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승 칼럼] 유통 4.0시대 .. 시대적 변화에 걸맞는 규제의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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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승 단국대 경영경제대학 교수, 서비스마케팅학회장
입력 2023-09-25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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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승 교수
[정연승 교수]



최근 국내 유통시장 환경 변화와 함께 다양한 코스트 압박 요인이 지속적으로 발생함에 따라 오프라인 유통의 위기가 지속되고 온라인 유통의 경쟁은 심화되고 있다.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 추세로 구매력이 감소하고 제품 가격이 상승하고 있으며 원료와 원자재 값 상승으로 제품 원가와 물류비 등이 오르고 있다. 또한 인건비가 지속적으로 상승함으로써 기업들에 가장 큰 비용 증대 요인이 되고 있으며 ESG 관련 투자비 상승도 만만치 않은 부담이다. 이런 경제 환경 변화와 함께 인구의 구조적 변화도 유통산업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1인 가구 비율이 전체 가구 중 30%를 훌쩍 넘었고 고령화로 인해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에 육박하고 있다. 1인 가구와 노인 인구 비중 증가는 필연적으로 유통시장에 수요 변화를 가져온다.
한편 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 규모는 2017년 이후 15~20%대 고성장을 통해 전체 소비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대를 넘어서고 있다. 이에 따라 유통시장에서 오프라인 대비 온라인 비중과 중요성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반면 오프라인 유통의 성장세가 전반적으로 저조한 가운데, 특히 대형마트와 SSM(슈퍼슈퍼마켓) 같은 업태의 부진이 지속되고 있다. 이들 두 업태는 오프라인의 저성장 추세에다 각종 유통 규제까지 겹쳐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 오프라인에서는 식자재마트 등 신흥 업태가 급부상하였는데 이는 유통 규제에 따른 반사적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유통산업은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유통4.0 시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유통산업에 인공지능(AI), IoT 등 4차 산업혁명 기술들이 활용되면서 유통 서비스의 초지능·초실감·초연결화가 실현되는 유통4.0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유통시장은 팬데믹을 거치고 4차 산업혁명 영향이 장기화함에 따라 기존 사업영역과 사업모델이 붕괴되고 유통산업이 새로운 사업영역과 사업모델로 확장되는 파괴적 커머스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이와 같이 국내 유통시장이 전례 없이 빠른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는 가운데 현 시장 상황에 맞는 적절하고 합리적인 유통 규제 정책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국내 유통정책은 1990년대 중반 유통시장이 개방되면서 큰 변화를 맞이한다. 유통시장 개방 이전에는 제조업 중심의 수출 성장 정책이 중심이 되면서 유통업과 소비의 증가는 과소비와 수입 증가로 이어진다는 부정적 인식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에 따라 유통업에 대해서는 성장 억제와 규제 강화가 중심이었다. 그러나 유통시장 개방 후에는 유통업 발전이 소비자 후생과 내수 활성화, 그리고 물가 안정 등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유통업 규제 완화가 진행되고 유통 구조 개선이 본격화되었다. 기업형 유통의 대형화, 유통기법의 현대화, 신업태 도입과 성장 등 흐름이 이어졌다. 하지만 유통업태가 다변화하고 대형 유통의 비중이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중소형 유통의 몰락이 본격화하고 전통시장과 재래상점의 쇠퇴가 진행되는 부작용이 발생하면서 유통시장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이러자 정부는 다시 대기업과 중견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 시작하였다. 적합업종 법제화와 품목 규제, 대형 점포의 출점 규제 및 영업 규제, 대규모 유통업의 거래 공정화, 온라인 플랫폼 규제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규제 강화 움직임이 이어졌다. 이와 함께 소상공인 활성화를 위한 지원 대책들도 동시에 가동됐다. 