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수의 절차탁마] 걸으며 하나되고 또 다른 나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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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수 작가
입력 2023-09-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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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수 작가
[이두수 작가]



느림과 멈춤, 산업화시대를 거치면서 이런 말들은 근면이나 성실과는 상치되는 아주 게으른 언어가 되었다. 한류의 세계적 확산과 함께 수출된 우리말이 있다면 아마 ‘빨리빨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빨리빨리’가 문화로 정착하려면 그 저변에 ‘눈치’라고 하는 구성원들의 공동체 의식이 필요하다. 상대가 말하지 않아도 눈치껏 알아서 하는, 좋게 말하면 이것이 ‘정 문화’로 승화되지만, 구성원들이 눈치가 없으면 ‘빨리빨리’는 하나의 폭력언어가 된다. 특히 구성원들 간의 정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빨리빨리를 요구한다면 여러가지 문제점이 발생한다. 디지털 문화에선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는 라떼문화의 추억이 되고 마는 것이다.
사회는 아날로그를 넘어 디지털문화환경에서 초고속연결사회가 되면서 더 이상 ‘빨리빨리’ 라는 말이 필요 없게 되었다. 이제는 인간이 하는 것보다 기계가 하는 것이 더 정확해지는 시대가 된 것이다. 머지않아 사람이 운전하는 시대는 종식을 고할 것이다. 택시는 무인자율주행 택시가 될 것이고 사람이 운전하려고 하면 사회시스템이 오히려 더 불안해할지 모른다.
지금 우리는 인간은 무엇인지, 어떤 것이 인간미가 있다는 것인지 그 의미가 모호한 인간과 기계의 경계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인간, 너는 누구인가?”하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되돌아보면 인류는 걸음으로 새로운 문화와 문명을 만들어 왔다. 걸음은 두 다리와 직결되어 있으나 정신과도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루소의 말을 빌리면 정신이 작동하려면 내 몸 또한 움직이는 상태에 있어야 한다. 루소는 걷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 홀로 걷고 걸었던 그 여행만큼 생각을 많이 한 순간은 없었다. 또 그때만큼 내 실체에 대해 많이 깨닫고 활력이 넘쳤던 적이 없다. 말하자면 걸을 때만큼 내가 나다웠던 적은 없다.’
<걷기 예찬>을 쓴 다비드 르 브르통(David Le Breton)은 현대 사회의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주체의 위기, 즉 정체성의 위기로 예단하고,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사상적 대안을 제시했는데 그가 내놓은 21세기 최고의 화두가 바로 ‘걷기’다.
최근 걷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지만 지금도 걷기를 한다고 하면 “그건 출근하기 전 잠깐 공원을 걷는 것이지” 하거나, “그 시간에 골프를 하는 게 낫지 않냐, 같은 운동인데” 라거나 “바쁜데 자동차로 여행하는 게 더 낫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걷는다는 것은 단지 두 다리의 움직임만이 아니라 사색의 여행이라는 것을 걸어보면 안다.
브르통의 <걷기 예찬>에 따르면 “걷는다는 것은 세계를 온전하게 경험한다는 것이다.” 도보 여행은 인생의 맛을 충만하게 느끼는 경험이 된다. 걷기는 걷는 시간 속에 녹아 있는 모든 인생의 참맛을 느끼고
음미할 수 있는 절대적인 경험이라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 우리는 바쁜 일상 속에서 인생이 주는 맛을 모두 비껴간 채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어떤 욕망에 따라서 시간의 암흑 속을 떠돌고 있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인생이라고 느끼고 있는 모든 일상의 분주함은 우리의 본질적인 삶과는 거리가 먼 허구인지도 모른다. 

“도보여행자는 ‘만인에게 주어진 아름다움’을 찾아 떠나는 여행자다. 걷기는 자연이라는 넓은 도서관에 입실하는 것이다. 그 안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음미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걷기의 미학이다.”

