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렬의 제왕학] '상대의 강함을 역이용 하라" …푸틴의 '유도(柔道)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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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렬 논설고문
입력 2023-11-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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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렬 논설고문
[박종렬 논설고문]



“50년 전 레닌그라드 거리는 나에게 한 가지 규칙을 가르쳐줬습니다. 만약 싸움을 피할 수 없다면 내가 먼저 주먹을 날려야 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푸틴은 체첸 반군 학살을 변호할 때도 ‘그들을 쓸어버리겠다.’는 식으로 길거리 싸움꾼이 구사할 법한 언어를 사용했다. 지지자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자신의 ‘마초 이미지 메이킹’을 통해 팬덤을 만들어 집권 24년째 60%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72세가 되는 내년까지 총리와 대통령으로 24년 대권을 장악한 푸틴은 29년여 소비에트연방을 통치한 이오시프 스탈린 이후 최장기 집권자다. 내년 3월 17일로 예정된 대선에서 당선되면 그는 84세까지 추가 12년 장기 집권이 가능해 총리 기간 제외하고 ‘33년 대통령’으로 거의 ‘종신 차르’로 군림하게 된다.

1999년 총리 취임 이래 대통령 권한대행을 거쳐 2000년 처음 대통령에 당선된 뒤 3선 연임 금지에 막혀 2008년 대학 후배인 최측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에게 대통령직을 넘겨주고 총리 직책에서 상왕으로 군림했다. 총리 당시 2008년 헌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늘렸다. 2012~2018년 연임한 그는 2020년 또 한 차례 헌법을 고쳐 임기를 ‘중임 2회’로 제한했다. 개정된 조항은 차기 대통령부터 적용함으로써 현직은 이전 조항을 따른다는 특별조항으로 차기 대선 가도를 닦아 놨다.

5개월여 남은 2024년 3월 대선 캠페인 준비에 착수한 푸틴에게 교착 상태에 빠진 ‘우크라이나 전쟁’은 최대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등 서방세계 시각은 장기 집권 독재자, 정적(政敵) 살해자, (우크라이나) 영토 침략자 등 부정적 시각이 지배적이지만 현재 러시아 국민 약 60% 이상이 푸틴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어 선거는 절차상 요식행위라는 보도다.

‘이미지 정치’를 적극 활용한 푸틴은 선거용 이미지 제고를 위해 2000년에는 전투기를 타고 체첸으로 날아갔다. 소련 페레스트로이카 시기인 1989년 5월 31일 비공식 단체로 시작한 러시아 오토바이 라이더들인 ‘밤의 늑대들’의 2014년 크림반도 점령 축하 축제에도 참석해 러시아인의 애국심을 자극했다. 전격적인 우크라이나 침공도 내년 대선을 위한 떡밥으로 조기 승리를 통해 ‘밴드왜건 효과’를 노린 ‘승자 이미지’를 전이(轉移)시키는 캠페인의 일환이었으나 지지부진한 전황(戰況)으로 차질을 빚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는 해킹에 안전하고 절차를 간소화해 유권자들도 투표하기 편해진다는 이유로 블록체인 투표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는 선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옛 소련이 붕괴된 후 10년 가까이 체제 전환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수반되었던 1990년대 혼란과 경기 쇠퇴는 러시아를 초강대국 위상에서 개발도상국 수준으로 추락시켰다. 이에 푸틴은 2000년 집권과 동시에 구악 재벌들을 몰아내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석유 등 자원을 통해 경제를 활성화하고 파편화된 사회를 통합해 국가 정체성 확립에 나섰다. 동시에 러시아의 추락한 국제적 위상 복원을 위해 전격적으로 국가 혁신 작업을 실행해 큰 지지를 얻었다. 그동안 늙고 무기력한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들과 병들고 노쇠한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에 지친 러시아 국민에게 젊고 건강한 40대 지도자 푸틴은 새로운 희망의 아이콘으로 국민을 열광시켰다.
 
