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뼈 깎기'부터 백기투항까지…태영건설 워크아웃 타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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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기자
입력 2024-01-0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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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건설
[사진=연합뉴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 시한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위기설은 1년 반이 넘도록 지속됐으나 태영건설에서 워크아웃을 신청한 뒤로 시장 상황은 하루하루 급변했다. 무엇보다 PF 부실 우려를 시작으로 금융 시스템 리스크가 시작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지만, 태영건설이 채권단·정부·여론의 전방위적인 압박에 추가 자력구제안을 내놓으면서 급한 불은 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결과가 나오기 전으로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 태영건설 워크아웃이 부채 위기의 시작일 수 있다. 오는 11일 채권단 협의회가 열리기 전까지 그간 태영건설의 위기 상황들을 되짚어본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PF연체…대형 건설사 워크아웃 '13년 만'
태영건설은 건축·토목·플랜트·주택·SOC 등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종합건설기업으로, 국내 시공능력평가 16위의 중견 건설사다. 대표 아파트 브랜드인 '데시앙'이 있지만, 태영건설의 주력 사업은 주택이 아닌 대규모 복합개발 사업에 있다. 이런 개발사업은 시행과 시공을 함께 진행하는 구조 탓에 주로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다.

태영건설을 향한 의심의 눈초리가 커지기 시작한 건 지난 2022년 하반기부터다. 당시 부동산 시장은 고점 인식과 함께 금리인상기에 접어들면서 빠르게 침체하기 시작했다. 특히 같은 해 9월 레고렌드발(發) '돈맥경화'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대출을 내어 준 금융권도 문제가 컸지만, 부채 비율이 높은 건설사들은 당장 부동산·건설 경기 하락에 직격탄을 맞았다.

이와 함께 부동산 PF에 대한 우려가 커지기 시작했는데, 태영건설의 PF우발채무도 함께 수면 위로 드러났다. 한국기업평가(KR)는 주요 건설사 중 PF 우발채무 우려가 큰 곳으로 태영건설 등 5곳을 꼽았다. KR은 태영건설에 대해 "우발채무 규모가 롯데건설 다음으로 크고, 미착공·비주거용 건물 사업장도 다수 존재한다"고 진단했다.

당시 태영건설의 부채비율은 PF우발채무를 포함해 498.8%에 달했다. 자산보다 부채가 5배 더 많았다는 의미다. 유동성 비율도 100%를 하회했는데, 이 역시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보다 부채가 더욱 많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부정적 지표 속에 태영건설은 같은 해 상반기 중 7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등 '어닝쇼크'를 보이기도 했다.

이후 태영건설은 1년 내내 자금난에 시달렸다. 업계에선 태영건설이 불어난 대출을 감당할 수 없다면서 금융당국에 'SOS'를 요청했고, 정부가 대책 마련을 고심하고 있다는 소문도 파다했다. 태영건설은 지난해 9월 이런 소문에 대해 "근거 없는 악성루머"라며 발끈했다. 태영건설은 4000억원 이상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고, 악성 루머에 대해서는 엄정히 대처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티와이홀딩스의 계열사인 태영인더스트리를 매각해 유동성을 지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달 15일 태영건설이 하청업체에 지급하기로 한 현금 대신 어음을 지급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부도설을 감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영업 수익으로 이자비용도 내지 못했다. 금융당국에선 사업적·재무적 문제가 있는 건설·금융회사는 시장 원칙에 따라 정리가 필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신용평가사들은 잇따라 태영건설의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태영건설은 같은 달 27일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에 대해 결정된 바 없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태영건설은 하루 뒤 워크아웃 신청을 공식 확인했다. 시공능력순위 30위권 내 대형 건설사가 워크아웃을 신청한 것은 2013년 쌍용건설 이후 처음이다.
 
눈물 호소에도 여론·채권단 '냉랭'…"뼈 깎는 노력 수반해야"
워크아웃 이후 상황은 더욱 긴박하게 흘렀다. 올해에도 분양시장 침체 우려가 큰 상황에서 약 3조2000억원 수준의 부동산 PF대출을 보유하고 있는 태영건설이 무너진다면 PF 부실에 따른 건설·금융권의 위기가 연쇄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이른바 '워크아웃 도미노'가 현실화한다면 그간 '빚폭탄 돌리기'를 이어온 한국 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태영건설 PF 차입금과 보증채무 규모는 10조원에 달했고, 이는 앞서 예상된 4조원 안팎의 위험노출액(익스포저) 규모를 훌쩍 웃돌았다. 채권단도 600여곳에 이른다. 더욱이 자금력이 상대적으로 열약한 제2금융권 리스크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컸다. 저축은행 등 2금융은 공사 시작 전 사업 초기 대출을 뜻하는 브리지론 비율이 높다. 브리지론은 6개월에서 1년 만기 고금리로 대출이 진행돼 리스크가 크다.

