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골프장 속으로] ③ 트럼프 턴베리, '백주의 결투'부터 '산산이 부서진 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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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셔=이동훈 기자
입력 2023-08-2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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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 골프장 유랑기

등대가 트럼프 턴베리 골프코스 부지 안에 위치했다 사진이동훈 기자
등대가 트럼프 턴베리 골프장 부지 안에 위치했다. [사진=이동훈 기자]
백주(白晝)의 결투(The Duel in the Sun). 1946년 미국에서 개봉한 서부영화 제목이다. 이 제목이 1906년 개장한 영국 스코틀랜드 에이셔의 트럼프 턴베리 골프장(이하 턴베리) 클럽하우스 2층 레스토랑에 붙었다. 영화 때문이 아니다. 1977년 디 오픈 챔피언십(이하 디 오픈)에서 나온 명승부 때문이다.

주연 배우는 미국의 톰 왓슨과 잭 니클라우스다. 두 선수는 1라운드 공동 3위, 2라운드 공동 2위, 3라운드 공동 선두에 위치했다. 

최종 4라운드는 두 선수를 위한 무대였다. 라운드 중반까지 승리의 여신은 니클라우스를 바라봤다. 왓슨은 보기 등으로 흔들렸지만 니클라우스는 흔들리지 않았다. 12번 홀까지 니클라우스는 10언더파, 왓슨은 8언더파였다.

흐름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13번 홀부터다. 왓슨이 공격적인 플레이로 점수를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왓슨은 13·15·17번 홀 버디를 기록했다. 이 사이 니클라우스는 파를 적었다. 왓슨은 15번 홀 그린 밖에서 퍼터를 쥐고 버디를 낚았다. 니클라우스의 짧은 내리막 퍼트는 빗나가고 말았다.

왓슨은 순식간에 선두 자리를 꿰찼다. 왓슨은 12언더파, 니클라우스는 11언더파다. 이어진 마지막 파4 18번 홀. 왓슨의 두 번째 샷은 갤러리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깃대와 약 1m 거리에 붙은 공. 니클라우스가 시도한 트러블 샷은 그린 위에 올랐지만 왓슨보다 거리가 멀었다. '황금 곰'이라 불리는 사내(니클라우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긴 거리 버디 퍼트를 떨궜다. 갤러리가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다. 이제 왓슨의 차례. 우승을 확정 짓는 버디. 두 팔을 벌려 승리를 만끽했다. 왓슨이 니클라우스에게 다가갔다. 두 선수는 어깨 동무를 했다.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우승과 준우승은 신경 쓰지 않았다. 완벽했던 승부에 두 선수는 미소를 머금었다.

지난 4일(현지시간) 명승부의 현장으로 향했다. 오전 7시에 턴베리 티 타임을 잡으면서다. 유명 코스인 아일사를 원했지만, 주위 골프대회 개최로 스코틀랜드 왕의 이름을 딴 킹 로버트 더 브루스 코스만이 허락됐다.

아일사 코스는 남쪽, 킹 로버트 더 브루스는 북쪽이다. 다행히도 턴베리를 상징하는 등대는 양쪽 코스에서 볼 수 있었다.

웅장하게 버티고 선 리조트를 뒤로하고 클럽하우스 주차장으로 향했다. 클럽하우스는 2014년 트럼프 일가가 인수한 이후로 화려함이 추가됐다. 영국 골프장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입장하니 보비 존스와 올드 톰 모리스가 좌우에서 반긴다. 존스는 미국을, 모리스는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골퍼다. 미국이 인수한 스코틀랜드 골프장이라는 생각이 스쳐 갔다.
 
트럼프 턴베리 골프코스 클럽하우스는 화려함을 자랑한다 사진이동훈 기자
트럼프 턴베리 골프장 클럽하우스는 화려함을 자랑한다. [사진=이동훈 기자]
길게 늘어선 프로숍은 큰 규모를 자랑하고, 라커룸은 황금색 도금과 대리석으로 치장했다.

