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의시대] 고금리 그늘 속 부자는 재산 쌓고, 서민은 빚 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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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기자
입력 2023-11-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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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 대유행) 이후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예상할 수 없었던 거대한 외부 충격이 발생하면서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했던 고금리 시대가 길어지고 있다. 이런 충격에 대응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 자산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대응 여력이 부족한 취약계층을 지원하기 위해 연말 '서민금융 지원'을 강조하고 나섰지만, 오래도록 쌓인 한국의 자산 불평등 상황을 억제하기 쉽지 않은 형국이다.
 
연일 고공행진 뛰는 금리에도···'자산가'를 꿈꾸는 사람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5대(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시중은행의 지난달 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686조119억원으로 집계됐는데, 직전월인 9월말(682조3294억원) 대비 한달 새 3조6825억원(0.5%)이 증가했다. 올해 월간 증가폭으로는 가장 컸다. 이때 주택담보대출 증가폭은 3조3676억원을 기록하면서 가계대출 오름세의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했다.

업계는 중장기 만기 주담대를 중심으로 집을 사려는 수요가 커졌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정부가 불어난 가계부채를 억제하기 위해 50년 만기 주담대는 물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예외로 뒀던 특례보금자리론 등의 상품을 제한할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막차 수요가 몰렸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특히 이런 수요의 중심에는 '영끌'(영혼을 끌어모은 투자), '빚투'(빚내서 투자) 등과 같은 투자 행태로 20·30세대 비중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의아한 점은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진 금리 수준에 있다. 올해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지난 2008년 11월(4%) 이후 약 1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까지 치솟았다. 높아진 기준금리에 따라 5대 시중은행의 주담대 변동금리(신규코픽스 기준)는 연 7%를 웃돌았다. 예컨대 1억원을 빌리면 1년 새 이자로만 700만원씩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절대적으로 높은 이자 상환 부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집을 사기 위해 몰려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한국 경제의 부(富)가 부동산에 쏠려 있고, 부동산을 중심으로 계층 간 자산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어서다. 지난해 국민대차대조표를 보면 한국 전체 가구 자산 중에서 주택 또는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76%였다. 이는 사실상 부동산에 모든 자산이 집중돼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집값 하락은 곧 가구 자산의 하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한국 사회 구성원 모두가 집값 상승에 '베팅'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더욱이 가구 분위별 특징으로 보면 자산 고분위에 위치할수록 거주주택, 거주주택 이외 부동산 등 실물자산이 더욱 높게 나타났다. 실제 최근 5년(2017~2021년) 분위별 자산 구성비를 보면 자산 1분위(자산 하위 20%)의 부동산 비중은 15.3%에 머무른 데 반해, 5분위(자산 상위 20%)의 부동산 비중은 79.2%에 달했다. 반대로 금융자산은 1분위가 평균 74.2%를 보유했고, 5분위는 평균 19.6%에 불과했다.
 
◇ 자산·소득 불평등 심화 계속···'서민금융 지원'도 "글쎄"
더욱 큰 문제는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데 더해, 고금리 충격 여파로 분위별 자산 격차도 빠르게 벌어지고 있다.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 자산 1분위는 평균 순자산액이 1555만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보다 5.1%(84만원) 감소했다. 순자산액은 자산에서 부채를 뺀 수치다. 1분위 가구의 자산은 2584만원으로 전년보다 (0.5%)13만원 줄어든 데 반해, 부채는 1년 전보다 71만원 늘어난 1029만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 순자산액이 23.2% 성장했던 분위기와는 180도 다른 결과다.

자산이 줄어든 가운데 빚 부담은 더욱 커졌다. 자산 1분위의 원리금 상환액은 334만원으로 전년 대비 11.1%(34만원) 증가했다. 통계를 정리해보면 지난해 자산 하위 20%의 경우 자산은 줄고 부채는 늘었다. 여기에 늘어난 부채만큼 갚아야 할 빚도 커졌다.

반대로 자산 상위 20%(자산 5분위)는 여건이 개선됐다. 먼저 자산 5분위의 순자산액은 13억9259만원으로 1년 전보다 10.3%(1억3033만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자산(16억5457만원)은 1억3769만원(9.1%) 증가했는데, 부채는 2억6198만원으로 1년 전보다 2.9%(736만원) 늘었다. 동시에 이들의 원리금상환액은 지난해 2300만원을 기록해 1년 전보다 13.1%(345만원) 감소했다. 자산 5분위 계층은 1년 전보다 자산이 큰 폭으로 성장했고, 빚은 소폭 늘어나는 것에 그쳤다. 갚는 빚도 줄었다.

이는 고금리 상황에 자산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것으로 풀이된다. 예를 들어 금리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발생하는 이자소득이 자산 상위 20%에게는 플러스(+)가 되지만, 하위 20%에게는 마이너스(-)가 된다. 쉽게 말해 부자들은 보유한 자산이 많아 높은 금리를 이용해 이자소득을 챙길 수 있다. 반대로 자산 대비 부채 비중이 큰 서민들의 경우 이자 상환 부담이 커지면서 자산 증식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항용 한양대 금융경제학부 교수는 "결국 자산이 있는 사람과 빚이 있는 사람을 비교해보면 금리가 높으면 높을수록 자산이 있는 쪽은 이자소득이, 빚이 있는 쪽은 이자상환이 더욱 크게 불어나는 구조"라고 말했다.

'소득 양극화'도 마찬가지다. 올해 1분기 기준 소득 5분위 가구 월평균 소득은 1148만3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 증가했다. 같은 기간 소득 1분위 가구 월평균 소득은 107만6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2% 늘었다. 5분위 증가율이 1분위보다 두 배 가까이 컸다. 처분가능소득으로 보면 간극은 더욱 커진다. 1분위 가구 가처분소득은 85만8000원으로 1년 전보다 1.3%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5분위 가구 가처분소득은 886만9000원으로 4.7% 증가했다.

아울러 저분위에 위치한 가계는 가구 소득의 몇 배에 달하는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기준 금융부채를 보유한 64세 이하 가구 중 금융부채가 소득의 3배 이상인 과다 차입 가구는 17.4%에 달했다. 빚이 있는 가구 중 10.3%는 부채가 소득의 4배 이상이었고, 5배 이상인 가구도 6.7%로 집계됐다.

이렇듯 '빚투족' 부담은 가중되고 있지만 은행 등 제도권 금융 문턱은 갈수록 높아지면서 제도권 밖으로 밀려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실제 신용점수 500점 이하의 저신용자 고객은 현재 모든 카드사에서 카드론 신규 대출을 받을 수 없다. 저신용자를 수용했던 저축은행, 대부업체들 역시 고금리 여파로 원가 부담이 커지면서 영업창구의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상황이 이렇자 정부와 금융당국은 연말 '서민금융 지원'이라는 칼을 빼들었다. 고금리 시대 속 자산 불평등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금융회사 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높아진 이자 부담을 직접 낮추기 위해 체감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고금리 상황이 지속하는 만큼, 당장 상황이 뒤집힐 것으로 기대하기도 어렵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가 대출 오름세를 막기 위해 시중은행들을 압박하고 있는 만큼, 은행 입장에선 대출을 조이기 위해 금리를 올릴 요인도 크다"면서 "연말 은행채 만기가 대규모로 찾아오는 만큼, 시장 내 금리를 더욱 밀어올릴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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