이에 금융당국은 워크아웃 직후 곧장 관계부처 합동 대응회의를 열고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90대 노장의 윤세영 태영그룹 창업회장은 직접 채권단 설명회에 참석해 "사력을 다해 태영건설을 살리겠다"며 눈물로 호소했다.

그러나 태영건설이 내놓은 자구안에 대한 반응은 냉랭했다. 태영건설이 워크아웃 신청과 함께 제시한 자구안(△태영인더스트리 매각대금 1549억원 태영건설에 납입 △에코비트 매각 및 매각대금 태영건설 지원 △블루원 지분담보 제공·매각 추진 △평택싸이로 담보제공)으로는 부족하다는 평가였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채권단 입장에서 보면 (태영건설이) 자기 뼈를 깎아야 하는데 남의 뼈를 깎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것"이라면서 강하게 비판했다.

더군다나 그룹 내 핵심 계열사인 SBS 지분 매각이나 지분 담보 계획은 자구안에서 제외됐다. 태영 측은 이미 에코비트 지분을 담보로 4000억원을 융통한 데다, 블루원은 가치는 1500억원에 그쳤다. 태영인더스트리를 제외하면 2000억원 수준의 추가 자금 확보에 그칠 것이란 해석이었다. 특히 윤 회장이 지난 5일 태영인더스트리 매각대금 416억원을 태영건설에 직접 지원하지 않고, 티와이홀딩스의 영구채를 매입해 논란이 됐다. 태영 측은 지주사인 티와이홀딩스를 지원하는 것이 태영건설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연대채무 상환·자본 확충을 통해 SBS를 지키려는 의혹에 더욱 큰 지탄을 받았다.

이렇듯 여론과 채권단의 반발이 거세고, 한덕수 국무총리에 이어 대통령실까지 나서서 경고하자 태영건설은 결국 꼬리를 내렸다. 태영건설은 지난 8일 오전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대금의 잔여분 890억원을 태영건설에 입금하면서 자구안 일부를 이행했고, 나머지 자구안 역시 이사회 의결을 통해 이행 확약하겠다는 의사를 채권단에 전달했다.

그리고 이날 윤 회장은 티와이홀딩스와 SBS 지분의 조건부 담보 제공을 공언했다. 윤 회장은 9일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자구 노력이) 부족하다면 티와이홀딩스와 SBS 주식 전체를 담보로 내놓을 각오가 돼 있다"며 "자구 계획에 대해서는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충분하게 협의가 이뤄진 상태"라고 설명했다.
 
돌고 돌아 워크아웃 개시 가닥…이제는 '반대매수청구' 관건
백기를 든 태영건설에 채권단도 화답하면서 태영건설 워크아웃이 개시될 것이란 관측이 커지고 있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산은)은 이날 '태영그룹 자구계획 발표에 대한 채권자 입장문'을 통해 "채권단은 태영그룹이 발표한 추가 자구계획과 계열주의 책임이행 의지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추가 자구안 발표는 태영그룹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첫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채권단 내에서는 여전히 태영 측에 대한 불신이 남아있다. 워크아웃을 개시하려면 채권단의 75%가 찬성해야 하는데, 산은을 포함한 은행권의 태영건설 채권 비중은 33% 수준에 그친다. 다른 업권에서 최소 42%를 끌어내야 워크아웃을 시작할 수 있다. 금융당국에서 드라이브를 걸더라도 채권단 전체를 설득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다.

만약 워크아웃 이탈 기관이 나온다면 '워크아웃 반대매수청구권'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반대매수청구권은 반대 채권자가 자신이 보유한 채권액을 찬성 채권자에게 매수해 달라고 요구하는 권리다. 통상 반대매수청구권 요청이 있으면 워크아웃에 찬성한 채권자가 반대 채권자에게 청산가치에 준하는 채권액을 지급해 채권을 회수한다.

이때 태영건설이 반대표 채무를 떠안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워크아웃은 순탄히 진행될 수 있다. 만약 태영이 이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찬성 측이 반대 측 채권을 매수해야 한다. 찬성 측 채권자들은 부담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과거 워크아웃 사례에서도 보면 채권단이 반대매수청구권 지분 인수 문제로 갈등을 빚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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