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수의 열린경제] 국방 경제 산업 …'3각 방패' 갖춘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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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수 서정대학교 교수·YTN대표이사(전)
입력 2023-07-04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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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수 서정대 교수]



 
“고객들이 대만에 전쟁이 날까 봐 우려하고 있는지요?” 2021년 7월 15일 마크 류 TSMC 회장은 한 금융분석가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류 회장은 주저하지 않고 걱정할 이유가 없다는 답변을 했다. “전 세계가 대만의 반도체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고 아무도 그걸 교란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는 부연 설명을 했다.(<칩워> 크리스 밀러 저) 이 같은 류 회장 발언 뒤에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의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는 대만을 중국이 무력 침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 이른바 실리콘 실드(Silicon Shield), 반도체 방패론이다.
 
실제로 대만 반도체 산업의 세계적 위상은 반도체 방패론의 근거가 되고 있다. 대만 섬 서쪽에 위치한 TSMC는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이 2022년 4분기 기준으로 58.5%에 이르고 있다. TSMC는 물론 또 다른 파운드리 강자인 UMC를 보유하고 있는 대만은 세계 메모리 칩의 11%를 생산하고 있다. 특히 컴퓨터, 전화, 데이터센터, 전자 장비 대부분을 작동하게 하는 로직 칩의 37%를 대만 기업이 제조하고 있다.
 
산업의 ‘힘’에 바탕을 둔 반도체 방패론. 중요한 점은 이 말이 미디어나 학계가 만들어 낸 용어가 아니라 대만 정부가 대외적으로 전파하고 있는 ‘소신’이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2021년 말 외교 전문지인 포린 어페어에 기고한 글에서 “대만의 반도체 산업은 권위주의적 정권의 공격적 행동에 대해 대만을 방어할 수 있게 하는 반도체 방패”라고 역설했다. 이 글에서 차이잉원 총통은 대만은 반도체뿐만 아니라 바이오 기술과 재생에너지 같은 분야에서 안정적인 글로벌 공급망을 창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첨단 제품의 생산 허브로서 자국(自國)의 역할을 강조했다.
 
대만 총통이 앞장서 얘기하고 있는 반도체 방패론은 따지고 보면 대만의 반도체 산업이 가지고 있는 전략적 중요성을 고려할 때 미국이 중국의 대만 침공을 방관하지 않고 적극적인 방어에 나설 것이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미국은 이 문제에 관한 한 전략적 모호성의 태도를 취해왔다. 하지만 2022년 9월에 이례적인 일이 일어났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국의 공격이 있을 경우 미군은 대만을 방어할 것이라며 이 원칙을 깨뜨리는 듯한 발언을 했다. 백악관 관리들이 즉시 미국의 대만 정책에는 변화가 없다며 무마에 나섰지만 미국 정부가 ‘치고 빠지기식’ 입장을 보인 것은 그만큼 깊은 고심의 흔적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반도체는 대만의 국가방위를 지키는 방패가 될 것인가?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크리스 밀러는 반도체 방패론에 대해 “현 상황을 대단히 낙관적으로 보는 견해”라고 단언한다. 중국이 전면적 침공 없이 부분적인 항공 및 해양 봉쇄 등 다양한 선택지를 가지고 있고 이게 대만의 항전 의지도 꺾고 미국의 개입도 어렵게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물론 반대쪽 견해도 만만치 않게 존재한다. 유명 저자인 이안 부루마는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실린 기고문에서 대만은 미국이 지킬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부루마는 두 가지 근거를 든다. 하나는 첨단 반도체의 90% 이상을 생산하는 대만이 중국의 수중에 들어가면 미·중 패권 경쟁이 중국에 유리하게 기울 것이라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중국이 대만을 점령하면 한국과 일본이 미국의 방위 약속에 대한 신뢰를 잃어 핵무장에 나서려고 할 것이라는 점이다. 반도체 전문가인 권석준 성균관대 교수도 ‘방패론자’다. 그는 저서 <반도체 삼국지>에서 “중국 정부가 만에 하나 미친 짓을 한다면 그것은 대만에 대한 강제 무력 합병과 이후 TSMC에 대한 국유기업화가 될 것”이라며 미국이 이를 좌시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이 중 어떤 주장이 맞을지는 지금으로선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그만큼 사안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다만 반도체 방패론이 말해주는 중요한 가치는 한 산업이 국가안보의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는 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논의의 무대를 한반도로 옮겨와 보자.
 