부국강병 정책 추진으로 경제성장
 
러시아 사람들에게 푸틴은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운 ‘영웅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1990년대는 소련이 해체되고 급진 개혁파인 옐친이 이끈 극단적인 혼란의 시대였다. 1991년 러시아 초대 대통령에 오른 옐친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도입해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던 러시아 경제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이었다.
당시 물품 가격과 생산 자유화 정책이 시행되자 모든 물가가 미친 듯이 뛰어오른 ‘초(超)인플레이션’이 벌어졌다. 러시아인들의 예금은 휴지조각이 돼 버렸다. 시장경제에 적응하지 못한 국영기업들은 잇따라 도산했고 덩달아 실업률도 치솟았다. 살아남은 에너지 관련 산업들은 옐친 측근들과 결탁한 ‘올리가르히’라 불리던 신흥 재벌들 손으로 넘어갔다. 신흥 재벌들의 부정부패는 더욱 극성을 부려 국영기업을 마구잡이로 민영화했고 그 과정에서 알짜 기업들이 속속 서방 진영으로 팔려나갔다. 급기야 1998년 외환위기를 맞아 모라토리엄(채무지급유예)을 선언함으로써 러시아는 ‘국가부도’에 처했다.
1990년 러시아 1인당 GDP는 약 5300달러 수준이었다. 하지만 옐친 임기 말인 1998년에는 1600달러 수준으로 추락했다. 빈곤층이 무려 90%에 달했고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치안도 극도로 불안해지고 살인 범죄가 속출했다. 영화를 보거나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도, 버스를 타고 거리를 걷는 것도 모두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불안한 일상이었다. 이른바 러시아 마피아들이 지하 경제를 장악하면서 이들과 결탁하지 않고선 장사하기도 쉽지 않았다.
지난 세기 공산 진영 패권국으로서 미국과 경쟁하며 냉전 시대를 이끈 러시아 인구는 미국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GDP도 미국 대비 10% 수준으로 떨어지는 등 러시아는 삼류 국가로 전락했다.
러시아 혼란이 정점에 이르던 1999년 말 옐친이 사임하고 당시 총리였던 푸틴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으면서 러시아는 활로를 찾기 시작했다. 푸틴이 대통령에 오른 2000년부터 2008년까지 러시아 경제는 연평균 7%대 초고속 성장을 거듭했다. 절대 빈곤층 비율도 약 30%에서 14%로 줄었고 평균 임금은 2배로 상승했다. 대학 입학자가 50% 늘었고 청년 실업률은 4분의 1로 줄었다. 당연히 젊은 세대가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다. ​복지가 늘면서 출산율과 평균수명이 대폭 높아지고 대신 범죄율과 자살률은 대폭 감소했다. 거리에는 카페들이 다시 들어서기 시작했고, 백화점에서 마음대로 물건도 살 수 있게 되었으며, 원하면 해외여행도 가능해졌다.
이렇듯 국가 이미지 제고는 실제적인 경제 발전의 수치로 뒷받침되면서 일부 정치적 반대 세력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푸틴의 인기는 고공 행진을 해온 것이​다. 푸틴은 취임 이후 줄곧 60% 이상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2014년 크림반도 병합을 통해 러시아인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당시 푸틴 지지율은 무려 87%에 달했다. 경기 침체와 연금 개혁 등 부정적 요인들로 말미암아 현재는 60%에 다소 못 미치는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차르 꿈꾸는 러시아 팽창주의자 푸틴의 야망
 
