신촌 일대 공인중개사들은 10여년 전 송도캠퍼스 신설 이후 조금씩 상권이 위축되기 시작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을 기점으로 방문객이 급감했다고 설명했다. 인근 공인중개사 A씨는 "대학 인프라만 믿고 안주하다가 몰락한 상권이 돼버렸다. 외부 수요를 끌어들일 만한 요소가 부족한 게 가장 큰 이유"라며 "홍대는 클럽, 포차 등으로 외국에서도 찾아오는 명소로 남았지만 신촌·이대는 젊은이들의 거리라는 정체성도 사라진 지 오래다. 그렇다고 신축으로 꾸며진 소규모 상가가 많은 합정·망원처럼 되기도 어렵다"고 전했다.

높은 임대료가 장기간 유지된 것도 상권이 몰락한 이유 중 하나다. 연세로 일대 대로변 상가 1층 10평 기준 월세는 700만~800만원 수준이다. 한 공인중개사는 "안 내리고 버티던 건물주들도 최근에는 월세 10~20% 깎아준다고 나섰지만, 그 가격도 지금 상황에 비해선 턱없이 높은 수준"이라며 "결국 법인 외에 개인은 못 버티고 나가고, 새로 들어오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이곳 10평 기준 3억원에 달하던 권리금도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임차인을 찾기는 하늘에 별따기"라고 덧붙였다. 
 
사진박새롬 기자
6일 찾은 서대문구 신촌 연세로 일대. 곳곳에 임대문의 현수막을 내건 빈 건물이 즐비했다. [사진=박새롬 기자]

이화여대 앞 상권도 마찬가지다. 이대역 2·3번 출구부터 학교 앞까지 이어지는 거리는 한때 화장품 가게와 미용실, 카페, 옷가게 등이 즐비했으나 지금은 간판이 떼진 채 방치된 건물이 다수 눈에 띄었다. 이대 인근 공인중개사는 "통째로 빈 건물들 중에서는 상가 임대료 수익이 안 나와서 팔거나, 오피스텔을 지으려 철거한 곳들이 대부분"이라며 "관광객도 줄고 온라인 위주로 소비패턴이 바뀌며 특히 화장품 가게들이 많이 사라졌다. 임대료는 코로나19 이전보다 40% 정도 내렸지만 임차 문의는 아직 드물다"고 전했다.

연세대 졸업생인 서대문구 주민 김모씨(28)는 "학교 다닐 때 자리를 지키던 대규모 매장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걸 볼 때마다 안타깝다"며 "신촌에는 점점 갈 만한 곳이 사라지다 보니 합정·망원이나 아예 딴 지역을 주로 찾게 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의 4분기 중대형,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각각 8.4%, 5.8%에 이르러 코로나19 시기보다는 다소 나아졌지만, 더 악화한 상권도 적지 않다. 특히 신촌·이대 지역은 지난해 3~4분기 소규모 상가 공실률이 22%, 18.3%로 코로나19 시기인 2021년 4분기(16.2%)보다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서울 상권 평균(8.4%) 공실률의 2~3배이자, 서울 내 상권 중 공실률이 가장 높은 수준이다. 2015년 2분기부터 2017년 4분기까지 11분기 연속 공실률 0%를 기록했던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것으로, 최근 변화하는 상권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쇠퇴하는 모습이다.

신촌·이대뿐 아니라 대학가 상권 중에서도 건대입구(9.3%), 성신여대(10.0%) 등의 경우 중대형 상가 공실률이 서울 평균(8.4%)보다 높다. 지방에서는 더욱 심각한 지역이 많다. 광주 전남대는 중대형·소규모 상가 공실률이 각각 48.7%와 26.9%로 다수의 상가가 비어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경북 영주중앙(38.8%/13.8%), 울산대(32.1%/14.5%), 울산농소(7%/34%), 경남 양산구도심(31.2%/12.7%) 등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서울 중심상권인 시청·을지로도 지난해 4분기 중대형 상가 공실률이 각각 19.9%, 21.2%로 서울 평균(8.4%)의 2배를 넘는다. 명동이 코로나19 이후 공실률을 서서히 회복하는 추세인 것과 달리, 시청·을지로는 2022년 4분기(17.5%, 15.15)보다 더 악화됐다. 시청 일대 공인중개사는 "요즘 10곳 중에 2곳 정도는 권리금 없이 나온다. 중심상권이지만 입지에 따라 분위기는 천차만별"이라며 "오피스가 밀집한 시청보다 을지로가 공실이 조금 더 늘어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편 쇠락한 전통상권과 달리 사람이 몰리며 빈 건물을 찾아보기 힘든 상권도 있다. 마포구 망원·연남 등은 인근 신촌·이대 수요를 흡수해 활기가 돌고 있다. 망원역 상권은 2022년 2분기부터 0%대(소규모 상가 기준) 공실률을 지속하고 있다. 동교·연남은 2021년 4분기부터 공실률이 0~2%대로 집계된다. 2022년 4분기까지만 해도 19.3%, 14.5%로 공실률이 높던 강남 도산대로, 청담도 지난해부터는 1~2분기부터는 0%대를 이어오고 있다. 
 
사진박새롬 기자
6일 찾은 서대문구 이화여대권. 화장품 가게, 미용실, 카페 등이 사라진 채 빈 상가들이 방치돼 있다. [사진=박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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