주지하다시피 북한은 핵 위협의 수위를 계속 높이고 있다. 미사일의 비행 거리를 늘려 미국 본토를 사정권에 넣으려 하고 있다. 미국에 샌프란시스코나 로스앤젤레스 같은 도시가 공격받을 수 있다는 압박을 가해 유사시 한국을 지원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분석된다. 안보 불안이 고조되자 미국 전술핵 재배치 주장이나 자체 핵무장론이 나올 정도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4월 말에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한·미 핵협의그룹(NCG) 창설을 통해 한국이 북한의 핵 공격에 대비한 전략 수립에 참여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한 워싱턴 선언을 채택했다. 미국의 확장 억제 약속에 대한 신뢰를 제고하려는 조치였다.
 
북한의 핵 공세에 대해서는 ‘강대강’의 대응 조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여기에서 대만처럼 우리나라에서도 반도체 방패론이 유효할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미리 얘기하면 ‘그렇다’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합하면 메모리반도체 시장 점유율이 70%를 넘는 데다 전체 반도체 시장의 25%를 한국 기업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선폭 7㎚ 이하 첨단공정의 양산이 가능한 두 개 기업 중 하나가 삼성전자(다른 하나는 TSMC)다. 메모리 제조의 글로벌 허브인 한국의 안보는 세계 경제의 안보와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임형규 전 삼성전자 사장은 저서 <히든 히어로스>에서 “한국의 지배력이 압도적인 메모리반도체 역시 먹거리 문제를 뛰어넘어 국가의 안보적 가치를 지닌 산업”이라며 “‘대체 불가능한 필수재’인 한국의 메모리반도체 없이는 전 세계 4차 산업혁명도 진전되기 힘들다”고 강조한다. 좀 더 직설적으로 얘기하면 최상위 반도체 기업 두 개를 보유한 한국은 미국의 세계 전략상 반드시 방어해야 하는 자유세계의 소중한 자산인 것이다.
 
중요한 점은 한국이 갖는 전략적 가치가 반도체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가치는 바로 세계 경제에서 갖는 한국의 중차대한 위상에 있다. 경제 규모(국내총생산 GDP) 면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13위에 랭크돼 있다. 무역 규모는 세계 8위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내놓은 국제경쟁력 평가에서도 13위로 상위권에 올라 있다. 또 유에스 앤드 월드리포트가 올해 초에 발표한 ‘2022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에서 우리나라는 미국, 중국, 러시아, 독일, 영국에 이어 6위를 기록했다. 프랑스, 일본, 캐나다 등 다른 선진국보다도 높은 순위다. 이뿐만이 아니다. 첨단산업도 글로벌 주요 공급자 위치를 단단하게 확보해 놓은 상태다. 예컨대 세계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시장 점유율이 2022년을 기준으로 대형 97%, 중소형 71%로 부동의 1위다. 아직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지는 않았지만 수소차 시장에서도 1위를 달리고 있다. 이와 함께 전기차용 배터리(점유율 23.7%)와 이미지센서(29%)도 세계 2위를 유지하고 있다. ‘G8 가입론’의 근거가 되는 국력의 좌표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이 같은 사실은 북한의 핵위협으로 흔들릴 수 없는 자유 진영 내 한국의 강고한 위치를 말해주고 있다. 미국 백악관은 2022년 10월 발표한 ‘국가안보 전략’에서 향후 10년을 미국 리더십의 결정적 시기로 진단했다. 이 문건에서 미국은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대치 국면에서 동맹은 가장 중요한 전략 자산이라며 국익을 위해 군사력 사용을 주저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지정학적 위치뿐만 아니라 경제와 산업에서도 전략적 중요도가 큰 동맹국인 한국은 미국이 방어해야 할 대표적인 국가 중 하나임은 부인할 수 없다.
 
1950년 1월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딘 애치슨은 한국이 미국의 방어선 밖에 있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이로부터 다섯 달이 지난 6월 북한은 남침했고, 미국은 마침내 애치슨 라인 바깥의 국가를 방어하기 위해 전쟁에 개입했다. 공산주의 저지에 실패하면 다른 지역에서 미국이 쌓아온 신뢰가 무너져 내릴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훗날 애치슨은 “한국이 우리를 구했다”고 회고했다. 미국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공산권에 대응해 선제적 군사 투자를 할 수 있었다. 이로부터 70여 년이 흐른 지금 한반도의 남쪽은 미국의 ‘신(新)애치슨 라인’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 입장에서 걸려 있는 포괄적 이해가 너무 큰 지역이다.
 
물론 북한의 위협에 대응해 미국의 핵 확장 억제를 확고하게 다지면서 자체 군사력을 키우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한국은 반도체는 물론 경제 자체가 방패인 나라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국방과 경제, 그리고 산업이 서로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함께 맞물려 있는 ‘3각 방패’를 우리는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풀어나가야 할 과제는 계속 경제도 잘하고 산업도 고도화해 한국의 전략적 이익, 즉 ‘몸값’을 키워나가는 일일 것이다. 이게 안보의 핵심적 ‘맥점’이다.  



최남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경영학 석사 ▷MTN 대표이사 사장 ▷YTN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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