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전환에 불을 지핀 건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었다. 지난해 2월 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여파로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천연가스 수급 불안정에 따른 에너지 위기를 겪었다. 전쟁 발발과 함께 천연가스 주요 가격 지표는 급등했고 1년 넘게 지속됐다.
위기는 곧 기회가 됐다.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 가격이 폭증하니 안 그래도 빨랐던 전 세계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가 가속화된 것이다. 지난 1년간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안(IRA), 유럽연합 리파워(RePower) EU 정책, 동남아시아의 가스를 건너뛴 재생에너지 전환이 추진됐다. 에너지 관련 최고 권위를 지닌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해 말 발간한 종합보고서에서 ‘이대로 향후 30년간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신규 발전설비의 80%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IEA는 더 나아가 사상 처음으로 모든 예측에서 화석연료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낙관적으로 평가됐던 천연가스 수요가 줄어든 게 주효했다. IEA의 직전 연도 보고서 대비 2050년 전 세계 천연가스 수요 예측치가 750bcm가량 감소했다. LNG 3대 소비국인 한국의 1년치 가스 수요(60bcm) 대비 13배에 달하는 규모다. 각국이 탄소중립 정책을 강화한다면 속도는 더욱 빨라져 2050년 천연가스 수요는 현재 수준 대비 30% 정도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이 선언에 동참한 G7 국가 공적금융의 지난해 수출금융 실적을 보면 확실한 변화가 보인다. 미국, 캐나다, 독일을 중심으로 재생에너지 수출금융이 2조원(2021년)에서 7조4000억원(2022년)으로 3배 넘게 늘어났다. 모두 아프리카·중동·유럽 등지의 신규 재생에너지 사업 진출 지원 과정에서 이뤄졌다. G7 수출신용기관들이 올해 본격적으로 글래스고 선언 이행에 돌입하며 이들의 재생에너지 수출금융은 더욱 빠르게 확대될 터다.
전 세계 재생에너지 수출 경쟁 뒤에 산업정책의 부활과 재생에너지 내수 확보 노력이 있다는 걸 유념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IRA를 통한 세액공제 등으로 역내 태양광, 풍력, 에너지저장장치(ESS) 설비 투자가 2019년 130억 달러에서 2029년 860억 달러로 확대될 전망이다. EU도 탄소중립산업법(NZIA)을 추진해 자국 재생에너지 산업과 기술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옆 나라 일본도 녹색전환(GX) 계획을 올해 2월 입법에 성공했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를 일본의 주력 전원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매년 56조원을 재생에너지·전기차 분야에 투입하는 게 골자다.
플랜트 수출산업 대전환 초입에서 한국은 뒤처진 모양새다. 2030년 국내 재생에너지 목표가 30%에서 21.6%로 줄어들며 국내 재생에너지 기업의 내수 확보가 어려워졌을뿐더러 재생에너지 수출금융도 더딘 상황이다. 그사이 2013년 24조원에 달했던 공적금융의 신규 해외 석유·가스 관련 사업 지원액은 글로벌 에너지 전환 기조하에 점차 줄어들어 2020년 10조원으로 반 토막 났다. 최근 추이를 상기하면 신규 석유·가스 플랜트 산업은 앞으로도 낙관적인 전망은 어렵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시작이 늦었을지라도 시장이 본격 확대되는 지금이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해외 정책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니셔티브를 갖고 적극적으로 개척할 때 가능해진다. 또한 이처럼 큰 과제를 민간 재생에너지 기업에 맡기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그간 트랙 레코드를 쌓았던 공적금융과 정부, 공공기관이 합심해서 공동의 과제를 해결하려 나설 때 한국은 비로소 빠르게 열리는 재생에너지 시장의 한 축에서 지속 가능한 일자리와 경쟁력을 확보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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