시간이 좀 남아서 2층으로 향했다. The Duel in the Sun 레스토랑에는 클라레 저그(디 오픈 우승컵) 모형이 전시됐다. 뒤에 펼쳐진 배경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코스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회의실에는 톰 왓슨의 이름을 붙였다.

시간이 됐다. 1층으로 내려가니 관리자가 직접 카트를 끌고 와서 1번 홀 티잉 구역으로 안내했다.

킹 로버트 더 브루스 코스는 평지다. 고도차가 있는 아일사 코스보다는 난도가 낮다. 페어웨이는 넓다. 벙커는 스코틀랜드의 팟 벙커지만 위협적이지 않다. 하지만, 마찬가지인 것이 있다. 페어웨이를 벗어나면 쉽지 않다. 스코틀랜드 러프는 일반 러프와 다르다. A러프에서도 공을 찾기 어렵다.

7번 홀까지 공과 숨바꼭질을 하다가 절경이 펼쳐진다는 8번 홀로 향했다.

동반자들과 한참을 가다 보니 10번 홀에 도착했다. 돌아가려 했으나 9번 홀을 마친 팀이 따라오고 있었다. 결국 상의 후 등대를 보러 가기로 했다. 등대로 향하는 길은 아일사 코스와 킹 로버트 더 브루스 코스, 산책로가 만난다. 골퍼와 산책을 즐기는 시민 그리고 강아지들이 섞인다. 등대 앞이 아일사 코스 9번 홀과 10번 홀이다. 턴베리를 대표하는 홀이다.

해변, 등대 그리고 로버트 브루스 성의 유적지가 자리했다. 링크스 코스의 매력이 가득 담겼다. 턴베리 관리자는 "트럼프 일가가 인수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라고 설명했다.

한참을 구경하다가 다시 10번 홀로 향했다. 10번 홀에서 바라보는 등대도 아름다웠다. 이후에는 다시 일반적인 코스로 변모했다. 파5인 18번 홀은 클럽하우스 앞에 그린이 자리했다. 홀 아웃을 하니 클럽하우스 2층에 있던 직원이 손뼉을 쳤다.
 
사진이동훈 기자
킹 로버트 더 브루스 코스 18번 홀 티잉 구역에서는 클럽하우스를 향해 티샷을 날린다. [사진=이동훈 기자]
18번 홀 깃발은 검은색 바탕에 황금색 로고였다. 권위와 화려함이 느껴졌다. 이 역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느낌이 강했다. 턴베리에서는 4번의 디 오픈과 7번의 시니어 오픈, 2번의 위민스 오픈이 치러졌다. 2015년에는 박인비가 이곳에서 12언더파 276타로 우승했다.

로열앤드에이션트골프클럽(R&A)은 2015년 "2020년 디 오픈은 턴베리에서 열리지 않는다"고 밝혔다. 트럼프 일가가 인수한 지 1년 뒤다. 이에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2018년 영국 주재 미국 대사에게 영국 정부의 협조를 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던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습격 사건이 벌어졌다. R&A는 기다렸다는 듯이 "턴베리에서 대회를 개최할 계획이 없다"고 선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아들인 에릭 트럼프는 턴베리 인수 당시 "우리 가족은 스코틀랜드에 깊이 헌신한다. 골프장을 보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 부지에 2억 달러(2686억원)를 투자했다. 권위 있는 영예를 얻었다. 오픈 대회가 개최된 최고의 골프장을 소유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꿈은 클라이드만으로 밀려오는 파도처럼 산산이 부서졌다.

부서진 꿈은 LIV 골프 인비테이셔널 시리즈로 다시 시작됐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그레그 노먼 LIV 골프 커미셔너와 손을 잡았다. 공교롭게도 노먼은 1986년 이곳에서 클라레 저그에 입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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