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섭 칼럼] 세계 각축장된 아세안, 차별화 전략으로 끌어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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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섭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입력 2023-10-04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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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열강의 각축장, 아세안 10개국 위상 크게 격상

  • 다양성‧이중성‧복잡성 이해해야 성과 가능

주영섭 교수
[주영섭 교수]


 
대한민국은 구조적으로 경제의 해외 의존도가 높고 지정학적으로 세계 열강 속에서 국가 안보가 첨예하게 영향을 받고 있는 나라다. 날로 급변하는 세계 정세와 경제 환경 속에서  어느 때보다 현명한 글로벌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다.
 
최근 미‧중 패권경쟁이 격화되면서 싱가포르,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 10개국으로 이루어진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의 위상이 크게 격상되고 있다. 미‧중 패권경쟁이 무역 전쟁, 기술 전쟁과 함께 자원 전쟁으로 비화하면서 아세안의 전략적 중요성이 지정학적 차원을 넘어 무역, 자원 등 다방면으로 확대되고 있다. 9월 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하여 정상회담을 하면서 양국 관계를 기존의 ‘포괄적 동반자’에서 가장 높은 ‘포괄적·전략적 동반자’로 격상시키고 베트남 희토류 광산에 대한 투자 유치 강화 협정에도 서명했다. 중국이 전략 광물인 희토류의 수출 제한 조치 등 자원을 무기화하려는 전략에 대항하는 조처로 베트남을 중국 희토류의 대항마로 삼으려는 의도이다, 팜민찐 베트남 총리가 9월 중순 중국 난닝에서 열린 중‧아세안 엑스포 및 비즈니스‧투자 서밋에 참석하여 리창 중국 총리와 회담한 후 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과 회담하는 등 매우 이례적으로 광폭 행보를 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배터리 소재로 핵심 전략 광물인 니켈의 세계 최대 매장국이자 생산국인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중 간 치열한 니켈 확보 쟁탈전도 초미의 관심사다. 미·중 기술 및 산업 패권경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배터리 핵심 소재 확보 경쟁으로 인도네시아의 전략적 중요성은 급부상하고 있고 인도네시아도 이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이렇듯 미국과 중국이 서로 자기 우호 진영을 확대하여 세계 패권을 확보하려는 전략 차원에서 아세안에 대한 양국의 러브콜은 경쟁적으로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아세안 10개국은 미국과 중국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각자 자국의 실리적 이익을 추구하면서 아세안이라는 국가연합 체제를 통해 ‘따로 또 같이’라는 고도의 중립적이고 실용주의적인 대외관계를 구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아세안은 현재 중국, 미국과 함께 우리의 3대 수출 시장이자 경제 및 산업 파트너로서 그 전략적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으며 정치, 외교 등 지정학적 측면으로도 많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세안도 우리나라와 같이 미‧중 패권경쟁 사이에서 어느 한편에만 치우치기 어렵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면에서 한국과 아세안의 협력 및 공조 체제는 서로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는 지정학적 의미도 매우 크다. 우리나라의 미래가 한‧아세안 협력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그러한 면에서 작년 11월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개최된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발표한 한‧아세안 연대구상(Korea‧ASEAN Solidarity Initiative·KASI)은 경제, 문화, 사회 중심인 지난 정부의 신남방정책에 정치, 안보 협력을 보완한 진일보된 정책으로 우리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되었다. 다만, KASI가 우리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일환으로 발표되면서 아세안 주요국에서는 우리 정부의 의지와 진정성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아쉬움이 있다. KASI가 인도‧태평양 전략의 일부가 아닌 한국과 아세안의 중심성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격상되어 추진될 것이라는 확신을 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9월 초 자카르타에서 열린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2024년 한‧아세안 대화 관계 수립 35주년을 맞이하여 한‧아세안 관계를 동맹 관계 다음으로 높은 ‘포괄적·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할 것을 제안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한 조치다.
 