소상공인 경쟁력 제고 지원, 소상공인 조직화 지원, 전통시장 시설·경영 현대화, 소상공인 전담 지원기관·단체 설립 등이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규제 강화와 정부 지원으로 실제 소상공인들의 경쟁력이 강화되고 매출이 증가하는 결실은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소상공인 보호와 지원에 대해서는 아직도 찬반 양론이 팽팽하다. 긍정적 입장은 소상공인은 우리 경제의 중산층이자 지역경제의 중심축으로서 보호하고 지원해야 하며 우리 사회의 양극화 해소와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주장인 반면, 부정적 입장은 대형 유통 규제와 소상공인 보호가 지나치면 경제 활성화와 산업 발전에 저해가 되고 소상공인의 혁신성장 의지와 자율성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양측 다 필요한 견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보다 중요시하는 관점 내지 가치관의 문제이며, 이는 유통업을 어떠한 정책적 관점에서 접근할 것이냐와 연결된다. 예를 들어 산업정책이나 경제정책 관점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복지정책이나 고용정책 관점에서 볼 것인가에 따라 유통정책의 방향과 내용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결국 유통업체 간 경쟁을 촉진하느냐 또는 경쟁을 제한하느냐는 우리 사회의 정책을 결정짓는 가치관의 방향에서 결정될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추구하는 유통정책의 목표는 효율성·형평성·공정성 등 세 가지 의미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먼저 효율성(Efficiency)은 유통구조를 개선하여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함으로써 유통비용을 절감하고 물가 안정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는 규모와 경쟁력을 갖춘 대형 유통업체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시장경쟁을 활성화시키는 정책방향으로 산업통상자원부가 담당한다. 형평성(Equity)은 균형 발전을 중시하는 것으로 자본과 규모가 열악한 영세 사업자가 대규모 기업형 소매점과 직접 경쟁하지 않고 생업을 유지해 나갈 수 있도록 보호·지원하는 것이다. 형평성을 우선시하는 정책은 대형 유통업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중소 상인 지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중소벤처기업부가 담당한다. 끝으로 공정성(Fairness)은 수직적 거래와 수평적 경쟁이 합리적이며 합법적 기준과 절차에 의해 수행되도록 하는 것이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업자가 시장 지배력을 남용하여 불공정한 거래 조건을 강제하거나 경쟁을 제한하는 것을 규제하는 방향으로, 공정거래위원회가 담당한다. 따라서 유통산업에 대한 정책은 공정성을 기본 전제로 효율성과 형평성이라는 양대 축을 얼마나 균형 있게 가져가느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개발도상국이나 신흥시장에서는 효율성이 좀 더 강조될 것이고, 선진국이나 성숙시장에서는 형평성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더 중요시될 것이다. 국내 유통산업은 이제는 효율성만을 강조할 수는 없으므로 효율성을 중시하되 형평성이 간과되지 않도록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향후 유통산업 규제정책의 방향을 정함에 있어 다음 사항들을 중점 고려해야 한다.
첫째, 유통산업 구조 변화에 적응하는 유통정책이 필요하다. 유통산업 구조가 급격하게 온라인 중심으로 변하고 인공지능과 플랫폼이 유통산업의 중심으로 들어와 있는 상황에서 10년 전의 규제정책을 변화 없이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유통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둘째, 유통생태계 관점에서 정책 개선이 필요하다. 중소 유통의 보호도 중요하지만, 규제정책이 유통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는 소비자, 납품업자, 지역상권의 여러 소상공인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셋째, 대립과 규제에서 화합과 상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과거 대·중소유통 간 경쟁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 간 경쟁 또는 상권 간 경쟁으로 산업구조가 변화한 상황에서 중소 유통(전통시장·중소 슈퍼마켓)과 대형마트 등이 상생·협력을 통해 지역상권을 활성화시키고 상호 이익을 실현하는 등 지속 가능한 동반성장의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시대적 흐름에 부응하는 규제정책으로 한국 유통산업이 더욱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영학과 △연세대 경영학과 박사 △단국대 경영경제대학 교수 △서비스마케팅학회 회장 △ 한국경영학회 산업정책위원장 △ 전 한국유통학회회장 △전 서울대 경영대학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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