차르(tsar)를 꿈꾸는 러시아 팽창주의자 푸틴의 야망은 어디까지일까? 러시아 남서부 영토 분쟁, 즉 체첸전쟁을 종식한 그는 2014년 3월 크림반도를 군사력으로 합병해 영토 확장을 이뤘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러시아 국경까지 확장된 것에 분개한 그는 그동안의 치욕을 극복하고 러시아를 다시 ‘강력한 나라’로 만들려는 의도를 공공연히 드러냈다. 크림반도 병합을 통해 영토 문제에서는 추호의 양보도 없다는 강한 면모를 보여주자 푸틴의 인기는 단박에 20%포인트 상승했다.
러시아에서는 푸틴이 제정러시아 예카테리나 여제 이후 ‘영토를 확장한 왕’이라는 농담이 돌았다. 또 옐친 시대 총리였던 그가 1999년 12월 전격적으로 실시했던 체첸 진압 작전은 독립국이었던 체첸공화국을 러시아 품으로 다시 돌려놓았다. 1999년 8월 총리 임명 당시 푸틴 지지율은 2%에 불과했고, 9월 여론조사에서도 대통령 후보 1위는 프리마코프 전 총리, 2위는 루시코프 모스크바 시장, 3위는 주가노프 공산당 위원장이었다. 푸틴은 4위였다. 그런데 푸틴이 주도한 체첸전쟁 승리는 불과 반년 만에 무명의 정치인을 이듬해인 2000년 대통령 자리에 앉히는 마술을 부린 것이다.
KGB 출신 첩보원이자 평범한 관료였던 무명의 푸틴이 무너져 버린 러시아 제국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이다. 그는 최고 권력자가 되면서 부정부패의 온상이었던 ‘올리가르히’들을 탈세, 사기, 횡령 등 혐의로 대거 체포해 러시아 재벌을 바퀴벌레라 부르며 부정부패 집단을 숙청했다. 올리가르히(oligarch)는 과거 소비에트연방(USSR)에 속했던 러시아, 우크라이나에서 국유기업의 민영화 등 자본주의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신흥 재벌 집단을 말한다.
푸틴은 체제 변혁으로 혼란한 틈을 타 은밀하게 번성한 이른바 러시아 마피아들을 대거 체포해 사회질서도 빠르게 잡아갔다. 국부 유출을 막기 위해 국유기업 민영화를 금지했고 최대 산업인 석유와 가스를 다시 국유화했다.​ 이후 석유 가격이 폭등하자 국유화한 석유·가스 기업 덕에 국가 재정이 튼실해져 체첸과 치른 2차 전쟁에서 승리했고 추가적인 연방 해체를 막을 수 있게 되었다.
소련 비밀경찰인 KGB 출신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는 KGB 동료들을 크렘린 대통령궁, 정부, 언론, 재계 등에 배치했다. 푸틴은 FSB와 연방경호국(FSO), 해외정보국(SVR)을 국가보안부(MGB)로 통합시켜 과거 KGB를 완벽하게 부활시켰다. 정보 장악을 통한 철권통치로 새로운 권위주의 통치체제를 확립해 반대 세력과 민주 진영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언론을 장악했다. 국제적으로 고립이 심화하는 가운데서도 이미지 정치로 지지는 더 높아지는 기이한 권력이 되었다.
모스크바 정치 분석가 니콜라이 페트로프는 “푸틴에게는 유도가 정치 철학”이라고 주장한다. 유도 검은 띠 소유자인 푸틴은 “상대 약점을 파악한 뒤 번개처럼 갑작스럽고 폭발적인 공격으로 균형을 잃게 만들어 상대가 자기 체중 때문에 스스로 쓰러지게” 하는 “상대 강점을 역이용”하는 유도술을 현실 정치에 원용하고 있다. 상대 체격과 체중을 역으로 이용해 무게중심을 흩트려 무너지게 한다는 원리다.
푸틴은 상대의 힘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역이용하는 유도의 원칙으로 러시아 고위 관리, 사업가, 기업들을 대상으로 가해진 서방 제재를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역이용하고 있다. 그는 서방의 제재를 계기로 국내에서 권력을 확고히 다지고 외부의 영향을 차단하는 통치술을 구사하고 있다. 크림공화국을 합병한 것은 푸틴이 현 세계를 체스판이 아니라 유도 도장의 매트로 생각하고 혼돈에 빠진 우크라이나의 약점과 우유부단함을 이용해 전격적으로 진격해 성공했다.
2000년 대련 상대와 공동으로 ‘유도: 역사, 이론, 실제(Judo: History, Theory, Practice)’를 집필한 푸틴의 유도 사범 아나톨리 라클린은 2007년 한 인터뷰에서 “푸틴은 겨루기할 때 상당히 예측 불가능했다. 그는 예상치 못한 공격으로 상대를 누른 적이 많았다”고 말했다. 유도 친구들이 내무부 등 정부 고위직을 차지하면서 러시아의 ‘유도 통치집단(judocracy)’으로 불리는 가운데 푸틴은 “양보는 승리하는 데 필요할 때만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크라이나에서 예상외로 고전하고 있는 푸틴은 자신보다 훨씬 강한 적들(미국, 중국, 유럽 등)을 상대할 수 있는 전술이 절실한 상황에 부닥쳤다. 유도에서처럼 그들이 스스로 에너지를 소진하게 하거나 그들의 강점에 노출되지 않고 그들을 꼼짝 못하게 누를 수 있는 위치로 그들을 유도하는 것이 푸틴의 전략이다. 그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도 유도 전술을 쓰고 있는 게 분명하다는 평가지만 미국 등 서방의 대응책도 만만치 않아 고전하고 있다.

