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국민의힘, '전북책임론' 부끄럽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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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서울시립대 초빙교수/객원 논설위원
입력 2023-08-17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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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교수
[임병식 교수]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파행 책임을 규명하기 위한 감사원 감사가 예고된 가운데 호남민심이 들끓고 있다. 부실 운영 책임을 전북으로 몰아가는 시도에 격앙된 분위기다.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목소리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나서 총대를 멨지만 밑바닥 여론 또한 다르지 않다. 사고는 자신들이 쳐놓고 만만한 전북을 희생양 삼으려한다는 시각이다. 나아가 잼버리 대회를 팔아 지역 예산을 챙겼다는 비난은 지역 문제로까지 비화하고 있다. “만만한 게 전북이냐”는 반발은 충청도 핫 바지론을 떠올리게 한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지핀 전북 책임론을 국민의힘 소속 전남광주지역 정치인들까지 반대하면서 호남대 비호남 구도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새만금 사업을 ‘희망 고문 국책 사업’으로 규정한 조지훈 민주당 전 전주시장후보는 “전북인들은 잼버리 대회를 위해 꽃게 냉동차까지 끌고 가 동동거렸다. 내 집 손님을 위해 씨감자를 내주는 심정으로 땀을 쏟았다. 그런데 이제는 책임지라고 한다”면서 “순해 보이니 전북을 만만하게 보느냐”며 발끈했다. 최형재 민주당 전주완산을 후보는 “잼버리 파행으로 인한 1차 피해자는 참가자들이고 2차 피해자는 자존심에 상처 입은 국민, 최종 피해자는 근거 없는 손가락질과 낙인으로 울분과 분노를 삼키고 있는 전북도민들이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인 황현선씨는 “전라북도를 제물로 삼고 중앙정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새만금을 떠나 K팝으로 무마한 건 천박한 문화주의였다”고 비난했다. 김성주 의원은 “정부가 결정하고 전북도가 집행한 행사를 전북도 책임으로 떠넘기는 건 비겁하다”면서 대통령 사과와 총리 사퇴, 국정조사를 요구했다.

광주전남지역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들도 전북 책임론에 부정적이다. 천하람 국민의힘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윤 대통령께서 개영식도 가시고 여성가족부 장관은 아무 문제없다고 했다. 이제 와 전라북도를 탓 한다면 쩨쩨하다”고 했다. 여당 전직 대표들도 호남 공격을 자제하라고 주문했다. 이정현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대표는 “어떻게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있느냐. 너무 화가 났다. 만약 그게 당론이라면 오늘이라도 그런 당에 머물러 있고 싶지가 않다. 정말 정신 나간 소리”라며 지도부를 비판했다. 이준석 전 대표 또한 SNS를 통해 “‘잼버리는 전라도 탓’으로 원인을 돌리면 문제는 반복된다”며 지도부와 다른 목소리를 냈다.

잼버리 대회 이후 보수진영 지지층 사이에서는 전라북도 책임론을 공식화하는 모양새다. 전북도 책임을 지적하는 정부여당 주장을 다룬 기사들에는 “앞으로 민주당 지역에서 나오는 얘기는 일절 무시해야 한다. 거짓말과 선동, 징징대고 말꼬리 잡기할 줄 아는 거라곤 그것뿐” “정부와 서울시민들 잘 해냅시다. 전라도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전라도 세금 도둑들, 이제 너희들은 상종 금지다” 등 지역 비하와 혐오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극우 성향 유튜브 채널들 또한 ‘전라도 잼버리 참사’ 같은 자극적 제목을 단 영상을 올리며 지역문제로 몰아가고 있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호남 비하·혐오 발언이 확산하면서 전북을 비롯한 호남민심은 들끓고 있다. 지역 차별 주장을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 같은 인식 확산을 부채질하고 있다. 전북 책임을 주장하는 이들은 ‘전라북도가 망칠 뻔한 국제행사를 윤석열 정부가 나서 구했다’며 지방정부 무용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전주혜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논평에서 “전라북도와 민주당 정치인들이 친 사고를 윤석열 정부가 국민과 합심해 파행 위기를 수습했다”며 전북 책임으로 몰았다. 전북 정치권의 ‘음모론’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은 조기 퇴영한 전북연맹 결정에 대해 “전북연맹이 저지른 국민 배신행위 뒤에 거대한 반 대한민국 카르텔이 작용한 것은 아닌지 규명해야 한다”며 민주당 지지기반인 전북이 고의적으로 대회를 파행시켰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잼버리 파행 책임은 소홀한 준비와 부실한 운영, 책임 떠넘기기에서 비롯됐다는 게 일반적이다. 정부는 잼버리대회를 앞두고 지원 특별법을 제정했다. 특별법에 의해 설치된 조직위원회는 정부를 대신해 행사를 준비하고 예산을 집행했으며 운영까지 부여받았다. 이는 조직 체계와 업무 분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별법에 따르면 여가부는 조직위원회 설립을 인가하고 사업계획서 및 예산 승인까지 총괄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기획재정부 장관 등이 참여하는 조직위원회(30명)도 구성했다. 그러나 정부지원위원회는 몇 차례 열리지 않았으면 그나마 제기된 의견조차 제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예산집행 내역을 따져보면 어디에 책임이 있는지 명확하다. 잼버리 대회 전체 예산은 1171억 원(정부 303억, 전북도 410억, 참가비 400억, 부안군 9억, 옥외광고 49억)이다. 이 가운데 조직위가 74.2% 870억, 전라북도는 22.7% 265억, 부안군은 3% 36억 원을 집행했다. 문제가 된 급식 및 운영, 그늘 막 설치, 의료시설 및 운영, 폭염 대비 물품구입, 행사장 청소 및 분뇨처리, 방역 및 해충 구제, 침수 대비 팔레트 및 쇄석 등은 조직위원회가 썼다. 쉽게 말해 영국과 미국대원들이 철수 이유로 들었던 위생과 의료, 폭염, 운영까지 모든 예산을 조직위가 사용했다. 전북도는 상하수도와 주차장, 하수처리 등 기반시설 조성에 예산을 썼다. 그런데도 전북도 책임이라고 우기는 건 논점 흐리기이자 정신승리나 다름없다.

잼버리를 팔아 지역예산을 챙겼다는 주장도 본말이 전도됐다. 새만금사업은 1991년부터 시작한 국책사업이다. 인천국제공항 건설이 인천시 사업이 아니듯 새만금 사업 또한 전북도 사업이 아니다. 그런데도 잼버리를 이용해 지역예산을 챙겼다고 호도하고 있다. 새만금사업은 올해로 32년째, 정부 계획대로라면 최종 완료 시점은 2050년이다. 앞으로 30년을 더해야 한다. 무려 60년이나 걸리는 국책 사업이다. 표를 의식해 전북도민을 희망 고문으로 몰았다는 비판이 오히려 설득력 있다. 그런데도 전북 책임론을 거론하니 뻔뻔하다. 잼버리 전북 책임론은 그동안 억눌렀던 지역차별을 상기시키고 있다. 걸핏하면 제기되는 호남 비하와 지역차별 지겹지도 않나.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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