이제 실행이 중요하다. 한‧아세안 협력은 대외 관계는 공동 보조를 통한 협상력 강화, 대내적으로는 내정불간섭 및 경쟁 허용이라는 아세안의 매우 복합적이고 이질적인 ‘따로 또 같이’라는 특성을 잘 이해하고 대응해야 소기의 성과가 가능하다.
 
먼저 한‧아세안 협력은 타 지역과 다르게 아세안 대상의 다자 협력 관계와 아세안 10개 회원국과의 개별적 양자 협력관계의 조화롭고 전략적인 운영이 중요하다. 다자협력은 정치, 안보, 사회 분야, 양자 협력은 경제, 문화 분야를 주도하는 주도하는 측면이 있으나  어느 한쪽에 치우치면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 개별적 양자 협력은 여타 국가와의 협력과 다를 바 없으나 아세안과의 다자 협력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최고 의결기구인 아세안 정상회의 외에도 조정이사회, 장관급 회의, 고위급 회의(SOM), 의장국, 아세안 사무국, 싱크탱크, 현인그룹(EPG), 조정국 등 아세안의 복잡다단한 의사 결정 구조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인적 네트워크가 중요하다. 일본이 오랜 기간 ERIA(아세안‧동아시아 경제연구소)와 같은 싱크탱크를 통하여 아세안 사무국과 밀접한 관계를 구축해온 사례를 잘 참조할 필요가 있다. 아세안 전체 외에도 대륙권 및 해양권, 메콩유역권, 동아세안성장권, CMLV(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 등 국부적 다자 협력에도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정부의 범부처 대응이 필수적이다. 외교부만이 아니라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소벤처기업부, 농림축산식품부, 보건복지부, 국방부 등 사실상 전 부처가 한‧아세안 협력에 참여하게 되어 있어 각 부처 정책의 전략적 방향 및 세부 전략, 정책 우선순위 등을 조율하는 기능이 시급하다. 부처 간 협력 및 조율 기능의 미흡으로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현상은 속히 개선되어야 한다.
 
정부 정책의 고도화와 함께 민간 부문의 협력 확대가 중요하다. 미국, 중국, EU, 일본의 장기간에 걸친 아세안 시장 공략에 대응하는 우리만의 차별화된 한‧아세안 민간 협력 전략이 필요하다. 과거 세계 열강의 대아세안 전략은 아세안 국가들의 발전에 기여하기보다 풍부한 천연자원과 저렴한 인적 자원을 활용하여 자국 이익에 몰두해온 감이 있다. 우리나라는 이와는 차별화하여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단기간에 압축 성장한 경험과 공감을 살리고 아세안 국가들의 발전에 기여하는 진정성으로 아세안 정부와 국민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최근 K-팝, K-드라마 등 급상승하고 있는 한류의 인기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민간 부문 협력 확대를 위해서는 정부, 기관, 기업 등 3개 층(Layer) 협력 구조 구축이 효과적이다. 정부 간 협력에서는 우리 기업의 아세안 진출에 필요한 현지 파트너 매칭 등을 도울 수 있는 정부 간 협력 사무소 설치 등이 좋은 예다. 기관 간 협력에서는 코트라(KOTRA), 중진공 등 우리 관련 기관이 아세안 현지 기관과 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민간기업 간 협력에서는 자체 역량이 약한 중소기업 및 스타트업 기업과 현지 기업의 전략적 제휴, 합작기업 설립 등을 직간접으로 지원하는 체제가 필요하다. 아세안 국가들의 강점인 에너지, 해양 및 육지 자원, 생물 다양성, 젊은 혁신 수용성에 우리의 강점인 기술 및 혁신, 문화 및 소프트파워를 결합하면 최고의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호혜적 윈윈 파트너십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아세안의 미국, 중국, EU에 이은 세계 4위 경제권 비전 실현에 기여하면서 함께 동반 성장하고 세계를 주도하는 미래를 그려본다.



주영섭 필자 주요 이력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산업공학박사 △현대오토넷 대표이사 사장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중소기업청장 △한국디지털혁신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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