요즘 해남 땅끝마을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걷기를 하고 있다. 9월 1일 시작해 33일간 매일 20킬로미터씩 600여 킬로미터를 걷는 것이다. 오늘 천안까지 왔다. 이 걷기의 이름이 “위대한 여정-코리안드림대행진”이다. 다가올 통일의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국민적인 참여와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걷기’ 캠페인을 시작했다. 내가 걷기를 한다고 하니 사람들은 나를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도 있고, 대단하다며 격려해 주는 사람도 있지만 아직까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지는 않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처럼 계속 걷다 보면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내 뒤로 길게 줄을 서서 걷고 있지 않을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통일된 한반도는 아주 먼 옛날 고조선을 건국할 때 홍익인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건국이념을 실현하는 나라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 뜻은 우리 역사를 관통하는 역사의 뜻이며 유훈이다. 미국의 건국정신을 아메리칸 드림이라 부르는 것처럼, 홍익인간의 정신을 실현해 나가는 것을 ‘코리안 드림’이라 불러보자. 이번에 한반도를 종주하면서 우리의 산하를 보며,역사유적지를 가보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체험하게 되는 것은 역시 우리 민족에 관통하는 것, 바로 이 홍익인간의 위대한 정신의 확인이었다.
걷는 데 힘이 되라고 어떤 사람들은 비가 세차게 내리는데 밭에 가서 참외를 따왔다. 어떤 이는 아이스를 박스째 사가지고 오셨다. 함께 하지 못하는 미안함, 하나라도 더 주지 못해서 안달하는 안타까움, 이런 기적 같은 만남이 매일 이어졌다.
이 코리안 드림 운동은 홍익인간 정신이 구현되는 새로운 문화, 문명을 이루어 내는 매우 인문학적인 운동이다. 그래서 걷기를 하는 것이다. 걷기를 통해 역사를 만나고, 또 다른 나를 만나고, 자연을 만나고 신을 만나는 동적이면서도 사색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오늘 공주에서 천안으로 이어지는 구간에 참여한 장남기 선생(기업자문 대표)에게 걷기에 참여하게 된 동기를 물었다. “걷기란 나에게 있어 단절이고 대화다. 아무래도 사업가로서 해야 할 여러가지 일을 놓고 여기에 참여하려면 결단해야 한다. 일이라는 한쪽을 잘라내야 하는 것이고 대신 다른 한쪽과 이어주는 것이 바로 자연과의 대화다. 머리가 복잡하면 단절이 필요하다. 기존의 것과 단절이 필요하다. 거기엔 물론 용기가 필요하다. 자연을 보면 많은 가르침이 있다. 우리 절기 중 처서가 있다. 이 처서는 식물의 성장이 멈추는 시기다. 이 처서를 지나야 곡식과 과일이 익어가는 것이다. 성숙을 위해서는 멈춤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삶에는 멈춤의 미학이 필요하고 느림의 철학이 필요하다.”
옛말에 수노근선고 인노퇴선쇠(樹老根先枯 人老腿先衰)란 말이 있다. 나무는 뿌리가 먼저 늙고 사람은 다리가 먼저 늙는다는 뜻이다. 사람이 늙어가면서 대뇌에서 다리로 내려 보내는 명령이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고 전달 속도도 현저하게 낮아진다. 불로장생의 비결은 산삼이나 웅담, 녹용 같은 값비싼 보약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예로부터 다리가 튼튼해야 장수한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다리가 튼튼하면 병 없이 오래 살 수 있다. 사람이 늙으면서 가장 걱정해야 하는 것은 머리카락이 희어지는 것도 아니고 피부가 늘어지고 주름살이 느는 것도 아니다. 다리와 무릎이 불편하여 거동이 어려워지는 것을 제일 걱정해야 한다. 장수하는 노인들은 걸음걸이가 바르고 바람처럼 가볍게 걷는 것이 특징이다.
두 다리가 튼튼하면 백 살이 넘어도 건강하다. 사람의 전체 골격과 근육의 절반은 두 다리에 있으며 평생 소모하는 에너지의 70%를 두 다리에서 소모한다. 사람의 몸에서 가장 큰 관절과 뼈는 다리에 모여 있다.

특별히 넓적다리의 근육이 강한 사람은 심장이 튼튼하고 뇌 기능이 명석한 사람이다. 미국 정부의 노년 문제 전문 연구학자 사치(Schach) 박사는 20살이 넘어서 운동을 하지 않으면 10년마다 근육이 5퍼센트씩 사라진다고 하였다. 뼛속의 철근이라고 부르는 칼슘이 차츰 빠져나가고 고관 관절과 무릎관절에 탈이 나기 시작한다고 하였다. 그로 인해 부딪치거나 넘어지면 뼈가 잘 부러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다리를 튼튼하게 할 수 있는가?
다리를 단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걷는 것이다. 다리를 힘들게 하고 피곤하게 하고 열심히 일하게 하는 것이 단련이다. 다리를 강하게 하려면 걸어야 하는 것이다. ‘걸으면서 싸우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걷는 이가 많아지면 사회 곳곳에 건강한 사람의 나무가 서고 높은 언성도 줄어들고 건강한 웃음꽃이 활짝 필 것이다.
아기가 태어나 기어만 다니다가 어느 날 일어서 첫 발자국을 뗄 때 모든 어른들이 박수치며 환호하는 순간이 있다. 내가 일어나 우주를 이고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신이 내린 첫 번째 선물을 받은 것이다.
걸으면서 만나는 사람들과 인생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비전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지식을 나누고, 경험을 나누다보면 갈라진 우리 마음들이 하나로 모아질 것이다. 혼자만이 아니라 친구와 가족 또는 이웃들과 함께 걸어보자.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를 걸어보고, 내 나라를 걸어보고, 세계를 걸어보는 것이다. 내 한 걸음이 우리의 걸음이 되고, 우리의 걸음이 역사를 바꿀 대행진이 될 것이다.
걸음을 통해 ‘빨리 빨리’에서 느긋함으로, 조급함에서 성숙함으로 우리 문화의 스탠스를 바꿔보자. ‘놀면 놀면’ 혹은 ‘사묵 사묵’하게 걷는 우리네 양반걸음이 지역과 세계를 하나로 잇는 거대한 인문 문화의 발걸음이 될지 모른다. 걸으며 생각하는 것이 가장 인간다운 행위인 것이다. 자연과 신과 혹은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데 걷는 것만큼 품위 있는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걷는 자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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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땅끝 마을에서 DMZ를 지나 백두산까지 아니 세상 끝까지 걸어가고 싶다. 만나는 사람마다 “당신이 하늘이오”라고 존경을 표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진리를 깨닫고 싶다. 걷는 자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걸음으로 새로운 문화와 문명을 만들 수 있다./그림, 이두수 작가] 

 
 

 

필자 소개 -
수년간 일용직 건설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노동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왔다. 현재는 글로벌피스재단에서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 평화운동에 관여하고 있다. 건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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