“영웅 없는 시대보다 영웅을 요구하는 시대가 더욱 불행하다”
 
푸틴은 직접 전투기를 타고 군부대에 나타나는가 하면, 웃통을 벗고 호랑이나 곰 사냥을 하고, ​70이 가까운 나이에 얼음을 깨고 한겨울 수영을 즐기는 등 ‘상남자 이미지’를 연출했다. 여기에 외국 정상과 회담할 때마다 일부러 지각해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이런 행동은 회담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전술로, 2014년 메르켈 독일 총리는 4시간,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은 110분 기다리게 했다.
반대 사례도 있었다. 2018년 7월 트럼프는 약속 시각보다 30분 늦은 푸틴보다 20분 더 늦게 나타났고, 2019년 4월 북·러 회담에서 김정은은 30분 늦은 푸틴보다 30분 더 늦게 나타났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러시아인들에게는 당당하고 강력한 국가지도자 이미지로 비쳤다,
30년 결혼 생활 끝에 2013년 6월 6일 이혼한 전 부인 알렉산드로브나 류드밀라와 사이에 두 딸이 있다.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행정직에서 일하며 로큰롤 에어로빅 대회에서 활약한 바 있는 큰딸 카타리나(1985년생)와 둘째 딸인 내분비학 전문의 마리아(1986년생)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리듬체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알리나 카바예바는 현재 러시아 국회의원으로, 사실상 푸틴의 차기 아내로 거론되고 있다. 푸틴은 러시아 정교회 예배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등 독실한 신앙인 면모도 드러내고 있다. 특히 2022년 12월 연례 기자회견에서 그는 애국심을 주제로 연설했는데 ‘러시아의 국가 이념은 애국심’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애국심은 조국의 발전에 헌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영웅적인 과거를 고수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는 영웅적이고 성공적인 미래를 내다봐야 하며 이것이 바로 성공의 입장권이다. 현대 민주사회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이념은 애국심이다. 애국심은 반드시 탈(脫)정치화돼야 하고 러시아의 내적인 틀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애국심이야말로 가장 광범위하고 최고의 가치다.”
장기 집권을 넘어 종신 집권을 노리는, 그칠 줄 모르는 욕망의 화신 푸틴을 여전히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국민이 대다수인 러시아의 앞날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그리고 푸틴의 ‘영웅 신화’는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과거 나치 시대를 살았던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는 이른바 ‘영웅론’에 대해 이렇게 갈파했다.
 
“영웅 없는 시대는 불행하지만, 영웅을 요구하는 시대는 더욱 불행하다. 영웅을 요구하는 시대보다 영웅 없는 시대가 행복하다. 많은 국가는 영웅 없이도 잘살고 있다.”



 박종렬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철학과 ▷중앙대 정치학 박사 ▷동아방송·신동아 기자 ▷EBS 이사 ▷연합통신 이사 ▷언론중재위원 ▷가천대 신방과 명예교수 ▷가천대 CEO아카데미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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