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교 칼럼] IPEF 협상, 美대선이 변수 …우리의 전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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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교 GS J 인스티튜트 원장
입력 2023-11-3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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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교 GS&J 인스티튜드 원장]


 
이번 달 중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실질 타결이 예상되었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협상이 공급망 분야 서명을 포함해 청정경제, 공정경제 등 3개 분야만 실질 타결하며 마무리되었다. 참여국의 가장 큰 관심사였던 무역 분야는 당초 예상과 달리 별다른 성과 없이 향후 계속 협상해 나가기로 했다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한 이후 미국의 아시아 재진입이라는 거창한 의미를 부여했던 2년 전 IPEF 출범 당시와 비교하면 이번 협상 결과는 어쩐지 초라해 보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공급망에서 위기 대응 시스템을 구축하고 핵심 광물에 대한 대화체를 만드는 등 나름 성과도 있다. 그러나 핵심인 무역은 여전히 진행형이고, 어쩌면 아무런 성과 없이 그대로 사장될 수도 있는 상황임은 부인할 수 없다.
 
돌이켜보면 IPEF는 출범 당시부터 근본적인 우려가 있었다.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고자 지정학적으로 아시아 개도국들의 IPEF 참여가 불가피했으나 이는 동시에 IPEF 참여국 간 이질성을 확대하여 협상 타결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즉, 각종 제도의 투명성 제고와 높은 수준의 노동·환경 기준 적용을 통해 질적 시장 접근을 추구했던 미국의 기대를 과연 아시아 개도국들이 얼마나 수용할 수 있을지 처음부터 의문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더욱이 양적 시장 접근 논의가 빠진 상황에서 참여 개도국이 미국 측 제안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있어야 하는데 그 부분이 명확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IPEF 협상 타결의 관건은 참여 개도국의 핵심 관심사인 청정 기술이나 공급망, 개발 등에서 미국이 얼마나 많은 지원과 투자를 할 것인지에 달려 있었다. 그런데 중국과 경쟁하느라 자국 내 대규모 투자 유인도 바쁜 상황에서 과연 미국이 IPEF 개도국을 위해 그만한 돈을 투자할지 의문이었다. 이런 이유로 미국이 호주, 일본, 우리나라 등을 다독여 IPEF 역내 청정에너지 분야 투자 프로그램을 만든 것으로 보이지만 이것으로 참여 개도국을 만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결국 참여 개도국에 대한 보상이 확실하지 않은 가운데 APEC 정상회의가 다가오자 미국은 무역 분야에서 그동안 주장해 온 요구 수준을 대폭 완화해 조기 합의 도출이라는 성과를 추구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미국의 태도 변화는 비단 IPEF 협상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10월 WTO의 복수국 간 전자상거래 협상에서도 미국은 지금까지 줄곧 주장해 온 국경 간 데이터 자유 이동 주장과 서버 현지화, 소스 코드 공개에 대한 반대를 철회하여 협상 참가국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이에 따라 전자상거래 복수국 간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이 높아지긴 했으나 그때까지 미국의 입장을 지지해 왔던 일본과 싱가포르 등 협상 대표가 협상장에서 얼마나 당황했을지 눈에 선하다. WTO 분쟁해결제도 개혁 논의에서도 미국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미국은 종전과 달리 엄격한 사법적인 판단을 구하는 대신 정치력을 행사해 어느 정도 융통성을 기대할 수 있는 중재나 조정 등을 선호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변화는 지난 8월까지만 해도 전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미국의 이러한 태도 변화로 IPEF 무역 협상도 타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지난 10월만 하더라도 이번 11월 APEC 정상회의에서 IPEF의 실질적 타결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실제 협상에서는 또다시 반전이 일어난 듯 보인다. 외신에 따르면 노동과 환경에서 참가국 간 의견 차가 커 합의 도출에 실패하였다고 한다. 짐작하건대 미국이 다시 노동과 환경에서 높은 기준을 주장해 아시아 개도국과 의견 차가 좁혀지지 않아 결국 협상이 결렬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노동과 환경에서 다시 높은 기준을 요구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년 대선과 최근 대선 여론조사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열세가 영향을 주지 않았는지 추측해 본다. 바이든 행정부의 정치 기반은 노동자그룹이자 친환경그룹이다. 이에 따라 통상정책도 노동자 중심의 통상정책을 표방해 왔으며, 기후변화 대응 친환경 정책도 중점을 두고 추진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성과 도출에 방점을 찍어 IPEF 협상을 추진하다가(성과 도출도 대선에 유리한 점이다) 대선 전망이 나쁘게 나오자 기존 지지 기반의 공고가 바이든 대통령 재선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을 바꾼 것이 혹 IPEF 협상에서 미국의 태도를 급선회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국내 정치가 대외 통상에 영향을 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미국이 자기희생을 토대로 리더십을 보이면서 IPEF 조기 타결을 추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미국 태도가 이렇듯 상황에 따라 바뀌는 불확실성이 커지면 우리의 협상 대응도 그만큼 어려워진다. 당장 IPEF만 해도 협상을 계속하기로 했다지만 대선이 있는 내년에 IPEF 무역 협상의 추동력이 계속 유지될지 의문이다. 더욱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이라도 된다면 IPEF는 TPP와 같은 운명을 밟을 수도 있다. 따라서 참가국들은 미국 대선 결과를 기다릴 것이며, 협상은 좀처럼 진전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전후좌우를 살피며 신중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위험을 관리하는 것이다. 이 기회에 국내 여건을 되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서진교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농업경제학과 △미국 메릴랜드대 자원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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